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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상장 타이밍과 기업가치

지난해는 힘든 한 해였다. 미국, 영국 등 주요국이 엔데믹을 선언하며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희망으로 시작했지만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고, 미국발 고금리 기조까지 겹치며 한국 경제는 지난해 4분기 0.4% 역성장했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를 넘어섰다. 이 기조는 올해 상반기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실물경제 악화는 자본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금융감독원의 ‘2022년 기업의 직접금융 조달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이 주식으로 조달한 금융 금액은 전년에 비해 24.6% 감소했다. 기업공개는 4.5% 늘었지만 공모금액은 8.1%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상장을 연기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컬리, 케이뱅크, 골프존카운티 등이 그랬다.

그러나 이 기업들의 상장 연기를 보는 시각은 냉랭하다. 주어진 선택지 중 하나인 연기 혹은 철회를 결정했건만 “실패했다”고 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시장을 혁신해온 성과는 오간 데 없고 패인을 지적하는 기사가 이어진다. 기업가치 고평가, 자금 부족, 투자자 회수 요구 등 부정적 전망이 쏟아진다.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적의 상장(IPO) 타이밍은 시장, 기업, 투자자의 감정 상태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가치 하락은 상장 추진 기업뿐 아니라 상장 기업도 마찬가지다.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부분 회사는 2022년 2분기를 시작하기 전 받은 회사가치가 있다면 무조건 30~80% 내려갔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며 “컬리의 상장 연기를 왜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지난해에만 삼성전자, 메타, 넷플리스의 주가는 각각 34%, 65%, 70% 폭락했다.

둘째, 지난해 이후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IT 성장주는 10년 새 최악이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도 “상장해 퍼블릭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의성 판단이 더 중요하다”면서 “이번 결정은 시장과 기업의 상황이 동시에 고려된 합리적 의사결정, 성장 모멘텀, 재무적 상황이 충분히 고려됐다고 이해한다”며 김 대표 글에 동의했다. NH투자증권은 컬리의 상장주관사다. 상장을 누구보다 바랐을 것이다. 기업 자금 상황이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 시장보다 높았을 터다. 그럼에도 이렇게 판단했다는 것은 타이밍이 최악이었다는 뜻이다.

셋째, 기업의 시장가치와는 별도로 펀더멘털은 그대로다. 상장을 연기했다고 성장을 멈춘 것은 아니다. 기업은 상장하기 위해 자본시장을 활용한다. 기업이 상장시장에 등장했다는 것은 수많은 난관 속에서 버티고 성장해온 성과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상장 여부가 기업의 성패를 판단하는 절대 기준은 아니다. 자금이 충분하거나 돈을 버는 회사는 그 가치를 지금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시장이 충분히 인정해주는 최적의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시장에도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다. 결국 때를 알고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상장하는 일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기업의 상장 연기 결정은 투자자와 회사 모두에 기회비용을 줄이는 현명한 의사결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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