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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풍·세월호 백서 속 ‘재난 팀워크 부재’…이태원 참사와 닮은 꼴 [참사백서, 이태원에 묻다]
주요 대형 참사 백서 분석…2000쪽 분량
과거 백서 보니 ‘경찰·소방·시 엇박자’ 여전
‘재난 팀워크’ 없으니 첨단장비도 무용지물
관리 부재·안전불감증이 부른 대형참사
‘수백쪽 넘는 백서’ 썼는데…교훈 없었나

2000쪽 분량의 참사 백서 사진. 최근 30년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백서는 총 6권이고, 취재과정에서 참고한 백서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6.6), ‘대구지하철화재 참사 백서’ (2005.2), ‘4.16 세월호 참사백서’(대한변호사협회 작성) (2015.2) 이다.

[헤럴드경제=김빛나·박혜원 기자] “소방·군부대·경찰 등에 대한 통합 지원 체계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현장 주변의 교통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각각 대구지하철 참사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을 설명한 문장들로, 참사 백서(white paper)에는 혼란스러웠던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최근 30년 간 발간된 참사 백서에는 이태원 참사를 연상케 하는 것들이 많다. ‘컨트롤타워 부재’부터 ‘각 부처 간 초기 대응 부족’, ‘유가족 혼란’까지. 이전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백서가 만들어졌음에도 참사는 반복됐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된 현재, 약 2000쪽 분량의 주요 참사 백서 3개를 분석해 참사 당일 수습 과정을 돌아봤다.

‘경찰·소방·지자체 엇박자’ 에 허망하게 지나간 ‘구조 골든타임’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지하철 6호선 입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메모와 함께 국화꽃이 놓여있다. 임세준 기자

25일 헤럴드경제가 분석한 ‘삼풍백화점 붕괴(1995)’, ‘대구지하철 화재(2003)’, ‘세월호 침몰(2014)’ 참사 백서에서 모두 지적된 내용이 있다. 참사 당일,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 주요 부처 간 협업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당일에도 ‘골든타임’인 참사 발생 후 45분 동안 기관 간의 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28분 소방청은 119 신고가 접수된 후 행정안전부 상황실로 보고 전 서울시와 용산구청 상황실에 먼저 통보를 했다. 하지만 용산구청장이 사고를 인지한 시간은 23분 뒤인 10시 51분이었고, 서울시는 1시간 뒤인 11시 45분에야 재난문자를 보냈다. 소방청의 통보가 신속하게 전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장을 지휘해야 할 책임이 있는 용산경찰서장도 사고가 발생한 지 45분 가량이 흘렀을 때 위급상황임을 파악했다. 핼러윈 축제의 전반적인 교통 상황이나 축제 상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참사가 벌어졌음을 확인했다.

이는 다른 참사에서도 발생했던 문제다.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화재 발생 직후 지하철역을 총괄하는 종합상황실의 상황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다. 자연스레 소방 신고도 늦어졌고, 화재 피해를 키웠다. 백서에서도 “지하철공사 등 외부 비상대응기관 직원들의 위기 대처능력 부족 등도 주요 원인으로 작동하였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난을 총괄해야 하는 주무 부처가 상황을 늦게 인지하는 일도 반복됐다. 세월호 참사에서는 최초 신고가 발생한 뒤에도 목포해양경찰은 상급기관에 전달하지 않았고, 해상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하는 관제센터도 상황을 늦게 파악했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용산구청장을 비롯해, 경찰 지휘부, 재난 대응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상황을 늦게 인시했다. 참사 당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골든타임이 20분 지난 오후 11시 20분 행안부 안전상황실의 긴급문자(크로샷)를 보고 사고를 처음 인지했다.

참사 백서란? (White Paper)

특정 주제에 대한 사실관계 및 조사 결과와 대안을 담은 정부 보고서. 최근 30년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참사 백서는 총 6권이다.

※참조 백서

4.16 세월호 참사백서/대한변호사협회 (2015.2), 대구지하철화재 참사 백서 (2005.2),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6.6)

팀워크 없으니…수습 지연은 물론 있던 장비도 ‘무용지물’
지난달 30일 새벽 이태원 참사 발생 후 이태원역으로 소방구조대가 진입하고 있다. [연합]

‘재난 팀워크’ 부재는 곧 참사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을 더디게 만들었다. 삼풍백화점 참사 당시 서울시는 사고대책본부를 꾸렸으나, 체계적인 지휘 시스템 부재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응급환자 수송이 지연된 데다, 뒤늦게 시작된 수송마저도 부상자가 현장 인근 병원으로 몰려 응급실이 포화됐다. 백서에 따르면 백화점 붕괴 다음날인 30일 오전까지 인근 병원에만 300여명의 환자가 몰렸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사망자가 특정 병원으로 몰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태원참사 대책본부가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당시 순천향병원으로 사망자가 집중됐다. 참사 발생 2시간 뒤 용산소방서장이 “모든 사망자를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하라”고 지시했고, 30분 뒤 구급상황관리센터는 “순천향대병원에서 더 이상 지연환자를 못 받는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사망자는 계속 순천향대병원을 찾았고 오전 3시께 영안실 바닥에도 시신을 보관할 정도로 포화상태가 됐다.

기관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구조에 쓰여야 할 장비들이 쓰이지 못한 일도 반복됐다. 세월호 참사 당일 시 중앙119 구조본부는 해양경찰청에 구조장비 지원의사를 밝혔으나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중앙119가 가진 헬리콥터와 수중영상탐지기는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했다. 문화재청이 보유한 수중탐사선도 해양경찰청의 지휘 미흡으로 적절히 활용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도 마찬가지다. 이후 정부는 1조5000억원을 들여 LTE 기반의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했으나, 이태원 참사 때도 첨단 장비는 무용지물이었다. 참사 당일 중앙재난안전상황실과 서울시 재난상황실, 용산구 재난상황실에서 이뤄진 통신 시간은 195초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골든타임이 지난 지 40분 뒤인 오후 11시 41분에야 처음 통신을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새벽 이태원 참사 발생 후 이태원역으로 소방구조대가 진입하고 있다. [연합]
불법 증축, 직원 신고에도…재난 징후 감지 못했다

“세월호가 무리한 증축 과정으로”, “지하철 역사 같이 지하공간에 대한 (안전) 기준들이 매우 취약”, “무리한 (백화점) 매장 증설과 증축 허가 등 총체적 부실”….

백서에선 안전 문제에 대한 지적도 반복됐다. 하지만 백서들이 지적한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의 ‘감시와 감독 부족’이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해밀턴 호텔의 임시 가벽 설치 및 불법 증축 문제와 함께 이를 관리해야 할 용산구청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는 참사가 발생한 후에야 전동차 자재가 화재에 취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동차가 처음 도입된 1974년 이후 20년 간 내장재 사용기준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하철 내부는 ‘최저가’ 재질로 주로 사용됐고, 검찰 조사 결과에서 전동차 내부가 가연성 재료를 사용했던 것이 확인됐다.

각종 경고를 사전에 검토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 이태원 참사 전인 2020년, 용산경찰서는 핼러윈 대책 문건에서 압사 우려를 명시했고, 서울연구원도 2016년과 2020년 비슷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특별수사본부는 해밀턴호텔 대표를 비롯해, 재난을 감시·총괄하는 용산구청 관계자들을 입건한 상태다.

삼풍백화점 참사 때는 수 개월 전부터 위험이 감지됐다. “평소 매장에 물건을 내려놓을 때 진동이 감지됐다”는 직원의 진술부터 참사 전 4층 조명코너 등이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발생해 조명기구가 추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화점 측에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애초에 지자체에서 삼풍백화점의 무리한 매장면적 증설을 방치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는 삼풍백화점 매장면적을 125% 늘리는 결정을 내렸고, 서초구청은 지상 백화점을 떠받치고 있는 지하 1층에 672㎡ 증축을 허가했다.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이태원역 1번 출구. [연합]
참사 되풀이 안 하려 쓴 백서…교훈 없었나

참사 백서는 참사에 대한 진실 규명과 동시에 동일한 참사를 방지하고자 제작됐다. 그럼에도 동일한 참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백서를 통한 재발 방지 노력이 사회 전반에 부족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재난 부처 간 협업 부재 등 ‘국가의 역할 실종’이 매 참사에서 반복된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뼈아픈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주요 참사 백서 6개는 도서관, 기록물 보관소 등에서 ‘잠자고’ 있다. 물론 백서가 모든 참사를 방지할 수 있는 만능 교과서는 아니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현재, 아픔을 기록으로 남긴 과거 국민들의 취지를 되돌아볼 필요성이 있다.

“사고 발생에 따른 일련의 수습 과정을 숨김없이 기록함으로써, 어느 부분이 잘못 되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고 다시는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게…”
1996년 제작된 삼풍백화점 붕괴 백서 발간사

binna@heraldcorp.com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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