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ESG 시대, 이사회가 가야 할 낯설고 험한 길 [조용두의 글로벌 경영노트]
폴 폴만 유니레버 CEO가 2013년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식량안보를 위한 국제회담(N4G)에서 연설하고 있다. [영국 국제개발부 자료]

ESG가 일상적인 용어로 언론에 등장한 지도 2~3년이 지났다. 이제는 ESG가 무엇의 줄임말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누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ESG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 또한 늘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Economist)지에서는 지난해 8월 ESG가 측정이 어려우며 개념적으로 문제가 많아 이를 시정하지 않으면 E(Exaggerated) S(Superficial) G(Guff)와 같은 과장되고 피상적인 ‘헛소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SG의 선봉에 섰던 블랙록(Blackrock) 같은 기관도 주주 이익을 위해 한발 후퇴하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ESG가 보수 정치인들의 주된 공격대상이 되기도 했다.

매년 실시하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컨설팅(PwC)이 미국 상장기업 이사회 구성원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도 ESG에 관한 관심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2021년도 설문조사에 참여한 704명의 이사 중 55%는 ESG 이슈가 이사회의 정기 주요 의제라고 답했다. 2019년 동일 질문 시 45%에서 2020년에는 52%로 급증하지만, 2021년에는 다소 정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SG 이슈가 회사 전략과 연계돼 있는가, 회사 재무실적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도 2020년에는 높은 증가세를 보이다가 2021년에 소폭 하락했다. PwC 설문조사도 최근 ESG가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회사 내에서 적용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ESG라는 용어는 유엔 보고서에 2004년 처음 등장했는데, 최근 들어 금융시장에서 기업에 자금조달을 할 때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ESG 경영이라는 용어보다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더 친숙하다고 할 수 있다. 지속가능경영이 과거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에서 시작해 사랑받는 기업을 넘어 친환경적인 기업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이라면, ESG는 그러한 결과를 금융시장에서 평가하기 위한 지표이자 기업에 내민 시험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남극의 빙하 밑에 무인 측정기를 넣어 온도를 측정해보니 남극의 대표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어 머지않아 해수면이 50~70cm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만일 이대로 된다면 기업들이 ESG 경영에 대해 절대 좌고우면할 시기가 아니다.

ESG를 인수분해 해보면, 기업은 그동안 환경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신들의 회사가 속해 있는 사회를 경시했으며, 그 문제의 중심에는 기업 지배구조가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이사회를 중심으로 주주가치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회사의 가치사슬에서 환경에 관한 관심이 높도록 회사 내외부의 이해관계자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경영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G가 제대로 서야 E와 S가 따라서 개선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속가능경영을 추구하는 기업의 이사회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성공의 척도는 무엇인가? 우선 단기적인 이윤을 일차 목표로 둬서는 안 될 것이다. 상장기업의 경우 이러한 경영목표하에서는 주식시장에서 지속해서 요구되는 단기적인 기대 이윤을 쫓다보면 소위 ‘단기성과주의(Short-termism)’에 빠져 헤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속가능경영을 추구하는 경영진과 이사회는 단기적으로 비용이 수반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이 경우 이사회에서 단기적인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을 통해 성장과 ESG를 동시에 추구하고 장기적으로 착하고 역량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지지해 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윤 없이 성장 없고, 성장하지 않으면 기업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사회 구성원들은 벽에 부딪히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돋보이는 성과를 보인 글로벌 기업 중 유니레버(Unilever)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9년부터 10년간 유니레버 CEO를 역임한 폴만(Polman) 회장은 프록터, 갬블 등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경영인으로서 지속가능경영과 수익성 있는 성장을 동시에 달성했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 기업의 표본이 된 바 있다. CEO로 취임하자마자 분기별 영업이익 전망치를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획기적인 것은 기업은 성장시키되 환경오염 물질 배출은 최소화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유니레버의 성과는 회사의 성장과 환경 물질의 배출이 비례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탈동조화됐기 떄문이다. 이러한 성과는 CEO의 역량 이외에 단기적인 이윤을 포기하더라도 인내해 주고 중장기적으로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이사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니레버와 같은 지속 가능 기업이 한국에서 나타나기 위해 한국 기업의 경영진과 이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최근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들은 이러한 세계적인 ESG 흐름을 미리 포착하고 빠르게 ESG 경영을 회사의 전략체계에 통합했다.

IMF 위기에서 벗어난 국내 기업들은 반도체, 가전, 자동차, 조선, 철강 등에서 처절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글로벌 선도기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이러한 성과가 아직 부실한 지배구조에도 불구하고 만들어낸 성과인지 지배구조가 어느 정도 개선되어 생긴 결과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사실 지배구조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영미 기업이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을 보면서 영미식 지배구조가 답이 아니며,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특히 ESG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한국기업의 이사회가 직면할 현실은 매우 어렵다. 착하고 선한 의도를 가진 기업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이윤 창출을 통한 주주가치와 지속가능한 경영을 동시에 보여줄 역량과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이차 방정식이 아니라 아주 고차원적인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사회가 특별한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기업의 창업이념을 잘 이해하고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처지와 환경·사회적 위험을 고려하면서 두 마리,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2차전지 사업, 소재사업은 반도체에 이어 세계 1등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많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생산시설과 원료 조달, 전지 리사이클 등 ESG 이슈를 잘 고려해 성장과 ESG를 동시에 잡을 기회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다. 유니레버와 같은 ESG를 중심으로 한 이사회 운영을 우리 실정에 맞게 재해석해 한국형 지배구조 선진화에 참고해야 할 것이다.

25년간 담금질을 한 한국의 기업지배구조가 CEO의 혁신적이고 과감한 리더십과 결합한다면 ESG 경영에서도 글로벌 차원의 선도기업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플레이션, 고금리,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ESG 경영의 침체기를 잘 넘기고 한국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성장과 친환경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를, 한국의 기업지배구조가 E와 S를 잘 조율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bonsa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