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 1위인 TSMC의 창업자가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 비용이 너무 높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삼성의 비용이 최근 10조원 가량 증가하고, 미국의 칩 공장 보조금 지원 요건이 까다로워지며 미국 본토에 공장을 지을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반도체 업계에서 영향력이 큰 대만 기업 관계자의 목소리까지 더해지며,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입지 매력에 대한 여론이 점차 부정적 기류로 변하는 모습이다.
17일 외신 등에 따르면 전날 대만 TSMC의 창업자인 모리스 창(사진)은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패널 토론에서 “(최근) 미국의 반도체 칩 생산 비용이 2배로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과거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진행 중인 TSMC의 칩 공장 생산비가 대만의 주력 생산라인보다 50% 이상 높을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으나, 이날 이보다 더 높은 실제 2배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TSMC는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상황인데, 총 400억달러(52조5000억원)를 투자하는 2번째 공장도 계획하고 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출신인 모리스 창은 1987년 TSMC를 설립하며 파운드리 사업을 전세계에서 최초로 시작했고, 2018년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모리스 창은 “보안상의 이유로 중국의 칩 기술 개발을 늦추려는 미국의 노력을 지지한다”면서도 “미국이 왜 그렇게 많은 반도체 제조 시설을, (생산) 효율적인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으로 옮기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비용이 2배가 되면 (미국의) 칩의 보급은 멈추거나 상당히 느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TSMC만 미국 본토 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게 아니다.
최근엔 삼성의 공장 비용 급증이 화제가 됐다. 현재 공사 중인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과 관련해, 미국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반도체 보조금보다 추가 비용이 더 높을 것이란 관측이다.
전날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삼성이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짓는 반도체 공장 건설 비용이 처음 계획보다 80억달러(약 10조5500억원) 늘어난 250억달러(약 33조원)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삼성은 2021년 11월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2조4000억원)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삼성이 이미 170억달러의 절반 가량 비용을 지출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지난해 8월 삼성 텍사스주 테일러시 공장 부지 모습.[테일러시 정부 홈페이지 캡처] |
TSMC 반도체 제조 공정 이미지[TSMC 제공] |
건설 비용 급증의 주된 이유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공사비 상승이 전체 비용 증가분의 약 80%에 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철강을 포함한 건축 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인건비도 가파르게 올랐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선 지속적으로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 비용이 비싸다고 지적해왔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생산공장(팹) 유형에 따라 미국의 경우 대만·한국·싱가포르의 팹보다 10년 동안 건설·운영하는 데 약 30% 더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의 팹보다도 미국에서 37~50% 가량 더 비싸다.
이달 초 미국 정부는 반도체법(CHIPS Act) 관련 보조금 지급 조건을 매우 까다롭게 국내 기업들에 부과하기도 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는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해당 기업의 초과 이익을 미국 정부에 반납하고 반도체 핵심 공정에 대한 접근 허용 등을 요구했다. 보조금 수혜 반도체 기업의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설비 증설을 금지하는 가드레일 조항 역시 거론하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미국 내 고용 증대 등 외부 효과가 막대하게 크기에 한국 기업들에 와서 공장을 지으라고 한다”며 “정부와 관련 지자체가 해외와 같이 공장이 조속히 건설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지원하는 사례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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