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전통주 매력, 한국 알아가는 맛…큐레이터는 ‘술 경험’ 안내자죠”
이재민 술담화 전통주큐레이터팀장 인터뷰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평일 오후 3시께, 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오미자술병과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그에게는 술은 업(業)이자 일상이다. 그는 인터뷰 후에도 ‘음주’ 업무가 예정돼 있다고 했다. 사실 그냥은 못 마신다. 향과 맛을 생각하며 먹고 기록하고 때로는 ‘빚은 자’를 만나러 전국을 돌아다닌다. 그러다 발길 그리운 양조장에서 강아지도, 정겨운 풍경도 만난다. 미각을 넘어 경험을 설계하는 ‘술이야기꾼’이라 할 만 하다. 그는 전통주 구독서비스업체 술담화의 이재민(29) 전통주큐레이터팀장이다. 헤럴드경제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술담화 본사에서 ‘그’를 만나 전통주와 술과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이재민 술담화 전통주큐레이터팀장이 자신이 큐레이팅한 전통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민 팀장 제공]

“‘이거 마셔 봐’라는 말로는 부족해요. 술에 얽힌 이야기를 전하고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을 찾도록 안내하는 게 제 역할이죠.” 지난 2년 반 동안 84개가 넘는 전통주를 큐레이팅한 이 팀장은 지역 양조장의 전통주를 발굴하고 일상의 다채로운 술 경험을 안내하는 일을 한다. 한 달에 약 3종류의 술을 이해하고 파고들어 알린 셈이다.

전통주라는 이름만큼 소비자도 원료와 생산지는 낯설진 않을 테다. 신토불이라는 말마따나 ‘한국인의 터’에서 나온 한국의 술이라서다. 학창시절 지리 수업 때 배웠던, 지역 특산물의 이름을 딴 술도 세간에서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맥주와 소주는 마셔봤어도, 전통주의 경우 막상 마시는 법과 궁합이 맞는 음식, 즐기는 때에 대해 낯선 이들도 제법 많을 것이다. 이 팀장에게 전통주를 더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습도에 따라 달라지는 누룩, 술맛 좌우…호남 두껍고 영남 얇아”
술담화가 매달 진행하는 전통주 구독 서비스 ‘담화박스’ 중 지난해 12월 연말을 겨냥해 큐레이팅된 제품들. 생탁주 ‘디오케이 막걸리(오른쪽 두 번째)’, 스파클링 막걸리 ‘얼떨결에 퍼플(왼쪽 두 번째)’, 증류식 소주 ‘여유19(오른쪽에서 두번째)’, 청포도를 이용한 와인 ‘미르아토 청수 스위트’가 포함됐다. [술담화 제공]

-전통주 큐레이터로서 생각하는 전통주의 매력은.

▶술을 통해 그 지역을, 나아가 한국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지역’이다. 주세법상는 전통주는 크게 민속주와 지역 특산주가 해당된다. 민속주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됐거나 식품 명인이 빚은 술이다. 지역특산주는 농업법인이나 농업인이 지역 농산물을 주원료 만든 술이 해당된다. 충북 영동은 포도, 조치원(세종)은 복숭아처럼 지역 특산 과일이 술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또 술을 빚는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술의 주요 재료는 ‘누룩’인데, 누룩은 습도와 일조량에 따라 만드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전라도 쪽은 상대적으로 누룩이 두껍고, 경상도는 피자처럼 넓고 얇다. 습도가 높은데 누룩이 두꺼우면 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누룩으로 만들어지는 술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통주는 그 지역 음식과 맞아…치킨, 탄산 강한 막걸리와 어울려”
술담화의 큐레이터들은 전통주의 특성, 어울리는 안주, 양조장의 스토리가 담긴 카드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안내한다. [술담화 제공]

-전통주가 소비자들에게 지역을 재발견할 기회가 될 거 같다.

▶그렇다. 와인 등 서양 술도 종류가 많지만 2000개가 넘는 전통주의 특징은 우리 식탁과 합을 잘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 해도 집마다 술을 빚어 마시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있었다. ‘홍길동네 집밥’에 어울리는 ‘홍길동네 술’이 있었던 셈이다. 자세히 보면 그 지역의 기후, 토양에서 비롯된 음식과 어울리는 술들이 있다. 우연이 아닐 거라 본다. 그래서 특정 지역의 전통주라면 그곳의 향토 음식과 같이 맛보길 저는 권한다.

이재민 술담화 전통주큐레이터팀장이 외부 강연 도중 술담화 서비스에 대해 소개하면서 웃고 있다. [인사이트플랫폼 제공]

-요즘 트렌드 중 하나가 푸드 페어링이다. 와인·맥주 페어링처럼 전통주 페어링 팁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매운 것엔 달콤한 맛처럼 서로 보완해주는 게 좋다. 매운 걸 먹을 때 높은 증류주를 먹으면 화끈함이 더 강해진다. 치킨의 경우 느끼함을 맥주의 탄산이 씻어주듯 ‘복순도가’, ‘얼떨결에막걸리’ 같은 탄산 막걸리도 잘 어울려 추천한다. 새콤한 음식은 신맛이 입 안을 마비시킬 수가 있어 오히려 새콤한 것으로 맛을 균등하게 잡아주는 것도 좋다.

전통주 페어링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음식을 넘어 지역과 ‘시기’다. 충청도 전통주라면 충청도 향토 음식과 곁들여 먹어보길 권한다. 한국은 서양과 달리 계절을 세밀하게 나눈 24절기가 있다. 절기마다, 혹은 세시풍속에 따라 즐겼던 술이 있다. 세시주·절기주라고 불리는데 봄에는 진달래꽃으로 만든 ‘두견주’, 소나무 새순으로 만둔 ‘송순주’, 복숭아꽃으로 만든 ‘도화주’가 대표적이다. 제철 재료로 만든 전통주를 먹어보는 것도 좋다.

“전통주 양조장 방문해 보길…유럽 와이너리 찾아가는 것처럼”
술담화가 매달 진행하는 전통주 구독 서비스 ‘담화박스’ 중 올해 1월 신년을 겨냥해 큐레이팅된 제품들. 생탁주 ‘탁여현(왼쪽)’과 생약주 ‘한영석 청명주’. [술담화 제공]

-2017년부터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진 후 전통주 시장이 400억원(2017년)에서 2021년 941억원으로 2배 넘게 성장했다. 어떻게 보나.

▶국내 주류 시장 9조원 중 전통주를 1000억원이라고 보면 아직 1% 수준에 불과하다. 작다.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반짝 인기’에 그칠까 우려된다. 만일 유행이라면, 그것이 지나가고 난 뒤 다시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다. ‘이색주류’, ‘핫하다’, ‘유행이다’ 등의 반응에 그치지 않고 전통주의 본질 그대로 문화 속에 잘 자리잡길 바란다.

-전통주와 친숙해지기 위해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그 술의) 양조장을 찾아가 보길 추천한다. 시골 외진 곳에 있는 경우도 많아 가는 길 자체가 힐링인 곳도 있다. 유럽 와이너리를 가 보는 거랑 같다. 저는 학교 다닐 때 지리 과목을 싫어했는데 지금은 전통주를 통해 이런 지역, 이런 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국은 하루 만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녀올 수 있지 않나.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물론 문화를 느끼고 알아가게 되는 좋은 방법 같다.

hop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