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중 하루’ 꼴로 글로벌 광폭 행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바라카 원전 3호기 가동식에서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부총리 겸 대통령실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며 밝게 웃고 있다. [연합] |
지난달 초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회장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대한상공회의소 유튜브 캡처] |
[헤럴드경제=김지헌·김민지 기자]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듭시다. 제가 그 앞에 서겠습니다.”(2022년 10월 27일 이재용 회장 취임 사내 메시지)
오는 3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취임 100일을 맞는다. 이 회장은 지난 100일간 글로벌 광폭 행보를 선보이며 ‘JY표’ 해외 현장경영에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약 ‘닷새 중 하루’는 해외에서 경영현장을 점검하고 글로벌 경영인들과 만나 전략 사업을 논의했다.
이와 함께 수평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조직문화를 새롭게 변모시키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삼성 안팎에서 나온다. 다만 취임 100일 시점에 삼성전자는 ‘반도체 쇼크’(4분기 영업익 97% 급감) 등의 실적 대위기에 빠졌다. 적자 경고를 딛고 수익성을 회복하는 것과 함께 다음달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가 부양 등 이 회장이 올해 극복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이재용 회장의 취임 후 행보는 ‘해외 현장 경영’으로 귀결된다. 100일 중 총 20여일을 해외 출장에서 보냈을 정도로 글로벌 현장을 챙기는 데 힘썼다. 12월부터 2주 간격으로 중동, 동남아, 유럽 등을 누비며 쉴 틈 없는 행보를 보였다.
이 회장이 취임 후 첫 해외 출장지로 정한 건 아랍에미리트공화국(UAE)다. 지난해 12월 6일(현지 시간) UAE 아부다비 알 다프라에 위치한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건설 현장을 방문해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지난해 12월 6일(현지시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이 참여하는 UAE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 건설 현장을 방문한 모습. [삼성전자 제공] |
출장에서 돌아온 후 바로 2주 뒤에는 베트남 하노이를 찾아 ‘베트남 삼성 R&D센터’ 준공식에 참여했다. 삼성의 첫 해외 R&D센터이자, 글로벌 기업이 베트남에 세운 최초의 대규모 종합 연구소다. 이 회장은 하노이 인근 삼성 생산 공장에 들러 사업 현황을 점검하고, 베트남 일정이 끝난 뒤에는 싱가포르 및 말레이시아를 찾아 동남아 주요 거점 등을 둘러봤다. 약 9일 간의 일정으로, 지금까지 이 회장이 다녀온 최장기 출장이다.
신년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UAE 경제사절단에 동행한데 이어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가했다. 이 회장은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글로벌 리더들을 만나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평소 친분이 있던 인텔, 퀄컴 CEO 등과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드러내며 투자 유치에 일조했다는 평가다.
국내에서도 이재용 회장은 글로벌 리더들과 꾸준히 만나면서 유의미한 경영 성과들을 쌓았다. 지난해 11월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회동해 네옴시티 사업 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서울 44배 면적의 스마트시티를 건설하는 네옴시티 사업은 총 5000억 달러, 한화 약 670조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12월에는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올리버 집세 BMW CEO와 만나 전기차 분야 협업을 강화하며 배터리가 미래 성장 동력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23일 베트남 하노이시에 위치한 베트남 삼성 R&D센터 준공식에 참석한 이재용(왼쪽에서 넷째) 회장의 모습.[삼성전자 제공] |
이 회장이 취임 전부터 보여온 소탈하고 수평적인 모습이 회장 취임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근 이 회장은 격식없는 모습으로 가는 현장마다 ‘친근한 회장님’을 자처하며 상생과 소통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지난 1일에는 대전에서 삼성화재 직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고충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삼성전자는 ‘OO 님’, 영어이름, 이니셜 등으로 수평 호칭의 범위를 경영진과 임원에도 확대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임직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호칭을 내부에 공지할 수도 있다. 경영진이 참석하는 타운홀 미팅이나 간담회, 임원회의 등 공식 행사에서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 구축에 힘 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회장 취임 후 본격적인 경영을 시작한 만큼 창업·선대회장들과 구별되는 JY만의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삼성전자가 대외적인 경제 복합 위기 속에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4분기 한국은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 등 3고(高) 파고로 어려움을 겪은 끝에 성장률이 2년 반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당초 예상치를 밑돌아 1%대 성장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 역시 거시 경제 악화와 맞물려 올해 역성장 전망이 제기된다. 지난해 연간 기준 매출 300조원의 고지를 밟았지만, 이 수치가 다시 후퇴할 수 있단 진단이다. 삼성의 ‘실적 효자’ 역할을 해온 반도체 사업이 올해 적자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투자업계에선 당장 삼성 반도체 부문이 올해 1분기 2조원대 적자 구간에 들어갈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가전 시장 수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올해는 이건희 선대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발표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의 반열에 삼성을 올린 선대회장의 유산을 이어가면서도 대위기를 극복하고 반등 기회를 제시하는 ‘JY’만의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이 회장도 지난해 10월 27일 회장 취임 사내 메시지를 통해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듭시다. 제가 그 앞에 서겠습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 취임 후 삼성이 어떻게 경영상 위기를 극복하고 초격차 성장 동력을 구축하는지 올해가 본격적인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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