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짓누르던 환율·원자재 부담 누그러져
SK·롯데 등 자산매각·사업재정비 속도
서울의 기업 사무실 밀집지역의 모습. [헤럴드DB] |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글로벌 경기침체와 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업을 짓눌러왔던 ‘3고’(고금리·고환율·고물가) 중 환율이 최근 뚜렷한 안정세를 보이면서 경제계 안팎에서 숨통이 트이는 분위기다. 환율 리스크가 둔화함에 따라 국내 경영진들도 그동안 미뤄왔던 투자 집행과 사업 재정비 등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재계와 외환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440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올해 1월 들어 1230원대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12월 수입물가지수도 전월 대비 6.2% 급락하면서 8년여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국내 기업들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호재일 수 있다. 하지만 작년처럼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경우에는 이 같은 효과가 대부분 반감된다. 여기에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상당수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환율 상승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해 보고서를 보면 원자재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각각 10% 상승할 경우 국내 수입은 3.6% 증가한 반면 수출은 0.03% 늘어나는 데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자재는 대부분 달러로 결제된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기업들의 수입비용이 덩달아 높아지고 원가부담이 한층 상승한다.
환율과 원자재 가격 안정과 관련 경제계에서도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금년 한국의 경제전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환율 등 가격조건 변화에 따른 대외경제지표의 반등 여부”라면서 “현재의 경제 흐름으로 볼 때 높은 변동성 위험은 존재하지만 원화 강세 전망이 장기적으로 조금 더 우세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CES2023 현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자재 상황은 대체적으로 안정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이렇게만 가주면 비즈니스도 좋아질 것 같다”면서 “경제위기와 관해 예전부터 많은 시나리오들을 가지고 있어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체질화됐다고 볼 수 있는데 본질에 다시 충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기업들의 위기 대응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6일 롯데케미칼은 파키스탄 자회사인 롯데케미칼파키스탄(이하 LCPL)의 경영권을 위해 파키스탄 화학회사 현지 에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거래 가격은 1923억원 수준이다.
LCPL은 롯데케미칼이 지난 2009년 네덜란드 페인트업체로부터 147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14여년 만에 인수가격의 13배로 재매각하게 된 것으로, 매각 자금은 친환경 등 신사업 분야 투자와 내달로 예정된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대금(2조7000억원) 납부 등에 활용될 전망이다.
SK그룹도 ‘해외 투자 전진기지’로 설립한 SK동남아투자법인의 보유 자산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빈그룹(6.1%)과 마산그룹(9.5%)을 비롯해 베트남 1위 약국 체인 파마시티(14.5%), 식음료업체 크라운엑스(4.9%)등의 지분이 꼽힌다. 이번 자산 매각을 통해 통해 많게는 수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어 아직 낙관할 단계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 집행으로 인해 현금 부족 우려가 큰 상황”이라면서 “하반기부터 글로벌 수요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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