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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비동의 강간죄 논란, 침묵하는 거대 야당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아직 당 차원에서 논의된 것은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측에 ‘비동의 강간죄(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이어 ‘민주당에서는 비동의 강간죄를 중요한 현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해하면 되나’라고 물었고, 정책위 관계자는 “다른 현안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라며 말을 아꼈다.

기자가 민주당의 입장을 물은 이유는 최근 여성가족부의 입장 번복으로 ‘비동의 강간죄’가 논란이 됐고,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지낸 권성동 의원이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만큼 제1 야당의 입장을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대 대선 후보 당시 ‘비동의 강간죄’에 대해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는 먼저 서로의 입장과 논리를 확인하고 공론장에서 토론을 이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비동의 강간죄’는 UN에서도 대한민국에 도입을 권고했던 사안이다. 지난 2021년 제47차 UN 인권이사회가 채택한 보고서는 피해자가 강간의 과정에 있어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였거나, ‘저항이 현저히 곤란할 정도’였던 경우에만 처벌하는 대한민국 형법을 개정하라 권고했다.

보고서는 “강간은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성적 행위”라며 “동의는 주변 상황의 맥락을 고려하여 판단했을 때 개인이 자유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대한민국 현행법은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가 성립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비동의 강간죄는 국회에서 6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비동의 강간죄 관련 입법 논의가 첫 발을 뗀 것은 2018년 9월이다.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당시 미투 운동 열풍이 법안 발의의 동력이 됐지만 실질적인 법안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총 10건 발의됐지만 나 의원의 개정안과 같은 길을 걸었다. 21대 국회 들어서는 백혜련 민주당 의원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각각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특히 백 의원의 개정안에는 박홍근 현 민주당 원내대표와 친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의원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국회 과반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은 아직 공식적으로 비동의 강간죄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20대 대선을 거치면서 미투 운동 열풍은 잠잠해지고 ‘젠더 갈라치기’ 흐름이 강화됐다. 여야의 대립 구도가 이어지는 정국에서 민주당은 견고한 지지층을 확보했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외연 확장이 필요하다. ‘비동의 강간죄’에 대한 젊은 남성층의 반감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전날 이 대표도 참석했던 ‘민주당의 길’ 첫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온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의 김봉신 부대표는 “민주당 지지율이 30% 초반에 굳어졌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부정 평가가 50% 이상인 상황에서 제1야당 지지도가 더 오르지 않는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정의하는 ‘현안’이란 사회적 합의가 시급한 논란보다는 당장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만한 사안에 가까워 보인다.

nic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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