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캣츠’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명작이면서, 이 땅의 수많은 ‘집사들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에스앤코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살금살금, 슬금슬금, 소리 없이 등장해 놀래키는 데엔 일등. 짓궂은 장난의 성공에도 새침하고 도도하게 돌아선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코앞까지 얼굴을 가져와 빤히 쳐다보기 일쑤다. 워낙에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냥신’ 나응식 수의사)이다. 목적을 달성하면 또다시 쿨하게 등을 돌린다. 고양이 사전에 ‘뒤를 돌아보는 법’은 없다. 발가락을 꼿꼿이 세운 채 “소리 없이 움직이는 지족 보행”(나응식 수의사)으로 ‘진짜 고양이’처럼 요염하고 당당하게 걸어간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는 모두 26마리. 누구 하나 ‘똑같은 고양이’는 없다. 사춘기 고양이 빌 베일리, 수컷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는 섹시한 고양이 봄발루리나, 당당하고 아름다운 샴 고양이 카산드라, 순진한 아기 고양이 빅토리아, ‘관종’이자 반항아인 럼 텀 터거까지…. 무수히 많은 고양이가 생생히 살아났다.

뮤지컬 ‘캣츠’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명작이면서, 이 땅의 수많은 ‘집사들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미처 알지 못했던 고양이의 습성이 무대 위의 모든 순간 펼쳐진다.

일명 ‘냥신’으로 불리는 ‘스타 수의사’ 나응식 한국고양이수의사회 부회장은 “고양이가 강아지와 가장 큰 차이점은 가축화되지 않은 동물이라는 데에 있다. 그래서 고양이는 여전히 미스터리하고 불완전한 동물로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 수의사’ 나응식 한국고양이수의사회 부회장 [클립서비스 제공]

고양이들의 시선으로, 고양이의 세계를 그린 ‘캣츠’는 미처 몰랐던 고양이를 만나는 시간이다.

16만 30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베니패밀리를 운영하는 ‘냥집사’ 박권혜 씨는 “고양이들의 행동 묘사를 어떻게 이렇게 멋진 춤과 동작으로 잘 표현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동작들이 비슷하다”며 “벌러덩 눕기, 발등을 들고 사뿐히 걷기, 그루밍 하기 등등 고양이마다 제각각 성격과 행동들이 다른 점들도 너무 잘 표현해줬다”고 말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공동체 의식’은 고양이가 “‘모계사회’ 중심의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했다. 나응식 수의사는 “고양이들은 암컷을 중심으로 가족을 꾸리고, 수컷은 사냥을 통해 먹이를 가르친다”며 “가족 구성원 중 서열 1순위인 어미 고양이는 아이들에게 사냥하는 법, 소통하는 법, 화장실 가는 법을 가르치며 사회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가족 관계를 떠나 아기 고양이는 모두가 보호하고 교육한다는 점이다. ‘캣츠’에 등장하는 제니애니닷과 같은 존재다. 낮에는 내내 앉아만 있어 게을러 보이지만, 밤만 되면 아기 고양이를 교육하느라 바쁜 ‘어머니 같은 존재’다. 애드미터스 역시 아기 고양이를 보호하는 ‘친절한 고양이’로 그려진다. 나 수의사는 “고양이들은 일종의 공동 육아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민한 고양이 드미터와 수컷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는 섹시한 고양이 봄발루리나. [에스앤코 제공]

고양이도 사춘기가 있다. 생후 4~6개월 정도.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 3학년~중학생까지의 시기다. 그 무서운 ‘중2병’이 고양이에게도 온다. ‘캣츠’에선 빌 베일리가 사춘기로 나온다. 매사에 ‘터프하고 자신만만’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시기의 고양이는 “사고를 많이 치고, 말도 안 듣고, 호기심이 많아진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박권혜 씨는 “사춘기의 장난꾸러기 고양이나 예민한 고양이, 반항아 고양이들의 모습이 나올 때 집에 있는 우리 고양이들이 저절로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 시기의 ‘예절 교육’은 특히 중요하다. 나 수의사는 “이 무렵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안하면 아이들이 먹는 것에 까다로워지고, 인내심도 부족하며, 직설적이고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노미를 설명하는 노래도 흥미롭다. ‘고양이들의 지도자’인 올드 듀터러노미는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전부터 존재해 9명의 아내와 99명의 아이들을 둔” 고양이다. 나 수의사는 “고양이는 평균 15년을 살지만, 집에서 생활할 경우 20년까지 살 수도 있다”며 “특히 번식력이 높은 동물이라 99명의 새끼를 낳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낮에는 내내 앉아만 있어 게을러 보이지만, 밤만 되면 아기 고양이를 교육하느라 바쁜 ‘어머니 같은 존재’인 제니애니닷. [에스앤코 제공]

고양이와 친해지는 데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저마다 너무도 성향이 달라 일반화할 수도 없다. 수많은 집사들에 따르면 아기 때부터 마음을 여는 경우도 있지만,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 이른바 ‘관상묘’(까칠한 고양이를 바라만 보며 애타하는 집사들 사이의 애칭)도 있다.

심지어 외모마다 성격도 다르다. 나 수의사는 “페르시안과 브리티시 쇼트헤어는 동글동글한 생김새처럼 성격도 유순한 반면 이집트 벽화에서 많이 보이는 아비시니안이나 러시안 블루, 아메리칸 쇼트헤어는 예민한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러니 친해지는 속도 역시 제각각이다. 한 가지 조언은 있다. “무심한 듯 유심하라.” 나 수의사는 “관심이 없는 척 하면서 관심을 가지라”고 귀띔했다.

마음을 연 고양이는 행동이 달라진다. 고양이와 사람 사이는 물론 고양이 간에도 그렇다. 워낙 ‘바디 랭귀지’가 풍부한 동물이다 보니,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알로 그루밍’은 대표적인 신뢰와 친근함의 표현 방식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고양이의 털을 핥아 주는 방식이다. 만약 고양이가 집사를 핥아준다면 ‘당신은 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동반자’라는 뜻이다. ‘눈키스’(Kitty kisses)는 집사들이 고양이를 키우며 감동하는 애정표현이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칠 때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면, 고양이도 똑같이 눈을 깜빡인다”고 한다.

청개구리 성격의 ‘관종’ 럼 텀 터거 [에스앤코]

박권혜 씨는 “발라당 누워 배를 보여주기도 하고, 꼬리로 집사의 다리를 감기도 하며, 그르릉 소리도 내고, 무릎에 와서 안기거나 꾹꾹이(기분이 좋거나 편안할 때 푹신한 곳에 앞발을 꾹꾹 번갈아 가며 안마를 해주는 듯한 행동) 등의 애정표현을 한다”고 들려줬다.

그런가 하면 화가 났을 때는 ‘하악질’을 하거나, ‘우웅’하는 소리를 낼 때도 있다. 박권혜 씨는 “보통 고양이들끼리 보이는 행동이고 집사한테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며 “낯선 사람에게는 경계할 때 다가오지 말라는 표시로 경고를 준다”고 말했다.

사람을 위해서만 발달한 ‘소통방식’도 있다. 나 수의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자신의 존재를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내는 소리”라며 “고양이끼리는 잘 내지 않는 소리”라고 했다. 고양이끼리는 페로몬 분사를 통해 위험이나 존재를 알린다.

순진한 아기 고양이 빅토리아 [에스앤코 제공]

‘캣츠’엔 나의 최애 고양이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한국 관객의 입장에선 소위 말하는 스타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최근엔 작품 속 다양한 고양이를 만나는 재미에 N차 관람객도 등장하는 추세다. ‘캣츠’를 만난 이후엔 저마다 꼽는 ‘최애 고양이’도 다르다.

‘냥집사’ 박권혜 씨는 올드 듀터러노미와 스킴블샹스를 ‘최애 캐릭터’로 꼽았다. 올드 듀터로노미의 경우 편안함과 조용함 속의 우직한 모습을 ‘호감 포인트’다. 그는 그러면서 “기차 고양이인 스킴블샹스는 노란 털과 줄무늬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베니와 외모가 닮아서 특히 좋아하는 캐릭터”라며 “기차 안에서의 사랑스러운 애교와 분주함으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말했다.

2023년 1월 서울 개막 당시 냥집사 박권혜 씨가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베니패밀리의 주인공 베니의 레드카펫 모습 [클립서비스 제공]

이 작품에 그리자벨라로 출연 중인 ‘세계적인 뮤지컬 디바’ 조아나 암필도 스킴블샹스를 ‘최애’로 꼽았다. 그는 “스킴블샹스의 넘버는 정말 놀랍다”며 “철도 역에 살고있는 이 고양이가 나올 때면 어두운 시간은 지나가고 밝은 이야기만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특히나 좋다”고 말했다.

나응식 수의사는 ‘캣츠’에 출연하는 유일한 샴고양이 카산드라를 ‘최애’로 꼽았다. 나 수의사는 “샴고양이는 동남아 쪽의 왕족이 키우는 고양이로 고귀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당당하게 걷는 걸음걸이나 몸짓을 잘 표현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