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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이 된 세입자, 황당 요구 쇄도
역전세난에 입장바뀐 임차-임대인
화장실 수선·소모품비까지 요구
중개사도 실적 위해 조건 강권도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 [연합]

#. 집주인 A씨는 넉 달 만에 찾은 ‘귀한’ 세입자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도배, 장판은 기본에 일부 보수가 필요한 방충망의 전체 교체, 화장실 리모델링 등 세입자가 제시한 전세 계약 조건들이 이어졌다.

A씨는 “이전에는 세입자가 전셋집 조건을 보고 들어가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세입자가 요구하는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구체적”이라며 “전셋값을 많이 낮춰서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4개월 만에 세입자를 어렵게 구해 울며 겨자먹기로 대부분의 조건을 다 들어줬다”고 말했다. A씨는 결국 세입자와의 협상 끝에 요구조건의 80%를 수용하는 선에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중개사들도 실적을 내기 위해 세입자의 요구사항을 집주인에게 강권하는 수준”이라며 “이미 계약서에 세입자의 요구사항을 다 써놓고 해줘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더라”고 토로했다.

전셋값 하락으로 임대차 시장의 갑을 관계가 역전되면서 A씨와 같은 억울함을 가진 집주인이 늘어나는 양상이다. 기존의 세입자를 붙잡기 위해 전세대출 이자를 집주인이 내주는 ‘역월세’가 속출하는가 하면 세입자들이 전세 계약 조건으로 내세운 ‘생활 민원’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경기도의 한 신축 아파트 인근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대표 B씨는 “입주를 앞둔 신축 물량이 워낙 많다보니 세입자가 갑이고 더 힘이 세다”며 “집주인이 융자를 조금 남기겠다고 하면 계약을 안 한다고 하고, 보증보험도 들어달라고 하고 심지어는 반려동물을 키우게 해달라고도 한다”고 전했다.

통상 새 아파트에선 도배, 장판 등 훼손 우려로 집주인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입자와의 계약을 꺼렸지만 달라진 세입자의 위상에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전언이다. B씨는 “새 집이기도 하고 ‘나중에 들어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집주인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입자를 당연히 안 좋아할 수밖에 없다”며 “전셋값이 떨어지기 전까지 반려동물은 아예 금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입자가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그 대신 집주인은 전셋값을 1000만원 올려달라고 하는 식”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신축아파트 입주청소, 소모품 비용 부담을 전세 계약 조건으로 내건 세입자들도 등장하는 등 전세시장 침체 이전과 180도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세입자가 ‘소모품 중 LED 전구 등 반영구적 제품에 하자가 발생할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하자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5만원 이하의 비용을 요하는 소모품 교체나 소규모 수선 의무는 임차인이 부담하고 5만원을 초과하는 비용은 임대인이 부담한다’ 등의 특약을 넣자고 요구해왔다고 하소연하는 집주인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 C씨는 “소모품은 집에 사는 세입자가 사용하면서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일정 금액을 정해놓고 그 기준을 넘는 건 집주인이 부담하라고 하는 건 갑질 중에서도 그런 갑질이 없다”고 말했다.

C씨는 “집주인들은 전셋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세입자를 들여놔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도배, 장판은 기본으로 해준다고 하고, 세입자의 요구사항도 웬만한 건 다 들어주려고 하는 분위기”라며 “전세 보증금은 적은데 ‘화장실 전부 수리해주세요’부터 ‘방문 페인트칠 다시해달라’, ‘싱크대 교체해달라’ 등등 심하게 말하면 리모델링해달라는 수준까지의 요구도 있다”고 했다.

이어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대출을 받아서라도 내줘야 할 판인데 세입자들이 이것저것 수리해달라고 하니 다 들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들어주자니 계약이 안 될 것 같아 애 타는 상황”이라며 “특히나 구축 아파트의 경우 이런 사례들이 많다”고 말했다. 신혜원 기자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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