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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압박에 먹거리·술값 인상, “없던 일”로…“우리만 쥐어짜”
고물가 시대에 먹거리 가격 부담이 늘면서 유통업계가 가성비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할인 행사에 힘을 주고 있다. 27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24 편의점에서 한 시민이 그날 출시된 ‘39도시락’과 ‘42도시락’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연합]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연초부터 이어졌던 물가 인상 소식과는 대비되는 가격 인상 철회 사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업계의 간담회를 하루 앞둔 27일 풀무원,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등이 각각 생수·소주·맥주 가격을 동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식용유, 분유 등을 만드는 업체도 가격 인상을 철회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압박에 의해 사실상의 가격 통제가 이뤄진 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식품업계, 겉으론 “소비자 부담 최소화”…속내는 “정부, 가격 통제”

28일 업계에 따르면 풀무원은 3월부터 인상하려던 생수 가격을 동결한다고 전날 발표했다. 풀무원은 ‘풀무원샘물’과 신제품 ‘워터루틴’ 등 생수 출고가를 5% 올릴 예정이었으나 내부 결정으로 이 계획을 철회했다. 풀무원 관계자는 “고물가 시대 소비자의 가격 부담을 덜기 위해 내부적으로 계획이 변경됐다”며 “당분간은 인상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소주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와 맥주업계 1위인 오비맥주 역시 당분간 가격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공지한 상태다. 오비맥주는 4월 주류세 인상에 따라 가격 인상을 유력하게 검토해왔다. 그러나 최근 소줏값 논란이 맥주 등 다른 주류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적잖이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일단은 저희가 부담을 안고 가는 쪽으로 내부적인 결정이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품업계 하소연…“고물가 의식한 유통가 저가경쟁에 부담 더 커져”
지난달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가스·난방비 등 연료 물가가 1년 새 30% 넘게 상승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전기 계량기가 나란히 설치돼 있다. [연합]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이 사실상 기업 조르기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여론을 의식한 가격 통제라고 본다”며 “그럼에도 식품은 규제 산업이다 보니 정부 시그널을 무시했다가는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식품업체들은 마트 등이 고물가 상황에서 벌이고 있는 저가 경쟁에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제조사는 원부자재값 등 가격 상승의 직격탄을 맞지만 유통업체는 얼마에 들어오든 거기에 가격을 싸게 붙여 팔면 되는 상황”이라며 “이에 따른 부담은 제조사에게 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식품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물가 안정 시도의 타이밍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공공요금은 물론 계란, 우유, 밀 등 원재료 가격이 오를 때 미리 정부가 역할을 하지는 않고 있다가, 결국 기업이 가격을 올려야 할 때가 되자 이제 와서 손을 쓰는 게 정부 역할이 맞냐”고 말했다. 이어 “저희도 땅을 파서 장사를 하는 게 아니지 않냐”며 “(현재 정부의 모습은) 임대료, 인건비 등 전체적인 비용이 다 포함돼 가격이 오르는 자연스러운 시장 상황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소비자, 환영 속 우려…“나중에 한꺼번에 인상하면 뒷감당 걱정”
26일 서울의 한 마트에 진열된 소주·맥주 제품의 모습. [연합]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강도 높은 대응을 주문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농식품부는 이날 오후 주요 식품업체 대표들을 만나 물가 안정을 논의하는 간담회를 개최한다. 정부는 1월에도 식품업계에 물가 인상 자제를 요청하는 간담회를 연 바 있다.

소비자는 가격 동결 소식을 환영하면서도, 우려 섞인 시선도 거두지 않고 있다. 1인 가구로 서울에서 자취 중인 30대 직장인 조모 씨는 “월급보다 물가가 더 오르니 퇴근 후 끼니 걱정은 이미 일상이 됐다”며 “밀키트, 간편식품으로 최대한 대체하니 몸이 더 약해지는 거 같았다. 먹거리 가격이 동결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인천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30대 주부 정모 씨는 “가격 동결이 당장 지금은 소비자로서 좋지만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개입하는 게 맞는지 의문도 든다”며 “기업이 지금 (가격을) 안 올렸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올릴 수도 있다. 뒷감당을 소비자가 하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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