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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비박스 잘 찾아왔다, 네가 아이를 지켰다”
생선박스에 놓여진 아이 계기로 운영
14년간 2058명 새로운 삶 살게 돼
운영 합법화·보호출산제로 입양 늘리고
아이들을 책임지는 법·제도 구축돼야
이종락 목사가 10일 오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위기영아보호상담지원센터에 설치된 베이비박스를 살펴보고 있다. 박해묵 기자

“ ‘잘했다. 네가 아이를 지켰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러 왔다가 이 말에 우는 엄마들이 많아요. 여기 온 아이들이 유기됐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9일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 교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종락 주사랑공동체 담임목사는 ‘베이비박스가 유기를 조장한다’는 일각의 비판에 단호하게 반박했다. 베이비박스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부모가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마련한 박스를 이른다. 현재 해외 19개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한국에선 이 목사가 처음 만들었다. 이 목사는 “태어난 아이를 무책임하게 버리거나, 심지어는 인신매매를 할 수도 있는데 베이비박스에 찾아온 엄마들은 아이를 어떻게든 살리려는 마음을 먹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로 14년째...2058명 살렸다=이날 베이비박스에는 4명의 아이가 있었다. 이 목사가 아이 한명을 안아들었다. 아직 온몸이 빨간, 이틀전 세상에 나온 아이다.

베이비박스에 신생아가 오는 일은 많다. 이 목사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아이를 낳아 탯줄을 엄마가 임의로 끊거나, 양수가 담긴 양막 그대로 데려오는 등 위험한 상황도 많다”고 했다.

이 목사가 2009년부터 올해로 14년째 운영 중인 베이비박스에 찾아온 아이들은 총 2058명. 대부분이 보육원으로 옮겨졌으며 일부는 입양이 됐다. 많진 않지만, 친부모에게 돌아가는 사례도 있다.

주사랑공동체 바깥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아이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벨이 울린다. 24시간 상주하는 상담직원은 벨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나가 부모를 만난다. 이 목사는 때로는 미혼모를, 때로는 미혼부를 만난다.

설립 초기에는 아이만 받아들고 아이를 놓고가는 부모와의 상담 절차는 없었다. 이 목사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아이는 잘 있느냐’며 전화해오는 부모들이 많았다”며 상담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아이 부모를 만난 이 목사는 당황한 부모에게 “우선 ‘아이를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여기는 안전한 곳이라고 안심시킨다”고 했다. 이 목사의 위로에 고개를 떨구는 부모도 있고, 일부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부모들이 진정이 되면, 이 목사는 부모들이 하고 싶은 말을 들어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느냐’고 물어보면 학생인 경우 졸업하고 취업할 때까지만, 혹은 집을 구할 때까지만 돌봐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이런 부모들을 보며 이 목사의 인식 역시 변화했다. 이 목사는 “처음엔 그야말로 안하무인처럼 느껴지는 부모들도 많았는데, 나마저 배척하면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친정 아버지처럼 대하라고 했다”며 “그러면 거칠게 나오다가도 나중엔 죄송하다며 아이를 잘 부탁한다고 말해오곤 한다”고 했다.

▶첫 해 아이들 올해로 중학생... ‘사회 정착’ 고민도=아이들을 처음 만난 순간은 이 목사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최근엔 베이비박스를 만든 첫 해에 들어와 올해로 중학생이 된 두 아이가 인사를 왔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베이비박스에 머물다 같은 보육원으로 옮겨져, 동시에 같은 가정으로 입양됐다. 이 목사는 “갓 태어나 청색 털이불에 싸여 탯줄을 그대로 달고 있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한 아이는 지금 학교에서 반장도 하고 있다고 한다”며 “너희 엄마는 너희를 사랑해서 지킨 좋은 엄마였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이 목사가 베이비박스를 만든 계기가 된 ‘첫 아이’ 역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2007년 겨울날 새벽 3시, 벨이 울려 교회 대문 앞으로 나가자 생선박스가 있었고, 고양이가 급히 달아났다. 비린내가 진동하는 박스 안에 신생아가 들어있었다. 이 목사는 “이대로 두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에 우선 아이를 돌보기로 했는데, 그즈음 영아유기 사건이 많이 발생하기도 해 마음이 조급해졌다”며 “외신을 보다 베이비박스란 게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해외에서 직접 자문을 받는 과정을 거쳐 베이비박스를 직접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들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느냐는 질문에는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주님에게 ‘여기에까지 오는 아이들이 없게 해달라, 꼭 온다면 정말 살아야 할 아이들만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며 “베이비박스가 열리면 울리도록 설치한 벨이 울리기에 ‘지나가는 사람이 구경하는가보다’하고 열어봤을 때 양수 냄새가 훅 끼치던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모이기 전까지 수 년 동안은 이 목사는 아내와 함께 직접 자택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이 목사는 “안방에 아이들 7~8명을 일렬로 눕혀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유만 줘도 하루가 다 갔고 장애아들은 또 따로 돌봐야해 잠을 잘 시간도 없었다”며 “ ‘이러다 죽겠다’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 기지개라도 켜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 목사의 새로운 과제는 베이비박스 출신 아이들의 ‘정착’이다. 이 목사는 “청소년기까지만 보육시설에서 보내고 정작 성인으로서 사회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며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현재 주사랑공동체는 베이비박스를 거쳐간 아이 140명을 위한 후원 통장을 통해 정착 자금을 모으고 있다. 매년 아이들의 생일을 챙기기도 한다. 최근엔 로봇과 킥보드, 책가방 등 아이들이 받고 싶다고 말한 선물을 보냈다.

▶ ‘출생신고 의무화’, 아이들 더 버려진다=연간 100명을 밑돌던 아이들이 부쩍 늘어난 기점은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된 2012년이다. 친부모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법안으로, 입양아가 친부모를 찾기 쉽게 만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 목사는 “신분을 노출하기 두려워하는 부모들, 미혼 부모이거나 성폭력을 당한 경우, 외국인 불법 체류자인 부모들이 오히려 베이비박스를 더욱 많이 찾게 됐다”며 “입양특례법 개정안이야말로 유기를 조장하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2012년까지 79명이었던 베이비박스 보호 아이 수는 2013년 252명, 2014년 253명으로 늘었다. 이후로 등락은 있었지만 지난해까지 100명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베이비박스는 여전히 법적 인정을 받지 못 하고 있다. 아동복지시설로 신고되지 않은 교회인 주사랑공동체에 아이를 맡기는 것은 현행법상 영아 유기에 해당한다. 이 목사는 “법적으로 공인된 시설이 아니라 입양전문기관에 아이들을 보낼 수도 없다. 이에 베이비박스에 온 아이들을 입양보내려면 주변 지인들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주민등록번호가 없더라도, 보육시설에선 임시번호라도 나와 병원치료를 받을 수 없는데 여기선 이조차 어렵다”고 털어놨다.

해외 사정은 다르다. 미국은 부모가 출산 후 며칠 내로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아이를 안전하게 넘겼다면 부모를 처벌하지 않아, 베이비박스 역시 모든 주에서 합법이다. 베이비박스를 합법적 영아보호소로 인정하고, 병원 차원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나라들도 있다. 이 목사는 “미혼부모 지원이 비교적으로 잘 되어있는 해외에서도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이유는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버려져 죽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정부 지원은 꿈조차 꿀 수 없다. 주사랑공동체에서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가 법적으로 인정이 된다면 가장 먼저 이곳에서 힘쓰고 있는 직원들의 월급을 보장하고 싶고, 24시간 아이들을 지키는 간호사를 안정적으로 두고 싶다”며 “이번에 새롭게 들어온 한 아이는 황달도 심하고 미숙아라 계속해서 직원들이 심박수를 체크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선 외면, 해외선 주목=한국에선 이렇듯 외면을 받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해외에선 ‘한국형 베이비박스’를 주목한다. 임시보호뿐 아니라 아이와 부모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베이비박스는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주사랑공동체에선 베이비박스에 임시로 아이를 맡긴 뒤 다시 데려간 가정에 3년에 걸쳐 각종 지원을 제공한다. 이날 주사랑공동체 창고엔 2월을 맞아 각 가정에 보낼 세제와 기저귀, 물티뷰, 응급약, 즉석식품 등이 쌓여 있었다. 개인이나 기업의 기부로 마련된 ‘베이비키트’용 물품들이다. 지난해 1169명의 부모가 베이비키트를 지원받았으며, 이밖에 186명이 생활비지원을, 3명이 주거지원을 받았다.

이 목사는 “해외에서 새롭게 베이비박스를 만들 때 자문을 구해오는 경우도 있다”며 “일본에 곧 새롭게 베이비박스 2곳이 설치될 예정인데 한국형으로 운영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와서 매뉴얼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부모 보호하고 아이들 책임지는 사회돼야=이 목사는 ‘베이비박스가 필요없는 미래’를 꿈꾼다. 이 목사는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으로 ‘보호출산제’와 ‘부성애법’을 꼽았다.

보호출산이란 쉽게 말해 ‘익명출산’이다. 임산부가 일정한 상담을 거쳐 신원을 밝히지 않고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이른다. 주사랑공동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베이비박스를 찾은 13명의 엄마가 지인의 집이나 고시원, 화장실, 모텔 등에서 아이를 낳았다. 친부모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보완하는 성격이다.

이 목사는 “보호출산 제도를 통해 부모가 익명으로라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아이들이 보육원에 가지 않고 양부모를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호출산제도는 2020년 국회에 발의됐으나 현재 계류 중이다.

부성애법은 DNA 검사를 통해 아이 아빠를 추적해 양육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이 목사는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이후 한동안 베이비박스에 올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겠구나 싶어 안타까운 심정이었다”며 “보호출산제와 부성애법, 두 법안이야말로 태어난 아이들을 국가에서 끝까지 책임짐으로써 베이비박스가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변화의 기류는 있다. 2018년과 2021년 두 차례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부모에게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검찰은 피고인을 영아 유기죄로 기소했으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구체적 상황을 밝히며 베이비박스 측과 충분한 상담을 거쳤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이 목사는 이 판결을 언급하며 “초기엔 베이비박스를 두고 불법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많았지만, 장기간 운영해오면서 천천히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며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찾아온 부모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아이들을 책임지는 법과 제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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