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외환시장 변화 예의주시”
조선·해운은 환율 효과 기대, 항공·정유·철강 등 부담 커져
부산 항만에 선적된 수출 컨테이너의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미국발 긴축 공포가 다시 확산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두 달여 만에 1300원을 돌파하는 등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국내 산업계도 긴장 속에 외환시장 변화를 주시하는 모습이다. 환율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외 투자 계획과 실적 목표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3일 재계와 외환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440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올해 초 1200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2월 중순 이후 빠르게 반등하면서 지난 12월 19일 이후 두 달여 만에 다시 1300원대를 내줬다.
이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점도 부담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달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밟는다면 한·미 기준금리는 역대 최대 격차로 벌어지게 된다. 이 경우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채질 할 가능성이 크다.
환율 급등에 따른 업종별 분위기는 엇갈린다. 조선업계와 해운업계는 환율 상승이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선사는 선박 대금을, 해운사는 운임을 각각 달러로 받고 매출은 원화로 환산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매출 증가와 직결된다. 다만 조선업계의 경우 고환율로 인해 원자재 등의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수익성 악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항공업계와 정유업계는 환율 상승이 부담이다. 항공업은 항공기 리스 비용부터 유류비까지 대부분의 금액을 달러로 결제하고 있어 환율 영향에 민감한 대표적인 업종으로 꼽힌다. 대표적으로 대한항공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원씩 오를 때마다 약 350억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환율이 1200원에서 1300원으로 오르면 대한항공은 약 3500억원의 손실을 입게 되는 셈이다.
정유업계도 해외에서 원유를 사올 때 달러로 대금을 지불한다. 통상적으로 자금의 융통을 위해 원유 대금의 지급은 일정 기간 이후에 이뤄지는데, 이 기간 동안 환율이 상승할 경우 곧바로 재무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원재료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다른 업종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철광석 등 원재료를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는 철강업계는 환율 상승에 취약하다. 또한 철강제품 가격 인상 측면에서도 다른 업종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중고가 예상된다.
반면 반도체·자동차 등 수출 기업들의 경우 환율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 상승 등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상당수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환율 상승 효과가 뚜렷하게 나오지 않는 점과 올해 글로벌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점 등은 ‘환율 효과’가 반감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경제보좌관 겸 조사국장은 이달 초 한국은행·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달러화 강세가 한국의 상대적 무역 경쟁력을 높여 수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강달러는 한국의 수출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글로벌 공급망에 있는 한국 기업들은 무역 자금을 대부분 달러화로 조달하므로 자금 조달 비용은 환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달러화가 강해지는 시기는 미국 이외 기업들의 신용 여건이 어려워지는 기간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덧붙였다.
재계 관계자는 “작년 10월처럼 ‘킹달러’(달러화 초강세)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지만 올해 상반기까지는 달러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환율로 인한) 사업계획 변경 가능성은 당장 크지 않지만, 시장 변화 추이를 면밀하게 지켜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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