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사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서 그룹 미래 비전을 발표하는 모습 [HD현대 제공]

[헤럴드경제=한영대 기자] “선박 애프터서비스(AS) 사업을 지금보다 더 키워야 합니다.”

9년 전인 2014년 당시 정기선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현 HD현대 사장)은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현 HD현대그룹 회장)에게 한 가지 요청을 했다. 현대중공업의 사후관리 사업 부문을 하나의 회사로 분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박 사후관리 사업의 잠재력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회사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당시 정 부장은 판단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2016년 말 현대글로벌서비스(이하 HGS)가 탄생했다.

약 3년 간(2018~2021년) HGS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은 그는 회사 성장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본사가 있는 부산으로 이사까지 하면서 부산과 조선소가 위치한 울산을 오가며 업무를 수행했다. 정기선 사장의 주도로 HGS는 매년 성장, 5년 동안 매출을 5배 키우며 알짜 계열사로 자리잡게 됐다.

HGS는 지난해 기준 1조3338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설립 다음 해인 2017년(2381억원)과 비교했을 때 5배 이상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1419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부터 4년 연속 영업이익 1000억원 돌파에 성공했다.

HGS가 단기간에 크게 성장한 데는 정 사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사업 영역을 기존의 선박 AS에 안주하지 않고 스마트십 솔루션까지 확대했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 사장 주도 아래 HGS는 다양한 스마트십 시스템을 선보였다. 통합 스마트십 솔루션(ISS)이 대표적이다. ISS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선박 안전과 에너지 관리 등 최적의 항해 서비스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HGS는 ISS 등을 지닌 모든 선박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친환경 선박 개조 사업도 육성했다. 강화되는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정 사장의 지휘로 HGS는 배기가스저감장치인 스크러버 등 친환경 선박 설비의 설계 및 설치, AS를 한 번에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됐다. 미국 최대 사모펀드인 KKR이 2021년 3월 HGS에 프리 IPO 투자를 유치한 것도 정 사장의 작품이다.

외형을 키우면서도 한국조선해양 등 HD현대 계열사에 대한 의존도는 대폭 낮췄다. 회사 출범 당시 20% 이상에 달했던 HGS의 내부거래 매출 비중은 최근 3년(2020년 8.4%, 2021년 11.4%, 2022년 8.1%) 동안 10% 안팎으로 낮아졌다.

HD현대 선박 자율운항 전문 회사인 아비커스가 지난해 10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보트 쇼인 ‘포트로더데일’에 참가해 선박 자율운항 기술력을 선보였다. [HD현대 제공]

HGS 성장의 성과를 인정받아 HD현대 사장에 오른 정 사장은 그룹 미래 먹거리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수소와 바이오,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HD현대는 국내 최초로 수소엔진 첫 단계인 LNG·수소 혼소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혼소엔진은 디젤연료와 액화천연가스(LNG)·수소 혼합 연료를 선택적으로 사용해 유해 배기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바이오의 경우 이른 시일에 성과를 내고자 다양한 업체와 손을 잡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삼성전자와 모바일 헬스케어를 제공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HD현대 자회사인 메디플러스솔루션이 자체 개발한 모바일 건강관리 앱과 갤럭시 워치를 연동시키 위한 조치이다.

주력 사업인 조선 분야에서도 과감한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HD현대는 세계 최초로 스마트조선소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스마트조선소는 설계부터 생산에 이르는 모든 공정을 실시간으로 연결, 스마트한 작업 관리가 가능한 조선소이다. HD현대는 친환경 선박은 물론 자율운항선박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정 사장은 앞선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 CES 2023에서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로 친환경 선박 수요는 지속해서 증가한다. 이는 우리 그룹 조선 계열사에 더 큰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