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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마에 잿더미 된 집·펜션 “아침밥 먹다 눈물…살 길 막막” [강릉 산불 현장르포]
“여름손님 맞으려 재단장했는데…”
바람 너무 심해 초반 진압 어려워
아이스아레나서 100여세대 대피중
주민자치대책위원회 꾸려 상황 대비
12일 강원 강릉시 안현동의 펜션단지에 전날 대형 화재의 흔적이 처참하게 남아 있다. [연합]

“대피소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남편이랑 아침밥 먹다가 울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사나 막막해서….” 경포호 펜션단지에서 3층짜리 펜션을 운영했던 이종순(72) 씨. 지난 11일 강릉 산불로 이씨의 집과 펜션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 타버렸다. 여름철 손님을 맞기 위해 500만원을 들여 6개월 동안 펜션 주변을 재단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씨는 “노후대책용으로 마련했던 펜션이라 그런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이가 있는지라 다시 집을 짓기도 어려운데 어떡하나”라고 말했다.

강릉 산불이 발생한 다음날인 12일 오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갈 곳을 잃어버린 이재민 100여세대 모여 있었다. 집이 사라지거나 절반 이상 탄 이재민은 주민자치대책위원회를 꾸려 상황을 대비할 방침이다. 강원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이번 산불로 축구장 면적(0.714㏊)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가 소실됐고, 주택 68채, 펜션 26채 등 총 125곳으로부터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한순간에 사라진 집 “살 길 막막”=이재민 중 일부는 펜션사업을 하거나 요양을 위해 강릉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이재민 김현숙(67) 씨는 4년 전 요양을 위해 남편과 함께 강릉에 정착했다. 암 환자인 자신을 위해 남편이 직접 집을 지었고, 최근에는 새 가전도 많이 들였다. 김씨는 “정착할 생각으로 지은 집이 다 타버리는 걸 내 눈으로 봤다”며 “정말 순식간에 집에 불이 났다. 너무 당황해서 어떤 물건을 챙겨야 할지 몰라 엉뚱한 물건을 가져오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재민은 화재 당시 현장을 떠올리며 흐느껴 울기도 했다. 전날 만난 전영란(60) 씨는 “119에 전화해서 ‘우리 엄마 제발 살려 달라’고 했다. 언니가 옷도 못 걸친 채 어머니를 겨우 데리고 나왔는데 대피하다 언니옷에 불똥이 튀어서 타버렸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날 오전 평소처럼 출근했다는 전씨는 “일하는데 ‘불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 걱정됐다. 집이 목조주택이다. 언니한테 조심하라고 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전씨의 언니는 “처음에는 불이 멀리서 보였는데 어느새 우리 집 뒷산까지 오더라. 놀라서 동생한테 119에 신고해 달라고 전화했는데 전화한 사이 집 앞까지 불이 닥쳤다”고 말했다.

경포대 인근에 거주하는 김형래(74) 씨는 “새로 지은 집에 남은 작업을 하러 왔는데 아침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며 “바람이 심해서 잠깐 넘어져 당황해하는 사이 불이 집에 들이닥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강풍으로 초기 진압 어려움…피해 막심=이번 산불은 강풍이 불어 초기에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날 오전 8시22분께 발생한 강릉 산불은 8시간8분 만인 오후 4시30분에 불길이 잡혔다. 오전 한때 순간풍속 초속 30m의 강풍이 불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1시간가량 비가 내리면서 빠른 속도로 진화됐다. 하지만 축구장 면적(0.714㏊)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가 소실됐다.

특히 관광객들이 많았던 경포호 펜션단지도 큰 피해를 봤다. 전날 오후 방문한 강원 강릉시 경포대 인근은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펜션 뒤편 작은 동산에는 뿌연 연기가 곳곳에서 나왔다. 강릉에 산 지 20년 된 임호성(58) 씨도 어머니와 함께 오전 11시쯤 집을 두고 피신해야 했다. 임씨는 “불이 시작되자 형님한테 ‘바람이 그쪽으로 부니까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피했다”며 “다행히 우리 집은 크게 타지 않았지만 앞집이 새까맣게 타버렸다”고 말했다.

임씨 집 앞에 있는 펜션들은 뼈대만 남은 채 탄 곳이 많았다. 경포호 인근에 있던 한 정자는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폭삭 주저앉았다. 동산 위에 있는 무덤도 검은색으로 변할 정도로 타버렸고, 2층짜리 전원주택 안에서는 아직도 남은 불길이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화재 현장에서 만난 이기태(55) 씨는 “경포호 근처이기도 하고 큰 산이 있는 것도 아니라 인근 주민이 불에 대한 걱정을 안 했었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불길이 안 잡혔다”며 “경포호 주변 뒷산이 크게 탔고 산 주변에 있는 집, 펜션, 비닐하우스 보이는 건 다 탔다”고 말했다.

▶축구장 530개 면적 불타, 사상자 17명=경포호 인근에는 비닐하우스가 있는 가정집과 펜션, 아파트 등 다양한 집이 모여 있어 같은 동네 안에서도 피해 차이가 컸다.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당, 담벼락, 집까지 한꺼번에 탄 집이 있는가 하면, 불을 피한 집들도 있었다. 다행히 집에 불이 나진 않았다던 주민 이모(80) 씨는 “바람이 세게 불어서 표현 그대로 불이 날아왔다”며 “불똥이 튀어서 집이 타버린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고 설명했다.

인근 현대아파트 주민 대부분도 오전에 대피했다 오후 4시께 불길이 잡히자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 바로 앞 펜션 3곳이 통째로 타버린 데다 아직 불씨가 남아 있어 주민은 불안에 떨었다. 김순덕(80) 씨는 “집에 오긴 했지만 그을음내가 많이 나서 오늘 잠을 못 잘 것 같다”며 “지금도 펜션에 불씨가 펄럭거리고 있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로 인명 피해는 사망자 1명, 사상자 1명으로 집계됐다. 소방청 등에 따르면 12일 기준 강릉 산불로 1명이 숨지고 3명이 화상을 입었으며, 1명이 손가락에 골절상을 입고 12명이 연기를 마시는 등 17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재민은 323세대, 649명이 발생했다. 이들은 임시대피소가 마련된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머무르고 있다. 사천중학교에 대피했던 19세대, 29명은 모두 귀가했다.

▶주불 껐지만 잔불 감시 계속=주불은 껐지만 이날 아침까지 혹시 모를 잔불을 감시하는 작업이 계속됐다. 산림당국은 이날 오전 6시께 임차 헬기 1대를 투입해 산불 현장 전반을 살피고 있다. 또 상황에 따라 소방헬기 1대, 산림청 헬기 1대 등을 투입했다. 지상에서는 장비 213대, 인력 800여명을 투입해 잔불을 진화하고 있다. 산불 현장에서 보이는 연기는 현재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풍은 현재 초속 1∼12m로 잦아들었으나 혹시 모를 재발화 상황에 대비해 소방은 잔불 정리와 뒷불감시에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강원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주불 진화가 완료된 전날 오후 4시30분 이후 12일 오전 6시까지 “주변에서 나무가 타고 있다” “불꽃이 보인다” 등의 신고가 40건가량 접수됐다. 피해 신고를 한 시설 90%에 대해서는 조사를 마쳤으며, 오전 8시부터 광역화재조사관 23명을 투입해 피해 상황을 조사했다.

화재 원인은 강풍으로 말미암은 ‘전선 단락’으로 추정된다. 1차 조사 결과, 강풍으로 나무가 부러지면서 전선을 단선시켜 산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관계기관들의 추가 감식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감식 이후에는 산불 원인 제공자에게 산림보호법에 따른 형사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강릉=김빛나 기자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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