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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훈의 현장에서] 신뢰보다 실리 택한 베어링PEA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어링PEA의 PI첨단소재 인수 포기 사태가 투자은행(IB)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시중금리 상승과 경기침체로 안 그래도 인수·합병(M&A)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인수 철회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폴리이미드(PI)필름시장 1위 기업 PI첨단소재의 매각작업이 거래 종결일 3주를 남겨두고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난 8일 베어링PEA가 PI첨단소재의 최대주주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에 계약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통보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매각 측은 지난 6월 베어링PEA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고 PI첨단소재 지분 54%를 1조2750억원에 매입한다는 내용의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애초 양측은 지난 9월 말 거래를 종결할 예정이었으나 마무리 시기 또한 12월 말로 미뤄졌다.

베어링PEA의 계약 해지 통보 이유는 계약조건 미비지만 배경에는 인수 발표 이후 PI첨단소재의 주가급락 여파가 컸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SPA 체결 당시 책정된 PI첨단소재 주당 가격은 8만원 선이었다. 하지만 지난 12일 기준 유가증권시장에서 PI첨단소재 종가는 3만원이다. 시가총액도 1조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베어링PEA의 지불 가격을 크게 하회했다. 인수 강행 시 대규모 평가손실을 인식하게 되는 만큼 베어링PEA로서는 거래를 완주하지 않는 게 남는 장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상 국면에서 수천억원대의 인수금융 조달 역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높은 금리에도 PI첨단소재 인수를 위해 긴밀히 협력했던 금융사들마저 사전에 계약 해지 통보와 관련된 언질을 받지 못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베어링PEA와 글랜우드PE는 과거 한라시멘트 인수를 함께하며 신뢰를 쌓은 바 있다.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당시에도 베어링PEA와의 협력 경험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글랜우드PE로서는 신뢰마저 저버리면서 결국 실리를 택한 것에 대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베어링PEA로서는 향후 국내 시장에서 신규 투자에 나서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인수를 포기한 것은 단순히 신뢰만 갖고선 위험 부담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고금리에 경기침체까지 더해지면서 그만큼 한국 자본시장의 밸류에이션 자체가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편 이번 사태로 글랜우드PE가 입을 타격 역시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인수금에 2배로 매각하기로 계약을 체결, 그에 따른 시나리오를 갖고 엑시트(투자금 회수), 출자자(LP)들에 수익금 분배 등 구상을 마쳤을 텐데 딜 무산으로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평판 하락을 감수하고서도 이 같은 선택을 한 건 의외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내년에도 한국 시장의 투자심리가 회복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awar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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