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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 바람이 말을 걸어오는 곳, 그레이트 오션로드
‘해안여행 백미’ 호주 빅토리아주 남단 600리길
참전용사들이 일군 세계 최대 평화·추모기념물
12사도 해상바위群 ‘죽기전 꼭 가봐야 할 곳’
한국야구팀 연고지인 질롱, 힐링 휴양지로 인기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하이라이트인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촬영한 12사도 바위.

남극에서 몰려온 파도는 장쾌한데, 마음은 따뜻해 지는 곳, 너무도 아름다운 대자연 앞에서 경외심 마저 드는 곳.

호주 빅토리아주의 그레이트 오션로드 600리 길은 세상에서 가장 큰 평화의 상징, 추모기념물이자,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지구촌 최고의 해안여행 코스이다. 12사도(Apostles) 해상 바위군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됐다.

이 길은 세계 유래 없는 ‘자발적 뉴딜’의 결과물이다. 전범들을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아주기 위해 연합군에 가담했다가 많은 전우들을 잃고 귀환한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은 1919년 시작된 이 역사(役事)의 주역이다. 처음엔 일자리 없는 용사들에게 일감을 주려고 공공 기부를 기반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엔 참전 용사 대다수가 전우들을 생각하며 자원 근로에 나섰다.

▶남극 바람과 평화를 얘기하는 곳=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남극의 소식을 바람결에 실어 전하는 바다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가는 길이다.

새벽 멜버른을 떠난 차량은 1시간후 그레이트오션로드 출발점인 토키 어촌에 당도했고, 하구가 라군 될 뻔한 전원어촌 앵글시, 등대가 멋진 페어해븐, 오션로드 개척 상징물 메모리얼 아치, 서핑학교가 있는 론, 코알라를 탐방하는 케넷리버, 빠삐용절벽 같은 케이프패튼 전망대, 서핑천국 아폴로베이, 아열대림 울울창창한 오트웨이 국립공원을 지나 12사도에 이른다.

앵글시 마을 제너럴스토어 한켠엔 1929년 발드리 부부, 1937년 마리온 등 가게를 일으킨 동네 아주머니·아저씨 일대기가 전시돼 있어 이채롭다. 위인 만 일대기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당연하면서도 신선하다.

메모리얼 아치는 화려하고 둥근 아치가 아닌, 사작 폴대 틀 위에 공사용 통나무들을 얹어놓고, 그 아래 차량이 지나도록 만들었다. 도로변 소공원엔 작업하는 동료에게 물을 건네주는 전우의 조각상이 만들어져 있고, 주변엔 작업과정들이 흑백사진으로 게시돼 있다.

▶멜깁슨의 추억= 얕으막한 구릉지 아래로 남극에서 몰려온 파도가 세차게 몰아친다. 언덕에는 고가의 별장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영화배우 멜깁슨 것도 있다. 그는 호주유학 시절 이곳을 여행한뒤 반드시 여기서 살겠다고 다짐하고, 스타로서 성공한뒤 집을 지었다.

12사도 바위 일대는 270㎞ 그레이트 오션로드(GOR) 중 하이라이트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 해안 절벽 앞 거대 바위섬 여러 개가 귀엽다고 여겨, 9마리 돼지가족(Sow & Piglets)이라 불렀지만, 이 풍경의 감동이 참으로 크고 경외심이 들기에 ‘성인 12사도’라 통칭하는데 모두 동의한다.

애초부터 12개가 아닌 9개 바위섬이었다. 1990년대~2000년대 15년 사이에 침식과 풍화로 2개가 사라져 지금은 7개이다. 서둘러 꼭 가봐야 할 이유가 되고 있다.

이 일대는 해안가 평야지대가 파도에 끊임없이 침식되면서 70~80m 높이 해안절벽이 이곳부터 그레이트오션로드 종점인 워넘불과 혹등고래 관측소까지 60㎞나 이어져 있다.

강한 곳은 침식을 버텨내며 바다 방향으로 튀어나오고, 약한 곳은 만(Bay) 모양으로 깎여 쑥 들어간 모습이다.

오션로드 개척 상징물인 메모리얼 아치.

▶아! 12사도= 울릉도 용암 지형에서 보듯, 풍화 침식은 동굴을 아치다리로 만들고, 이마저 끊어지면 망부석처럼 된다. 이곳도 침식-해식절벽-해식동굴-육지 분리-교량 형태 형성-해식동굴 가운데 끊김-단독 뾰족 바위섬 형성 등 과정을 거쳤으리라.

3㎞ 해안절벽 앞에 군데 군데 서 있는 45m 높이의 12사도 바위섬 9개의 서쪽에는 이같은 풍화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해식애 2개-교각 3개로 형성됐던 런던브릿지는 30년전 해식애 1개-교각 2개로 육지와 분리됐다. 레이저백(The Razorback)도 수백년 뒤엔 제2의 12사도가 될 지도 모르겠다.

전망대는 늘 북적인다. 인증샷 찍기 경쟁엔 동서고금 남녀노소가 없다. 선명하게 찍히는 사진은 어디에도 없다. 남극에서 몰려온 파도가 이들 거인과 부딪치며 늘 미스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비교적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은 헬기투어이다. 남동에서 출발한 헬기는 북서쪽 20㎞가량 날아갔다가 되돌아온다.

이곳의 석양은 감동의 절정이다. 홍화금동사도상(紅化金銅司徒像) 7남매가 된다. 그래서 돈 좀 더 내는 선셋투어가 따로 있다.

▶로크아드 협곡의 사연= 12사도 지역에서 몇 백m 서쪽으로 가면 레이저백(Razorback)을 만난다. 파도로 침식된 지형이 오목과 볼록, S라인, 분리된 긴섬, 단독 바위섬 등 다채롭게 전개된 레이저백은 파도가 치면 포말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 채 스프레이처럼 이 일대에 뿌려져, 외형의 날카로운 끝부분 만 마모되었다.

서쪽 해안절벽지대를 좀 더 가면 만나는 ‘로크 아드’ 협곡은 난파선 배 이름에서 유래됐다. 1878년 3월2일 로크 아드(Loch Ard)호는 이곳에서 난파당해 배에 타고 있던 54명중 18세 귀족 소녀 에바와 16세 평민 소년 토미만 살아남는다. 둘은 주상절리가 드리워진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낸뒤 구조된다. 에바는 귀국길에 올랐고, 토미는 빅토리아주에 잔류한다. 주변을 도보여행 하다보면 블로우홀, 석회암 더미, 짧은꼬리가위새의 비상 등 다채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육지에 붙었다가 떨어진 다리 모양의 바위섬 런던 브릿지(London Bridge)의 작명에는 고향 영국에 대한 향수가 배어있다. 1990년대 육지에서 분리되면서 영국인 아닌 호주인이라는 존재론적 아이덴티티를 재확인했을지도 모른다.

평화를 지킨 용사들은 해식절벽의 험준한 곳을 개척하며 삽과 곡괭이로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개척했다. 600리를 뚫는데 13년이 걸렸다.

▶ “질롱~페어웰(Geelong, Farewell”= 종점인 워넘불을 찍고 돌아가는 길, 멜버른을 70㎞ 앞둔 곳, 질롱을 빼놓을 수 없다. 빅토리아주 제2도시이자, 호주프로리그 한국인야구팀 질롱코리아의 연고지이다. 한화공장을 짓고 있어 한국사랑은 배가될 것이다.

초대감독을 역임한, 호주올림픽 동메달 결정 한일전 승리투수인 50대 구대성 선수가 올해 다시 선수로 뛴다고 해서 관심이 높은 가운데, 친절한 질롱시에는 해안가 사람 키보다 큰 수백개 목각인형, 지역 예술가들의 전시관 질롱갤러리, 분수대와 해상데크길로 잘 조성된 이스턴비치, 해양다이빙대, 북부 오스틴, 남부 키산, 근교 테린다 등 와이너리로 유명하다. 멜버른의 두 팔, 벨라린-모닝턴 반도 중 벨라린과 가까워 다양한 여행자원을 거느리고 있다.

역사는 개척자의 것이고, 리오프닝 국면 버킷리스트에 도전하는 자가 승리자이다. 그레이트 오션로드가 “인생 뭐 있냐”라며 한국인들에게 손짓한다.

그레이트오션로드=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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