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뒤엎은 美, 정치보다 실리(?)
IRA 우회 위해 포드 지분 100%
국내 배터리사 점유율 하락 우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책임자(CEO)가 13일(현지시간) 중국 배터리 업체 CATL과 협력해 미시간 주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미국 포드가 세계 1위 배터리 회사인 중국 CATL과 손잡고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는 것을 두고 정치적 판단보다 실리를 추구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소 2500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낼 수 있는 데다 자국 내 배터리 공급망을 강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어서다.
포드는 13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마셜에 25억 달러(약 3조2000억원)를 투자해 CATL과 배터리 생산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장의 이름은 ‘블루오벌 배터리 파크 미시간’으로 명명했다.
특히 CATL은 공장 지분을 갖지 않고, 배터리 기술 및 노하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공장 운영에 참여한다. 합작공장 건설 시 배터리 회사와 완성차 업체가 절반씩 지분을 나눠 가져온 기존 사례와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목적을 가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고 있는 만큼 이를 우회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공장 건설을 두고 미시간주와 마샬시는 팀을 꾸려 적극적으로 신공장 유치를 도왔다는 후문이다.
이런 배경에는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의 약 37%를 점유하고 있는 최대 배터리 기업인 CATL을 완전히 배제하고 안정적인 배터리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유럽과 아시아 등 전 세계에 13개의 공장을 두고 있지만, 아직 미국엔 단 하나의 공장도 짓지 못하고 있는 CATL의 상황을 고려하면 포드가 이번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CATL은 앞서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여러 차례 시도해 왔지만 IRA가 본격화하며 활로가 막혔다. IRA 규정상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북미에서 제조·조립된 부품이 일정 비율 이상 들어간 배터리를 탑재해야 한다. 또 중국 등 ‘해외 우려기업’이 만든 배터리는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이번 미시간 공장은 CATL이 자본을 투입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IRA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포드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 왔던 SK온의 속내는 복잡하다. 포드가 향후 CATL의 배터리 탑재를 대폭 확대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제너럴모터스(GM)와 미국에만 3개의 합작공장을 짓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스텔란티스와 미국 내 첫 번째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인 삼성SDI도 IRA로 인한 효과가 반감될까 우려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IRA에 조건에 맞춰 현지 투자를 단행하고, 배터리 원소재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CATL의 시장점유율이 나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IRA를 통해 주도권을 반전시키겠다는 전략을 펼쳐왔다.
NCM 배터리와 LFP 배터리. [포드 제공] |
이번 공장이 포드의 미국 내 첫 번째 리튬·인산·철(LFP) 공장이라는 점도 국내 업체의 걱정을 키우는 요인이다. 포드가 SK온과 미국에 짓고 있는 공장에서는 모두 니켈·코발트·망간(NCM)배터리를 생산한다. LFP는 코발트, 니켈과 같은 고가의 금속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NCM 대비 저렴하다. 내구성이 더 좋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주행거리 측면에서는 NCM이 더욱 뛰어나기 때문에 그동안 프리미엄 전기차에는 NCM이 탑재됐다. 하지만 LFP의 기술력이 진화하며 완성차 업체들의 선호도가 LFP로 이동 중이다.
실제 포드는 이번 LFP 채택을 발표하며 “새로운 타입의 배터리 공장은 더 저렴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나며, 이제 보다 더 빨리 충전된다”며 “미국에서 LFP 배터리를 제조하는 것은 더 많은 전기차를 빠르게 보급하고, 배터리 가격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CATL의 미국 진출에 대해 ‘올 것이 왔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는 “중국이 어떤 형태로든 우회해서 미국에 진출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이미 포드, 폭스바겐, 테슬라, 스텔란티스 등 대다수의 완성차 업체들이 LFP 채택 계획을 발표한 만큼, LFP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을 배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배터리를 공급하는 제조사들이 늘어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를 쇼핑하는 상황이 열렸고, 이는 국내 배터리사의 점유율 하락 가능성을 의미한다”며 “포드와 합작공장을 세우고 있는 SK온뿐만 아니라 국내 배터리사 모두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jiy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