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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대 간다며 입학 포기에 퇴사까지” 인재 뺏기는 K-반도체 ‘비상’ [의대 블랙홀]
한국 수출 기둥 책임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종합 역량 갖춘 인재 부족에 울상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인재 블랙홀’이 된 의과대학에 국가 핵심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의 기둥을 책임지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는 당장 미래를 책임질 인재가 없다며 연일 아우성이다. 기초과학, 공학, 소재 등 종합적인 역량이 요구되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인재 양성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34%가량을 ICT 항목이 차지했다. 이 중 반도체 수출액 비중은 56.1%, 디스플레이는 10.5%로 집계돼 70%가량을 두 분야가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는 늘 “사람 뽑는 게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석·박사는 물론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 현장에 투입하기까지 상당한 투자를 해야 하는 것도 애로 사항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춘 학생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이 가장 큰 문제지만 핵심은 인재의 퀄리티”라며 “대학에서부터 의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깊은 역량을 갖춘 인재를 찾기가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라인. [삼성전자 제공]

어렵게 인재를 뽑았는데 의대 진학을 이유로 퇴사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 중소 반도체 소재·부품기업을 운영 중인 A대표는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소 소부장기업의 경우 의대에 가겠다며 퇴사하는 신입사원이 생겨나고 있다”며 “의사가 되면 전문직이고 고연봉에 정년도 없기 때문에 젊은 직원들이 진로를 바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은 과학지식이 총집합한 종합예술로 꼽힌다. 때문에 전방위적인 자연계·공학계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기창 서울대 산학협력중점교수는 “현장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종합적인 역량을 가진 학생들을 차근차근 길러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지금은 말 그대로 모든 반도체기술 분야에서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재 부족 우려가 심화되자 정부도 발 벗고 나섰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과 함께 총 2228억원을 투자해 향후 10년간 실전형 고급 인재 2400여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에서는 앞으로 인력 부족이 더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인력 수요는 지난 2021년 17만7000명에서 2031년 30만4000명까지 연평균 5.6% 늘어날 전망이다. 향후 10년간 약 13만명의 인원 충원이 필요한 셈이다. 그러나 직업계 고교 및 대학(원)에서 연간 배출되는 반도체 산업인력은 약 5000명에 불과하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도 앞서 한림대 도원학술원 학술심포지엄에서 “현재 예상으로 2031년 학·석·박사 기준으로 총 5만4000명 수준의 인력 부족이 예샹된다”고 우려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라인. [삼성전자 제공]

확실한 예산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정부에서 지원 중인 반도체 대학원 양성 프로그램으로 배출되는 인력은 해마다 200여명이 안 된다”며 “현장에서 예상하는 필요 인재 수와 괴리가 큰 만큼 더 많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의대가 아닌 기초과학 전공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반도체업계의 고위 관계자는 “결국 확실한 인센티브와 국가적 비전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국가경제의 한 축을 책임지는 핵심 산업에 기여한다면 경제적 이익과 자부심을 동시에 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일관된 정책을 이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제언에도 2023학년도 서울 주요 대학 반도체 관련학과에 합격한 학생 상당수가 등록을 포기했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10명 모집에 13명의 추가 합격자가, 올해 신설된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16명 모집에 44명의 추가 합격자가 나왔다. 모집인원 대비 275%, 약 3배에 달한다.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도 10명 모집에 5차까지 추가 합격자를 발표하고 나서야 충원을 완료했다.

반도체 인재 부족 우려가 커지자 관련학과가 없던 서울대도 올해 처음으로 ‘시스템반도체공학’ 전공 신설을 추진하고 나섰다. 서울대는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내 시스템반도체공학 전공을 신설해 신입생 57명을 선발하겠다는 계획안을 지난달 교육부에 제출했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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