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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귤과 치아

겨울철 우리가 즐겨 먹는 대표적인 과일 귤. 추운 겨울을 보내는 재미라고 할 수 있지만, 귤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피부색이 노래지기도 한다.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라는 황(黃)색소가 있어서 많이 먹으면 체내에 색소가 침착돼 손, 발, 손톱 심지어 얼굴이 노랗게 변하기 때문이다. 이를 의학용어로 ‘카로틴혈증(carotenemia)’이라고 한다. 귤, 호박, 당근 등이 카로틴혈증을 일으키는 대표적 식품이다.

귤을 보면서 수년 전 진료했던 환자가 기억난다. 환자는 몇 년 동안 겨울만 되면 노란 얼굴로 진료실을 찾았다. 눈의 흰자위까지 노랗게 변하지는 않아 황달은 아니었으나, 혹시나 해서 내과 진료까지 받았다는 환자였다. 얼굴이 노랗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겨울이면 귤을 하루 수십 개씩 먹는다고 했다. 이렇게 다량의 귤을 먹으면 구강 건강에 문제가 발생한다. 과일은 대체로 산도가 높아서 치아 표면의 가장 겉껍질이라고 할 수 있는 법랑질(enamel)이나 그 바로 아래쪽의 상아질(dentin)을 손상시킬 수 있다. 칫솔질을 적절히 하지 않으면 당분과 치아 사이에 낀 섬유질이 충치를 유발하기도 한다.

환자 역시 치아 마모가 심했고, 충치로 상실된 치아도 많았다. 이 환자도 칫솔질을 열심히 했지만, 오히려 잇몸 경계부의 치아 표면이 닳는 치경부 마모가 악화됐다. 환자는 마모된 치아로 인해 장기간 치과 치료를 받았다. 치경부 마모 부위에는 복합 레진 치료, 광범위한 치아 마모 부위에는 치과 보철 치료를 다수 시행했다. 임플란트 시술도 했다. 이 환자는 치주 치료를 동반한 적절한 칫솔질 교육과 식습관 조절을 통해 구강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습관을 쉽게 바꾸기는 어려웠나보다. 겨울철 정기 방문 때마다 다시 노란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하던 환자의 모습이 요즘 떠오른다.

귤은 비타민 C 함유량이 높고 여러 영양소가 들어있다. 그러나 열량이 한 개에 약 40㎉에 달해 7~8개 이상 섭취하면 밥 한 공기 열량과 같을 정도다. 중간 크기의 귤을 하루 2~3개 섭취하면 충분하다. 귤은 산도가 높아 섭취 후 칫솔질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음식 섭취 후 3분 이내 칫솔질을 권하는데 산도가 높은 과일, 음식, 음료를 섭취했을 때 바로 칫솔질을 하면 치아 표면에 광범위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물로 입안을 충분히 헹군 후 30분 뒤에 칫솔질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치실이나 치간 칫솔을 이용해서 치아 사이사이의 과일 찌꺼기를 잘 제거하는 것도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된다.

치아의 법랑질이 마모되거나 상실된 사람의 경우 귤 등 과일을 먹을 때 시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상아질은 법랑질보다 부식이나 마모의 위험이 더 클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가 많이 시린 경우에는 산도 높은 과일을 먹기 전에 칫솔질을 하면 치약 성분이 법랑질이나 상아질을 보호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루 2~3개 정도 적당량을 섭취하고, 먹은 후에는 물로 충분히 헹군 후 30분 뒤 칫솔질을 잊지 않는다면 비타민 C 함유량이 많은 귤이 겨울철 건강관리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귤을 먹다가 이가 시리면 잊지 말고 꼭 치과를 방문하는 것을 권한다.

감세훈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치과 교수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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