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평택캠퍼스의 제조 라인 내 직원 모습 [삼성전자] |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삼성전자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감산에 돌입한 가운데, 재고 정리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시장 반등 여부는 3개월 안에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고강도 감산 정책에도 가격 하락을 방어하지 못했던 메모리 시장이 삼성전자의 감산 참여로 가격을 회복하고, 수익성 ‘업턴’(상승전환기)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하반기 본격적인 반등을 위해서는 단순 감산 외에도 주춤했던 IT 시장 수요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PC용 메모리 반도체 ‘DDR4’ 등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감산을 진행할 예정이다. 재고가 기하급수적으로 쌓인 DDR4 D램 제품 생산량을 축소하고, 향후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DDR5 제품에 주력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DDR4 D램 제품을 중심으로 웨이퍼 투입량을 지난해 말 대비 15~20%의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DDR4 등 범용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삼성전자 제공] |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7일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며 설명 자료를 통해 “추가로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명시했다.
현재 시장 내 메모리 반도체 재고량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1분기 말 기준 D램(DRAM) 제조사 재고 일수는 15주, 낸드(NAND)는 17주다. 공장에서 새 제품을 약 4개월 동안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재고가 쌓여있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적정 수준인 4~6주 대비 4배 가량 높아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다.
특히, 범용 메모리 반도체 재고가 심각하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지난달 1.81달러로 전년 동기(3.41달러) 대비 절반 수준이다. 올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의 공급초과율은 112.5%로 나타났다.
통산 감산 효과는 약 3개월 후 나타난다. 때문에 이번 삼성전자의 감산 발표로 인한 메모리 반도체 시장 반등은 하반기부터 가시화될 수 있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고 감소가 본격 시작되면,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반등하고 제조사들의 수익성도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제조 라인 모습[SK하이닉스 제공] |
메모리 반도체 2·3위 업체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감산 효과는 올 1분기부터 시작된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부터 감산을 진행 중이며 올해 설비 투자를 50% 가량 줄일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마이크론도 직원 10% 구조 조정, 웨이퍼 투입량 20% 감소 등 고강도 감산 정책을 이어온데 이어 최근 추가 감산까지 시사했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인 삼성전자가 인위적 감산에 동조하지 않아 효과가 미비했다. 이번 삼성전자의 감산 발표로 반도체 업계 전반적인 재고가 해소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다만, 일각에서는 수요 회복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아직 반등을 확신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메모리 기업들이 생산을 계속 축소했지만 서버, 스마트폰, 노트북 같은 제품 수요가 너무 약해 여전히 반도체 공급 과잉 상태”라며 “하반기에도 가격 하락이 지속될지 여부는 수요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 아무리 재고가 줄어든다고 해도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불안정한 거시 경제 상황도 문제다.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금리 인상 기조 등으로 IT 수요는 여전히 둔화돼있다. 글로벌 경기 회복 및 국제 정세 안정화 없이는 하반기 반등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감산은 통상 3개월 후에 효과가 나타나지만 수요 회복은 즉각 그 효과가 나타난다”며 “고가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전체적인 소비 심리 회복이 관건인데 아직 거시경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전까지 경쟁 업체보다 오랜 기간 무감산을 유지하며 점유율 격차를 벌렸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45.1%, SK하이닉스 27.7%, 마이크론 23%였다. 전분기에는 각각 40.7%, 28.8%, 26.4%였다. 삼성전자만이 5%포인트 가량 점유율을 늘리며 앞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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