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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둑 패러다임 뒤엎은 'AI', 치팅 못막으면 바둑의 종언 고할 수도
지난 달 춘란배 결승오른 中 리쉬안하오에
中 양딩신 9단 '속임수 의혹'제기했다 중징계
국내는 물론 중국도 치팅사례 적지 않다는 우려
몸수색 외에 지연중계·전파차단 등 대비책 절실
2016년 열렸던 이세돌 9단(오른쪽)과 알파고의 대국모습./한국기원 제공

[헤럴드경제=김성진 기자] 바둑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은 AI(인공지능). 그러나 AI를 이용한 치팅(속임수)을 막지 못한다면 바둑은 공멸할 수도 있다. 심각한 위기다.

인간계 바둑 최강자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가 2016년 세기의 대결을 펼친 지 7년째에 접어들었다.

대국 전만해도 'AI가 체스는 몰라도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고, 이세돌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결론은 알파고의 승리였다. 이세돌이 막다른 골목에서 찾아낸 귀수(鬼手)로 한판을 따낸 것이 기적이었을 정도다.

이후 세계 바둑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착점이 대국 전체로 보면 절호의 착점이라는 것이 AI바둑을 연구하면서 나타났고, 프로기사들은 모두 AI 연구에 매진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문에 초반 50수 정도까지는 강자와 약자간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포석의 평준화가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황혼기'라는 20대 후반에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며 춘란배 결승까지 오른 리쉬안하오 9단./한국기원 제공
리쉬안하오의 치팅 의혹을 제기했다 6개월 중징계를 당한 양딩신 9단./한국기원 제공

그러나 간간히 들려오던 '치팅'사례가 바둑계를 뒤숭숭하게 하던 지난해 12월 세계대회인 춘란배 도중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중국 최강자 중 한명인 양딩신 9단이 중국바둑기사들이 속한 SNS에 갑조리그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동료인 리쉬안하오 9단의 치팅 의혹을 제기하며 '모든 전자기기의 통제가 이뤄진 밀실에서 20번기 대국을 두자. 내가 지면 바둑계를 떠나겠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리쉬안하오가 치팅을 했다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셈이다. 이 발언에 커제, 천야오예 등 중국의 다른 선수들이 지지의 뜻을 밝히며 일파만파로 사태가 확산됐다.

중국랭킹 20위권이었던 리쉬안하오는 20대 후반에 접어든 지난해 자국 대회 2승을 거두고, 춘란배에서 양딩신 9단과 명실상부한 세계최강 신진서 9단을 연파하며 결승에 오른 것이다. 이길 수도 있다. 그러나 양딩신과 신진서 모두 이렇다 할 실수가 없었음에도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할 정도로 끌려간 끝에 완패했다는 사실에 바둑계는 놀랐다. 리쉬안하오가 그 정도의 강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중국 바둑계만 뒤흔든 뉴스가 아니다. 사실여부에 따라 바둑이라는 분야는 종언을 고할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이다.

현재 AI의 기력은 세계최강이라는 신진서 9단조차 2점을 접어야할 정도라는 수준이다. 일정 실력의 프로기사가 어떤 전자기기와 외부의 도움(외부의 조력자가 중계를 보면서 AI로 놓아보며 다음 착수를 알려주는 방식이 가능하다면)을 받아 대국을 할 경우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기원과 중국위기협회 모두 세계대회를 치를 때 철저한 몸 수색을 하고 있으며 감독관을 상호 파견해 대국상황을 지켜보며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양딩신의 발언 이후 중국위기협회는 사전 몸수색이나 대국과정에서 어떠한 의혹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리쉬안하오가 대표팀은 물론 소속팀에서도 공동연구나 연습대국을 하지않고 혼자 AI로만 연구한다는 것도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물론 이런 리쉬안하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바둑팬들은 화장실에 다녀올 때 숨겨놓은 통신기기를 통해 전달받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추측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꾸준히 AI의 수를 둘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신체 어느 부위에 수신기를 감춘 뒤 대국중계를 보는 외부 조력자가 착수할 곳을 수시로 알려 주는 방식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조금 더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현재 어떤 의심이 가는 기기나 상황이 적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단은 금물이다. 그러나 향후에도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대국이 계속되고, AI 치팅 가능성이 남아있다면 어떻게든 그 여지를 제거해야하는 것이 바둑계의 공통과제일 것이다.

대국을 방해할 수는 있지만 감독관이 미심쩍은 상황에서 수시로 전자기기 탐지를 할 수 있게 하거나, 대국을 밀폐된 공간에서 실시하며 전파간섭기, 혹은 전파차단기를 가동해 외부와의 송수신을 막는 방법도 있다. 여러 명이 대국을 한다면 화장실을 지정한 뒤 두번 이상 갈 경우 지정 화장실을 변경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지연중계도 거론되고 있다. 생방송으로 대국을 중계할 경우 '송수신 방법만 있다면' 조력을 받아 착수할 수 있기 때문에 30분 이상 지연 중계를 해서 조력효과를 반감시키자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마인드스포츠 중 가장 먼저 컴퓨터와 인간의 대국을 시도했던 체스도 AI치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내 바둑과 장기에서도 온라인 대국에서 AI를 사용했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고, 아마추어의 대국에서는 이미 흔한 일이라는 것이 바둑애호가들의 하소연이다.

AI의 등장이 기존의 바둑을 위협할 지언정 '공적'이 될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수백년간 인간이 상상하지 못했던 수들의 존재를 알려준 신선한 자극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AI를 바둑공부의 파트너가 아닌 '승리를 위한 꼼수'로 활용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2023년 바둑은 알파고의 등장보다 더욱 놀라운 'AI쇼크'에 빠질지 모른다.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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