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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은 조국과의 연결고리...한국인으로서 정체성 느껴져” [헬로 한글]
해외 입양인, 한글 배움의 여정을 말하다
‘한국말 모른다’는 이유 차별적 시선 부담
어릴적 한국어 기억 남아 습득 효과 좋아
정부 관심 절실...전문교육 프로그램 필요
리마리 앤더슨(왼쪽부터), 에이미 나프즈, 하태식(존햄린) [각 인물 제공]

하. 태. 식. 다섯 살 때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입양된 존 햄린씨는 30년 전 스톡홀름의 한 한식당 주인의 도움으로 입양 서류에 적혀 있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처음 배웠다. 그리고 그 세 글자를 오른쪽 어깨에 문신으로 새겼다.

햄린 씨는 “멀게만 느꼈던 한국이 갑자기 가깝게 느껴졌다”며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제 이름이 한자로 큰 일을 해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더라”며 “나중에는 제 친 형제들이 모두 태자 돌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과 한국 내 가족들과) 확실히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 여정이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인 하태식으로 15년째 서울에서 살고 있다.

어릴 적 해외로 보내진 입양인들에게 ‘한글’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의 핵심이다. 한글을 통해 자신과 조국을 잇는 고리를 찾고, 이를 통해 내가 한국인임을 다시 한번 느끼는 매개체가 바로 한글이었다. 덕분에 K-팝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여느 외국인들보다 한글을 대하는 태도가 훨씬 진중하고 적극적이었다.

▶한글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의 초석’=어린 시절 덴마크로 입양된 매즈 닐슨도 모국어 공부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지는 데 초석이 됐다.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난 닐슨은 두 살 때 덴마크로 입양됐다. 1986년 고국 땅을 다시 밟은 그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개인 교습부터 시작해 대학교 어학당까지 다니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언어 공부가 물론 입양인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모국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모국과 연결된 느낌을 간직하며 살 수 있다”며 “비록 한국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과 출생지가 한국이라는 사실 말고는 한국에 큰 유대감을 느낄만한 부분은 많지 않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지 20여 년이 지난 2010년,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덴마크어 강사로 일하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했고 현재 성신여대 영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사실 한국어를 굳이 배우지 않았더라도 한국에서 정착해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한국어 공부는 다양한 기회로 이어져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웨덴 출신 한인 입양인 리마리 앤더슨은 통역 없이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소통하기 위해 2년 전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스카이프와 같은 인터넷 화상 전화를 이용해 교습을 받거나 국내 어학당 수업을 청강하며 한국어 실력을 키우고 있다.

생후 11개월에 스웨덴으로 입양된 앤더슨은 2013년 생물학적 가족과의 상봉을 위해 처음으로 고국을 찾았다. 그녀는 코리아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께 한국어로 미주알고주알 얘기할 수 있는 날을 오기를 고대한다”며 한국어 공부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한국어 모르는 입양인은 ‘역차별 대상’ 되기도=사단법인 해외입양인연대 골 (G.O.A.L., Global Overseas Adoptees‘ Link)의 설립자 에이미 나프즈는 한국어는 한국을 방문하거나 정착하길 희망하는 입양인들에게 현실적 문턱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얼굴은 한국인인데, 한국 말을 모르는’ 입양아에겐 알게 모르게 역차별이 존재한다”며 자신이 처음 한국에 왔던 1996년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한국어 대신 영어를 쓰면 몇몇은 나를 빤히 쳐다보거나 비웃기까지 했다”며 “그럴 때마다 한국어를 못한다는 사실이 창피했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어 공부에 매진한 나프즈는 과거의 자신과 같이 언어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인 입양인들에 눈을 돌렸고 1998년 오늘의 G.O.A.‘L을 설립해 다양한 한국어 수업과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지난 2018년에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입양인 허브(Adoptee Hub)라는 또 다른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국내외 입양인의 가족 찾기 지원과 한국 국적 회복 등 권익 보호에 힘쓰고 있다.

나프즈는 “한인 입양인들의 모국어 학습은 외국인 대상 한국어 교육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며 이들의 학습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일부 한인 입양인들은 다른 외국인 학습자들과 같이 한국어를 배우게 될 때 차별적인 시선을 경험하곤 한다”며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 모국어에 대한 두려움 내지 불편함이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에 G.O.A.‘L과 같은 입양인 단체 혹은 정부 기관이 운영하는 입양인 대상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입양돼도 모국어 기억 남아...발음도 유지=입양인들의 한국어 교육은 여느 외국인들과 다소 다르다. 어릴적 기억 속에 한국어 말소리에 대한 지식이 남아있기 때문에 여느 외국인들과 다른 과정을 통해 한국어 습득이 가능하다.

최지연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는 최근 코리아헤럴드 인터뷰에서 “한국을 아예 잊은 채 살아가는 입양인들이라도 출생 언어에 노출된 경험만 있다면 모국어 소리를 기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지난 2014년 한국인 최초로 네덜란드에 위치한 ‘독일 막스 플랑크 심리 언어학 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지난 2010~2014년 생후 3개월~17개월 사이 네덜란드로 입양된 한국 출신 입양인 29명을 대상으로 모국어 기억에 관한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입양인들은 네덜란드인 형제 및 친구들과 같이 2주간 똑같은 한국어 청취 훈련을 받았고, 이후 한국어를 직접 발음해 보는 과정을 거쳤다.

실험 결과 한인 입양인들의 발음이 네덜란드 참가자들의 발음보다 정확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출생 언어의 말소리에 대한 기억은 해외 입양 아동이 성인이 되어서도 무의식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해당 연구는 지난 2017년 세계적 학술지인 ‘영국왕립학회지’에 실렸다.

최 교수는 “연구에 참여했던 입양인들은 어린 시절 입양된 이후 한국어를 배운 적이 없으며 한국어에 대한 노출이 극히 제한적인 분들이었다”며 “이들이 한국어 말소리를 듣고 변별하는 영역에서 우수한 재학습 효과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입양들이 듣기 위주의 학습을 시작으로 모국어 재학습을 시작한다면 학습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코리아헤럴드=최재희 기자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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