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지헌·김민지 기자]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수출 통제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이 역으로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규제에 전격 나서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수세에 몰린 중국의 반격이 본격 시작됐다는 ‘신호’로 읽히면서 미중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특히 미국 주도의 ‘칩4 동맹’에 한국도 참여하고 있어 중국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이번 중국 조치 후속으로 국내 기업들도 제재 영향권에 들어설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3일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은 지난달 31일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제품을 대상으로 인터넷 안보 심사를 시작했다. 당국은 “핵심적인 정보 인프라의 공급망 안전을 보장하고, 인터넷 안보 위험을 일으키는 것을 예방해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당국은 심사 대상이 되는 마이크론 제품이 어떤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며 안보 심사에서 문제가 드러날 경우 이어질 후속 조치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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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론 측은 성명을 통해 이번 조사와 관련해 당국과 소통하고 있으며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알렸다. 마이크론은 세계 D램 시장에서 점유율 25% 안팎으로 3위, 낸드플래시 부문에선 10% 내외로 5위를 달리는 기업이다. 작년 중국에서 전년 대비 34% 늘어난 33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체 매출 308억달러의 10%를 넘는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미국이 핵심 첨단 반도체와 관련한 대중(對中)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 반도체 전문 매체 신즈쉰은 2일 “당국이 마이크론을 첫 규제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들이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강화를 부추긴 배후 세력으로 보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미국이 최근 내놓은 규제들의 최대 수혜자가 마이크론”이라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핵심 소재인 웨이퍼를 들고 발언하고 있는 모습 [워싱턴 AP] |
미국은 작년 10월 중국 1위 낸드 기업인 양쯔메모리(YMTC)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거래할 수 없도록 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인 SMIC도 같은 제재를 받고 있다. 또 작년 10월 미국의 기술이 들어간 첨단 반도체와 고성능 반도체를 제조하는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려면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어 일본과 네덜란드에도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또 지난달 확정된 미국 반도체 보조금법의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은 중국 생산 라인에서 첨단 메모리 반도체의 상당 부분을 생산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중국 추가 투자를 제한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마이크론 상대로 사실상 제재에 착수해 국내 반도체 업계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가뜩이나 미국과 중국 사이 끼어 있는 입장에서 당황스러운 추가 변수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상황이 더욱 복잡하게 꼬여지게 됐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장기적으로 기술 자립을 추진하는 이상 한국 기업들이 언제 어떤 제재를 당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 일본, 대만이 참여하는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이른바 ‘칩4’가 지난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 협의체 참여국도 잠재적인 중국 규제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 따른다. 4개국 연합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이들 국가에 대한 중국의 반발과 제재가 더욱 노골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중국이 자국 반도체 기술 수준을 발전시키려면 여전히 미국의 반도체 기술 장비가 필요로 하므로 당장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이것이 미국 기업들의 피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종의 엄포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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