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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인슈타인이 의사하면 국가손실"[의대쏠림 긴급좌담회]
의대쏠림 현상 분석·해결책 모색 전문가 좌담회
김하일 카이스트 교수·박재근 한양대 교수
이선종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한희철 고려대 교수·홍후조 고려대 교수 등 참석
“최상위권 인재 이공계 진학할 유인 만들어줘야“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의대 쏠림 긴급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한희철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김하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 이선종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친환경융합소재 수석연구원,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박병국 헤럴드경제 사회팀장 [사진=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아인슈타인이 의대에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수학·물리학을 해야 하는 천재가 동네에서 개업해, 이를테면 피부과에서 레이저를 쏘고 있다? 사회와 국가로서는 엄청난 손실입니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의대 쏠림’ 현상 심화 원인 분석 및 해결책 모색을 위한 전문가 긴급좌담회를 진행한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전문가들은 대학 입시에서 이과 최상위권 수험생 대부분이 의대 진학을 택하는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최우수 인재들이 이공계에 진학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국가가 다양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말로만 이공계 처우를 개선하자는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과학기술인재 육성을 위한 예산 확대와 실질적인 집행, 기술개발 관련 각종 세제 혜택과 이공계 진로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좌담회는 김하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카이스트 의과학연구센터 소장),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 이선종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복합나노소재연구실 수석연구원(공학박사), 한희철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소장)등 5명의 전문가(가나다순)가 참석해 박병국 헤럴드경제 사회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과 최상위 신입생들의 등록 포기 및 자퇴율이 높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반도체 계약학과 같은 경우 수시로 뽑은 학생들은 100% 다 빠져 나간다고 보면 된다. 합격자들이 원 턴(한 바퀴), 투 턴(두 바퀴) 빠진다는 표현을 쓰는데 서울의 S대학 같은 경우는 3.5턴이 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학교에서 물어보면 대부분 다 의대를 간다고 한다. 또 1학년 학생의 15% 정도가 휴학을 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반수를 해 지방대 의대에 가려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공계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을 뽑아 사내 장학 프로그램으로 석·박사 교육 및 유학 시켜주고, 그들 중 미래의 임원, 최고경영자(CEO)가 나오게 하려는 건데, 막상 뽑고 나면 가장 성적이 우수했던 학생들은 다 빠져나가는 것이다.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열린 ‘의대 쏠림 긴급 좌담회’에서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해묵 기자]

김하일 카이스트 교수=서울대 공대에 입학할 친구들 절반 정도가 의대를 가기 위해 재수를 한다. 수능 한 문제를 더 맞히기 위해 1년을 재수한다. 실력의 향상이 아니라 기술과 운이다. 재수, 3수, 4수 해서 의대에 들어갈수록 일반의로 빠져버리는 경향이 높다. 서울대 공대에 가 있어야 할 A라는 학생이 4수 해서 의대를 졸업하면 동네 어딘가에서 반복된 업무를 하며 한 달에 1000만원을 벌며 사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열린 '의대 쏠림 긴급 좌담회'에서 김하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해묵 기자]

▶의대 쏠림 현상이 최근 더 심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선종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지위가 일반 이공계 출신들, 이공계 박사들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 때문이다. 경제적인 수입도 중요하지만 비교 대상인 박사급 인력들과의 수입의 차이는 실제로는 사실 크지 않다고 본다. 그보다는 일반 학부출신 이공계 출신들이 괴리감이 너무 크다고 느끼기 때문에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것 같다.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열린 ‘의대 쏠림 긴급 좌담회’에서 이선종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친환경융합소재 수석연구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해묵 기자]

한희철 고려대 교수=국민보건의료 실태조사를 보면 의사들 평균 연봉이 2억3000만원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노동자, 근로소득자들의 연평균 임금은 약 4000만원 정도로, 의사가 약 5~6배가 된다.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가 특별히 다른 나라들보다 의사들의 소득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열린 ‘의대 쏠림 긴급 좌담회’에서 한희철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해묵 기자]

홍후조 고려대 교수=현대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인공지능(AI), 반도체, 원자핵공학, 우주과학 등 학문이 융합돼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빅픽처’를 그리기 점점 어려워진다. 반면 의학은 정신이든 물질이든 기능이든 그 대상이 ‘사람’으로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의학의 매력도가 높아지는 측면도 있다. 게다가 우리 교과과정 수업시간 비중을 보면 문과가 50%, 예체능이 20%고, 이과가 30%밖에 안된다. 초등학교 선생님 90% 이상이 문과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오리엔테이션이 잘못되고 있다. 초중등 때부터 이과 수업 비중을 50%로 늘려야 한다.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열린 ‘의대 쏠림 긴급 좌담회’에서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해묵 기자]

김하일=전세계 어디를 통틀어서 봐도, 경제가 안좋으면 안정적 직업인 의사 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긴 한다. 최근 우리나라가 이런 건 지금 대학을 가는 아이들의 부모세대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직접 겪으며 안정성을 더 추구하는 측면도 있다. 일단 의대를 졸업하는 순간 뭔가 특별히 잘못하지만 않으면 1년에 1억원 정도를 버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의대 쏠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선종=이공계 진로에서 경제적 수익을 다양하게 창출할 기회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기술개발의 세제 혜택도 그런 부분이다. 이를테면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1억원짜리 기술이전을 하면 50%는 해당 기관이 특허 등 관리 비용으로 가져가고, 나머지 50%에서 36%를 세금으로 떼고 나머지 3000만원을 발명자들이 지분에 따라 나눠 갖는 구조다.

박재근=이스라엘은 대학생 중 창업하는 비율이 80%다. 우리는 부모들이 안정적 직장을 최우선한다. 부모들의 마음도 바꿔야 한다. 똑똑하면 창업 한 번 해봐라, 성공한 사람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언론도 많이 해야 한다. 정부도 인재 분배를 위해 많은 정책을 쓰고는 있는데 피부로 안 느껴지는 게 문제다. 정권에 관계 없이 지속되면서도 빠른 사회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인재 정책이 필요하다.

김하일=의대를 가는 건 직업 선택의 자유라서 사실 막을 방법은 없다. 의대쏠림 현상 하나만 (해결하기 위해) 파고 들면, 오히려 쏠림을 부추기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교 졸업하는 18세 학생이 의대에 들어가고 직업이 결정돼버리는 제도 자체가 문제 있다고 본다. 직업 선택을 (성인이 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뒤로 미루는 게 맞다.

이선종=드라마나 영화 등 방송에서 다양한 이공계 성공사례를 소재화해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공계 박사들이 과연 얼마나 성공하고, 경제적 이득과 사회적 지위가 올라갔을까를 부각해줘야 한다. 아울러 이공계에서도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근무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최우수 인력에 대한) 정년 관련 보장도 필요하다.

홍후조=정부 부처들이 어떤 대학, 어떤 전공학과를 관할해 인력을 양성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은 다 교육부에 모아 놓으니까 감당이 안된다. 교육부가 반도체나 AI를 어떻게 아느냐. 사실 다 산업통산자원부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다른 부처 소관인데 교육부가 움켜쥐고 있는 거다. 교육부에서 단과대학이나 전공들을 되돌려 줄 필요가 있다.

박재근=반도체 인력이 모자라다고 하면, 산업부는 산업부대로 산업인력 양성 기능, 과기부는 과기부대로 과학기술인력 양성 정책을 하다가 대학이 실제 학과를 신설하려고 하면 허가는 교육부가 하게 돼있다. 정부부처 간 협조,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필요하다. 인재양성에 대해서는 국가백년지대계로 부처이기주의를 깨고 완전히 한 몸통으로 움직여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로 의사 수를 늘려 의대 유인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한희철=의대 정원 확대는 의대 쏠림 현상과는 관련이 없을 것 같다.

박재근=모든 대학의 입학 정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면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선종=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면서 변호사 수를 늘려 법률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늘어난 건 맞지만, 재판은 총 3번에 걸쳐 회복할 기회가 있는 데 반해 우리 신체는 어떤 순간 정확한 치료를 받지 못했을 경우 회복되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수준 높은 의사들이 계속 공급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의대 정원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사과학자 육성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목소리도 많다

한희철=우리나라 정부가 의학을 과학으로 생각하고 있나. 의사 만드는 시스템은 의과대가 갖고 있고, 환자를 돌보는 건 병원 시스템이 갖고 있다. 그런데 의학 연구는 각자 알아서 각자도생하는 구조다. 저도 의사과학자지만 저희 때는 한 과에 100명이 졸업하면 5명 정도가 기초 연구를 했다. 지금은 거의 하지를 않는다. 현재 있는 의사과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만들어줬느냐에 대한 반성이 먼저다. 미국은 국립보건원(NIH) 연구소가 있는데 국립과학재단(NSF)보다 훨씬 큰 금액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학연구소도, 정부출연 연구소도 없다.

김하일=미국의 경우 의대 랭킹이 2종류다. 하버드나 존스홉킨스 의대는 연구중심이다. 1차 진료인(의사) 양성하는 의대와 다르다. 미래 사회가 바이오·헬스로 간다고 하면, 의대에 간 인재들을 관련 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고, 몇몇 의대는 연구중심 형태로 교육을 좀 바꾸거나 새로운 형태의 교육기관을 시도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임상은 우리가 너무 잘해서 이제 세계 100대 병원 안에 드는 병원이 서울에 7개 있다. 전세계에 이런 도시가 없다. 이제 그 다음 플레이어를 키워야 하는 때가 왔다. 정부가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여전히 제조업의 나라다. 전체 R&D 투자 규모를 보면, 공학·조선 등에 비해 바이오 분야 투자가 적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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