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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 내 사이버폭력에…‘사설 포렌식’ 찾는 피해자들
괴로워서·무서워서 삭제…증거 없는 사이버 폭력
사설 포렌식 비용은 최소 수십만원
텔레그램 등 해외 SNS는 포렌식 ‘불가능’
대화 내용 편집하고 “내가 피해자” 주장도
[123RF]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최근 사이버 학교 폭력이 급증하면서 증거 수집을 위해 ‘사설 디지털 포렌식’ 업체를 찾는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이버 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당시의 괴로움이나 두려움으로 스마트폰에서 단체 SNS 채팅방을 나가거나, 스스로 캡처 사진 등을 삭제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복구하려는 것이다.

보기 괴로워 삭제…‘증거’ 없는 사이버 폭력

19일 헤럴드경제가 만난 민간 디지털 포렌식(데이터 수집·복구·분석) 업체 관계자들은 최근 사이버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의뢰가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성호 포렌식탐정 대표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할 때는 오히려 학생들 간 교류가 없어서 그런지 의뢰가 잘 없다가, 올해 들어서 늘어나고 있다”며 “작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학교폭력 건으로 들어온 의뢰만 100건”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A포렌식 업체 관계자도 “직접 증거뿐 아니라 정황 증거를 확보하려는 피해자들까지 포함해 한 해에 수십 건씩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민간 포렌식 업체를 찾는 피해자 대다수는 ‘스스로’ 증거를 삭제한 경우다. 피해 당시의 괴로움이나 두려움 때문에 단체 채팅방을 나가거나 캡처 사진 등을 삭제하는 것이다. A업체 관계자는 “피해자가 상담해오는 내용을 들어보면 대화 내용을 보기가 힘들어서, 가족에게 숨기고 싶어서 증거를 지웠다고 한다”고 전했다.

데이터 복구 비용은 최소 수십만원선이다. 휴대폰 사진이나 문자 메시지, 통화 기록은 통상 20만원부터 시작한다. 복구 항목에 따른 작업비를 선불로 받은 뒤, 이후에 복구비나 성공 보수비를 따로 받는 업체도 있다.

‘포렌식 사각지대’ 탈퇴 계정·해외 SNS 악용도

다만 민간 포렌식 업체를 거쳐도 실제 증거확보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메신저 계정 자체를 탈퇴했거나, 텔레그램처럼 해외에 서버를 둔 SNS라면 데이터 복구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노윤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사월)는 “이런 케이스들 전원이 데이터 복구에 실패했다”며 “이런 점을 악용해 해외 메신저에서만 괴롭힘을 저지르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등, 사이버폭력 유형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노 변호사가 상담했던 고등학교 1학년 B군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B군은 동급생들로부터 단체 채팅방 내 ‘사이버 불링(온라인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했으나, 신고 시점에 B군은 이미 메신저 계정을 탈퇴한 뒤였다.

가해자로 지목된 측에서 대신 제출한 대화 내역은 B군이 주장한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상대측의 대화 내역 대다수가 삭제돼, B군이 이유없이 혼자 화를 내고 욕설을 하는 듯한 내용만이 남은 것이다. 상대측에선 ‘B군이 가해자’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고, 결국 B군은 피해 소명에 실패했다.

물리적 증거가 없다면 주변인 진술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다. 구민혜 변호사(법률사무소 비상)는 “학교 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면 평소에 괴롭힘이 있었다는 등의 정황을 제출할 수 있지만, 피해 학생이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면 사실상 어렵다”며 “가해자 그룹에 있던 한 명이 ‘양심고백’으로 스스로 털어놨던 극적인 사례가 단 한 번 있었다”고 했다.

한편, 올해 9월 학교폭력 예방 전문기관 푸른나무재단이 청소년 60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선 ‘사이버폭력을 당해봤다’는 응답비중이 31.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과거 학교폭력의 전형적 유형이었던 언어폭력(19.2%)이나 따돌림(11.9%) 등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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