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저무는 세계화...자본 경쟁으로 갈라진 세계 [신냉전의 덫]
자유무역 시대가 저물고 있다. 미중 패권전쟁으로 가시화된 자유무역의 균열은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글로벌 공급망 분열로 이어졌다. 미국과 서방, 중국과 러시아 간의 지정학적 긴장이 그대로 경제와 무역까지 영향권으로 집어삼키면서 경제 신냉전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항구에 정박한 화물선의 모습.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전략적 경쟁을 넘어 신냉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무역 전쟁’으로 시작된 두 강대국의 날 선 대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공급망 분열로 이어지더니 현재는 안보, 기술, 금융 등 다양한 영역에서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

미국을 선두로 한 서방 진영은 국가 안보·공급망 안정이란 대외적 목표하에 대러·대중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반대 진영인 러시아와 중국 등은 이 같은 제재에 맞서 경제적 밀착을 높이는 중이다.

전통적인 친미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마저 미국과 서방에 휘둘려온 과거에서 탈피해 중국·러시아에 밀착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의 저변에는 산업 경쟁력 확보와 자본 경쟁이 있다. 이념으로 블록화됐던 과거의 냉전과는 완전히 다른 구도인 것이다. 다만 신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사회 구도에서 자칫 한쪽 블록에 올인했다가는 미래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는 것도 아찔한 현실이다.

미·서방 vs 중·러로 갈라진 세계 경제…‘프렌드쇼어링’ 대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을 하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모습. 바이든 행정부는 IRA와 반도체법 등을 통해 에너지전환과 첨단 기술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AFP]

미국은 보호무역·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이미 중국과의 패권경쟁으로 탈세계화를 예고한 미국은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공급망 혼란을 계기로 공급망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안보를 내세워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를 본격화한 동시에 동맹국들에도 동참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소법(IRA) 등을 통해 동맹과 우호국에 자본을 배치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이라는 새로운 접근법도 제시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해 4월 한 연설에서 “다른 국가들이 주요 원자재나 기술, 제품에 대한 시장 지위를 이용해 우리 경제를 혼란스럽게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면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국가들과 경제 통합을 구축·심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맹국 간 협력으로 공급망 이슈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표면적 목적이지만, 중국·러시아 등 비우호적 국가들과의 무역 단절을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인공지능 협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미국·EU의 무역기술위원회(TCC), 반도체 투자 및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강화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러시아를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서방의 대중·대러 제재에 맞서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는 중국은 최근 미국 주도의 대중 수출 규제에 맞서 희토류 자석의 공급망 통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PA]

미국의 이 같은 ‘아메리카 퍼스트’는 다른 국가들의 또 다른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이어졌다.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그린딜 산업계획’이 대표적이다. 권역 내 녹색산업 보호와 성장을 목표로 하는 이 계획은 ‘유럽판 IRA’라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서방에 맞서는 중국 진영의 반격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최근 중국은 첨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자국을 몰아내려는 미국에 맞서 전기차나 재생에너지 발전 모터에 쓰이는 희토류 자석의 공급망 통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통제가 현실화한다면 서방의 에너지 전환 노력은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OPEC+가 지난 2일 기습적인 추가 감산을 발표한 것도 지정학적 분열로 인한 경제 블록화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사우디가 주도한 이번 감산 결정은 미국과 거리를 두면서 러시아와 중국에 밀착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감산 결정은 신뢰할 수 있는 미국의 안보 파트너였던 사우디가 에너지 정책에서 미국과 대립으로 돌아서는 상징적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편, 저편도 아냐” 존재감 커지는 개도국…다극화 시대 예고
개발도상국과 신흥국 120여개국을 아우르는 ‘글로벌 사우스’가 자체적인 세력을 키우며 글로벌 경제 다극화를 예고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를 주도하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지난 1월 ‘글로벌 사우스 서밋’에서 글로벌 도전에 맞서 개도국들이 선진국과 동등한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이터]

한편 개발도상국과 신흥국들은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한 편가르기에 동참을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세력을 키우며 또 하나의 진영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을 일컫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와 대비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가 그것이다. 이들의 관심은 정치적 이해 관계가 아닌 최대한 많은 국가와의 무역을 통한 성장에 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2월 보고서에서 “비동맹 개도국들은 프렌드쇼어링 궤도에서 벗어나 있다”면서 “이미 많은 나라가 서방 주도의 대러 규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브라질, 멕시코 등 중국을 제외한 120여개국을 아우르는 ‘글로벌 사우스’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바로 인도다. 세계 1위 인구 대국을 눈앞에 둔 인도는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에서 중립적 외교 노선을 추구하면서 국제사회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1월 글로벌 사우스 서밋에서 “대부분의 글로벌 도전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님에도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면서 “우리는 선진국들과 동등한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무역이 동맹국 중심으로 블록화되면 지정학적 충격에 대한 공급망 탄력성은 커진다. 하지만 혁신과 성장,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프렌드쇼어링’은 긍정적인 영향을 낳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프렌드쇼어링은 자유무역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보조금과 세금 감면 등 고비용의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무역 파편화로 전 세계 경제성장 규모가 장기적으로 2%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CSIS는 “프렌드쇼어링은 경제적 관점에서는 매력적이지 않은 개념”이라면서 “돈이 많이 드는 정책은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기업의 효율성을 떨어트리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balm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