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치매에 걸리면 기억은 물론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지는 걸로 여기지만 전혀 잃어버리지 않는 능력이 있다. 바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능력, 우리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바로 우리의 감정, 바람, 욕망”이다. 치매는 뇌의 바깥 부위인 대뇌피질에서 문제가 생기는데 뇌에서 감정이 자리한 더 깊은 부위는 아무리 치매가 공략해도 전혀 다치지 않거나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치매를 연구해온 네덜란드 최고의 임상 심리학자인 휘프 바이선은 ‘치매의 모든 것’(심심)에서 치매 환자에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립의 심화”라며, 치매 환자들이 간직하고 있는 많은 것, 잃지 않는 능력들을 알게 되면 치매 환자와 더 잘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2021년 기준 국내 치매 환자는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 꼴이다. 치매는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인 동시에 “구경해야 하는 사람들의 질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족들의 고통이 크다는 얘기다.
‘치매의 모든 것’은 저자 자신이 40년 동안 치매 가족 다섯을 지켜본 경험과 최신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쓴 종합 치매 안내서이다. 치매의 종류와 행동 유형, 증상, 원인, 치매의 진행 단계와 치매에 걸려도 잃지 않는 능력, 치매 환자를 대할 때 행동 팀과 소통 규칙, 문제 행동 대처법 등 치매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을 총망라했다.
저자는 치매 예방에 낙관적 입장이다. 치매도 조기에 발견, 환자의 특성을 알면 그에 맞는 치료를 시작할 수 있고 가족들도 적절히 반응할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발병하기 오래전부터 치매임을 알려주는 신호들이 있을까? 연구에 따르면 후각 감퇴는 그 중 하나다. 또 걸음걸이로도 알 수 있다. 발을 들기 힘들어하고 보폭이 일정하지 않으며 종종걸음을 걷고 두 발이 땅에 붙는 시간이 길면 치매의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
치매는 보통 3단계로 진행되는데 첫 번째는 아직 이성도 기억도 심하게 무너지지 않은 ‘위태로운 자아 단계’, 두 번째는 기억에 뻥뻥 구멍이 뚫리며 문장이 점점 짧아지는 ‘길 잃은 자아 단계’, 세 번째는 치매의 마지막 단계로 의식은 있지만 거의 모든 용무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침몰한 자아’ 단계다. 저자는 마지막 단계에선 손과 발을 물건 보듯 하며, 미소를 잃게 된다고 말한다.
치매환자는 함부로 대해도 모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치매 환자는 정상인보다 더 상처 받을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기억은 점차 사라지지만 오감, 직관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상대방의 마음도 잘 읽고, 자존감과 정체성,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 안전과 존중에 대한 갈망 역시 환자가 마지막까지 간직하는 능력이다. 치매환자 16명을 쵤영한 300여 편의 영상을 분석한 최근의 네덜란드 연구결과에 따르면, 치매 환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인정하고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남의 시선’ 때문에 괴로워한다.
책에는 문제 행동에 대처하는 법, 치매 환자 대할 때의 일반 팁, 가령 다정한 말과 행동을 건네고 환자의 과거로 돌아가 함께 대화하기, 의미있는 일과 찾아주기 등을 들려준다. 이와함께 간병하며 겪을 수 있는 온갖 문제와 간병의 어려움을 보다 잘 견딜 수 있도록 용기를 붇돋는 조언도 들어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치매의 모든 것/휘프 바위선 지음, 장혜경 옮김/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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