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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윤석태 CF감독 별세
고향의 맛 다시다…"그래, 이 맛이야"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따봉" 등 다수의 광고 만든 산증인
윤석태 감독.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그래, 이맛이야",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따봉!", "제비 몰러 나간다".

카피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1980∼1990년대 TV 광고를 수백 편 만든 '한국 CF의 신화', '광고계의 산증인' 윤석태(尹錫泰) CF 감독(전 세종문화 대표)이 18일 오후 7시35분께 서울 자택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9일 전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중앙대) 서양화과를 졸업했고, 1962년부터 기업의 디자인 현상 공모에 응모해 담배 '신탄진' 디자인을 만들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남산 중앙정보부에 연행된 적도 있다.

1969년 광고 회사인 만보사에 도안과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으로 입사했다가 1970년 한국코카콜라 CF를 맡아서 '오직 그것뿐 산뜻한 그 맛'이라는 카피로 알려진 코카콜라 해변 광고로 데뷔했다. 요즘엔 일반화된 소비자 증언 광고도 고인이 1976년 킨 사이다 광고에서 처음 시도했다.

만보사가 합동통신 광고기획실이 되고, 다시 오리콤으로 변신하는 동안 줄곧 현장을 지켰지만, 1977년 부국장 승진 소식을 듣고 "현장에서 뛸 수 없게 된다"며 승진을 거부했고, 이듬해 오리콤을 퇴사했다.

1979년 프러덕션 '세종문화'를 차려 2000년 7월 한국투자신탁의 '소나기편' 광고를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CF 663편을 제작했다. 2007년 GS칼텍스의 '착한 기름 이야기'로 복귀한 적도 있다. 2000∼2010년 경주대 방송언론광고학부 석좌교수로 강단에 섰다.

시청자에게 친숙한 광고는 대부분 세종문화 시절에 탄생했다.

배우 김혜자씨와 15년 동안 제일제당 '고향의 맛 다시다' 광고를 매년 4편 이상 찍었다. 다시다 맛은 몰라도 "그래, 이맛이야"라는 카피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고인과 함께 작업했던 이강우 전 세종문화 전무는 "'그래, 이맛이야'는 미리 준비한 카피가 아니고 촬영 현장에서 배우가 맛보는 걸 보고 착안한 것이었다"고 기억했다.

오렌지주스 따봉의 "따봉!", 솔표 우황청심원의 "제비 몰러 나간다", 경동보일러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 배우 한석규가 스님과 함께 담양 대나무숲을 걸어가며 읊조린 SK텔레콤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등이 모두 유행어가 됐다.

이 밖에도 오리온 초코파이 '정(情)' 시리즈, "댕∼!" 소리와 함께 종이 흔들리는 종근당 CF, "럼, 캡틴 큐!"라는 말과 함께 외눈 선장의 안대가 떨어지는 광고가 고인의 손에서 탄생했다. 고양이, 황소, 닭, 개 등 동물을 출연시킨 CF를 여러 편 찍었다.

고인은 인간의 감성과 한국인의 정을 화면에 따뜻하게 담아내는 데 탁월했다.

1986년 한일합섬의 팔도잔디 운동장 광고부터 오리온 초코파이 '정' 시리즈, 경동보일러 '효(孝)' 시리즈가 그랬다.

고인은 자신을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연출자"라고 규정했다. OBS '김혜자의 희망을 찾아서'에 출연했을 때 "크리에이터는 아이디어가 전제인데, 새로운 아이디어는 신이 아닌 이상 만들 수 없다"며 "나는 이미 우리 생활 주변에 있는 걸 이것저것 엮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인 만큼 '연출'이라는 말이 훨씬 어울리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1987년 한국CF제작사협회(KCU)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았고, 1988년 국내 최초로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에 출품했다. 대한민국 광고대상의 '대상'만 6번 받았고, 1999년 대상과 금상을 한꺼번에 받게 되자 "쑥스럽다"며 시상식을 앞두고 지방에 내려간 적도 있다.

2006년 경주대에 광고영상박물관을 세웠지만 2010년 문을 닫았다. OBS '김혜자의 희망을 찾아서'에 출연했을 때 김혜자 씨가 "광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광고는 만드는 사람의 의도를 보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큰 목표"라며 "예술인 것 같지만 예술이 아니고, 예술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예술인 게 광고"라고 말했다.

고인은 광고계 후배들에게 '불독'이나 '욕쟁이 감독'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길러낸 CF 감독만 강창배·김종원·김한수·임인규·조풍연 등 30여 명에 이른다.

이강우 전 전무는 "자기 확신에 차 있었고, 주장이 강한 분이셨다"며 "광고를 아름답게 꾸미기보다는 일반 소비자가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는데 능하셨다"고 회고했다.

'윤석태 TV-CF 작품집 Q-30'(2001), '텔레비전 광고 제작'(2012, 정상수와 공저), '한국의 광고산업과 광고제도'(2020, 김봉철 등과 공저), '영상광고 감독 윤석태의 Q 뮤지엄 : 보고 느끼고 행하는 이야기'(2021), '음메에 메에 : 논픽션 영화제작 시나리오'(2021) 등 저서를 남겼다.

유족은 부인 전치희 씨와 사이에 1남1녀(윤지영, 윤여준)와 사위 서상교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3호실(19일 낮 12시30분부터 조문 가능), 발인 21일 오전 8시40분, 장지 용인천주교묘원. ☎ 02-2258-5977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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