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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주희의 현장에서] 사라진 노동자, 사라진 산재

그동안 물류센터를 공개하지 않던 쿠팡이 최근 최초로 대구 풀필먼트센터(FC)의 빗장을 열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물류센터이자 인공지능(AI) 자동화기술을 집약해 놓은 곳인 만큼 볼거리는 화려했다.

실제로 2일 찾은 대구FC에서는 여러 자동화 로봇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쿠팡은 새롭게 도입한 자동화 기술을 두고 ‘작업자와 협동하는 로봇’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100% 자동화’라는 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작업자와 로봇이 공존하는 환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로 읽혔다.

하지만 무인 지게차 로봇을 살펴보고 나서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 많은 지게차 운전사는 어디로 갔을까?’

통상 물류센터에는 60~70명의 지게차 운전사가 고용된다. 반면 쿠팡 대구FC에서는 고용된 지게차 운전사가 거의 없다.

물론 반길 만한 사실도 있다. 산업재해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 지게차 작업장은 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으로 꼽힌다. 고용노동부가 2021년까지 5년간 제조업 산업재해승인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게차는 사고를 일으킨 기인물 중 1위로 꼽혔다. 5년간 사망자 수는 77명, 부상자는 1954명에 이른다.

쿠팡 대구FC에서는 무인지게차들이 다니는 곳은 펜스로 사람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사람이 무인지게차 가까이에만 다가가도 로봇은 멈춘다.

지게차로 인한 산재는 0건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쿠팡은 자동화기술 관리자 채용 등 대구FC를 건립하면서 2500여명(간접고용 1만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대구에 3200억원이나 투자해 물류센터를 새로 지은 만큼 없던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어 냈다는 설명이다. 뜯어보면 지게차 운전사 대신 지게차 로봇을 관리하는 기술자가 고용됐을 것이다.

그동안 물류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꼽혀왔다. 과로사라는 꼬리표도 달고 다녔다. 하루가 멀다고 노동자의 피해가 끊이지 않는 산업에서 산재가 사라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고 노동자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쿠팡만의 문제는 아니다. 산업 곳곳에서 디지털전환과 자동화가 화두가 아닌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물류산업에서 화물차 운전자도 필요 없어질지 모른다. 자율주행 지게차에 이은 자율주행 화물차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어서다. 미국에서는 벌써 한 차례의 홍역이 있었다. 지난해 미국 상원이 화물차의 자율주행 촉진법을 제정하려 했지만 화물연합회 반대로 무산된 게 대표적이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챗GPT’가 장안의 화제다. 대화형 인공지능이 이제는 대학 과제, 글쓰기까지 척척 해낸다고 했다.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를 대거 빼앗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다.

기계가 인력을 대체하는 것과 돕는 것은 한 끗 차이다. 디지털전환으로 소프트랜딩이 없다면 AI가 가져온 고용충격을 감내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자동화는 노동집약적 산업부터 침투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물류산업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디지털·자동화 전환에 급급할 때 정부와 산업 관계자들은 자동화로의 소프트랜딩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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