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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P석이 18만원...공연계도 ‘티켓플레이션’
심리적 저항선 붕괴된 ‘대작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6만원
‘물랑루즈!’ 최저가 A석 7만원 9만원
베토벤·캣츠도 티켓값 17만원 책정
고물가·환율 영향 제작비 부담늘고
스타배우 포진 눈덩이 개런티 한몫
‘회전문 관람’ 대세 국내 저항 우려
선착순 할인 등 해외사례 활용 필요
내년 1월 개막을 앞둔 CJ ENM의 ‘물랑루즈!(위쪽)’는 국내 뮤지컬 사상 역대 최고가인 18만원으로 VIP석 가격을 책정했다. 업계에선 역대 최고가 작품의 등장에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내년 1월 국내 팬과 만남을 예고한 뮤지컬 ‘캣츠’. [CJ ENM·에스앤코 제공]

역대 최고가 18만원.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졌다. 라면부터 커피까지 뒤흔든 인플레이션 여파는 마침내 공연계까지 당도했다. ‘대작 뮤지컬’들이 물가 폭탄의 대상이다.

첫 타자를 끊은 것은 오는 17일 개막을 앞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다. 제작사 쇼노트는 VIP 티켓 가격을 16만 원으로 올렸고, 뒤이어 12월 20일 개막을 앞둔 CJ ENM의 ‘물랑루즈!’(블루스퀘어)가 18만원으로 VIP석 가격을 매겼다. 이 작품은 가장 저렴한 A석도 기존 7만원에서 9만원으로 올렸다. 최고가를 기록한 ‘물랑루즈!’의 티켓 가격을 두고 관객들의 불만이 고조될 무렵, EMK뮤지컬컴퍼니의 ‘베토벤’(2023년 1월 12일 개막·예술의전당)과 에스앤코의 ‘캣츠’(2023년 1월 20일·세종문화회관)는 티켓 가격을 17만원으로 책정했다.

뮤지컬 티켓 가격의 변화는 국내 뮤지컬 산업의 역사와 흐름을 함께 한다. 2001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기존 5만원이던 R석의 가격을 10만원, VIP석을 15만원으로 책정했다. 통상적인 가격대는 아니었다. 이후 2010년까지 R석 10만원, VIP석 12만원 수준이던 대극장 뮤지컬은 2018년을 기점으로 VIP석 15만원, A석 7만원으로 유지됐다. 국내 뮤지컬 업계는 출연 배우, 작품의 규모, 저작권(창작, 라이선스, 오리지널)과 관계없이, 극장의 크기에 따라 티켓 가격이 고정돼 있다.

4년 만에 최고 3만원이나 뛰어오른 티켓 가격을 내놓은 것에 제작사도 할 말은 있다. 공연계에 따르면 티켓 가격 책정엔 많은 요인이 작용한다. “같은 공연장에서 진행한 이전 공연의 티켓값, 공연장의 규모, 작품의 제작비, 손익분기점, 관객들의 정서”가 고려 대상이다. 원종원 순천향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가격이 오르면 관객들의 심리적 저항에 부딪히고, 진입장벽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릴 수 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이 있다”며 “단순히 더 벌기 위해 티켓값을 올리는 것이 아닌 고육지책의 결과다”라고 말했다.

티켓 가격 인상의 가장 큰 요인은 물가와 환율 인상이다. 개막을 앞둔 네 편의 뮤지컬은 모두 해외 프로덕션과 협업한 작품이거나 해외 투어 공연이다.

작품의 규모가 클수록 부담도 커진다. ‘물랑루즈!’는 브로드웨이 사전 제작비 396억원(2800만 달러)에 달하는 대작이다. 브로드웨이에서도 지상 최대의 ‘화려한 쇼’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한국 프로덕션인 CJ ENM에 따르면 ‘물랑루즈!’는 오리지널 창작진과 제작진이 직접 참여해 제작비 규모가 커졌다. 우선 현지 프로덕션인 글로벌 크리처스에선 무대, 의상, 소품, 가발 등을 해외 지정 제작소에서 제작해 국내로 보낸다. 이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 인상으로 제작비도 급증하게 됐다. 심지어 배우 아이비 김지우 등 여배우 12명은 의상 가봉을 위해 호주에 다녀왔다. 로열티도 만만치 않다. CJ ENM 관계자는 “70여곡의 팝송으로 이뤄진 매시업 뮤지컬인 만큼 매우 높은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무대를 올릴 땐 현지 제작진의 체류비까지 CJ ENM이 모두 부담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비슷한 입장이다. 쇼노트 관계자는 “물가가 상승하며 세트, 조명, 의상 등의 공연 제작 비용이 증가했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력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인건비 또한 상승해 티켓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들 작품엔 뮤지컬계의 톱스타들인 김준수(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박효신 옥주현(베토벤), 홍광호(물랑루즈!)가 출동하는 만큼 출연료도 만만치 않다. 공연계 관계자는 “잘 나가는 배우들이 두 세명씩 있는 작품이니 개런티도 무시 못 할 포션을 차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금의 티켓 가격 인상에는 뮤지컬 시장의 구조적 문제도 요인으로 자리한다. 장기공연이 정착한 브로드웨이(미국)나 웨스트엔드(영국)와 달리 국내 시장은 최장 3개월의 단기공연 중심이다. CJ ENM “한국 뮤지컬 시장 특성상 오픈 런(폐막일을 정하지 않고 무기한으로 공연하는 것)이 아닌 리미티드 런(기간을 정해놓고 공연하는 것)으로 운영돼 제작비 규모에 맞는 티켓 가격을 책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관객들의 저항’이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N차 관람이 보편화된 이른바 ‘회전문 관객’과 함께 성장해왔다. 제작사는 내로라하는 이름의 배우들을 멀티 캐스팅하고, 관객들은 여러 조합으로 공연을 관람해 왔다. 뮤지컬 업계의 ‘오랜 문화’ 중 하나다. 지혜원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티켓 가격 1~3만원 격차는 일 년에 한 두 번 뮤지컬을 감상하는 관객들에겐 큰 차이가 아닐 수 있지만, 같은 작품을 수십 번씩 보는 회전문 관객에겐 엄청난 부담으로 오게 된다”고 말했다.

한 번 오른 가격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현재는 국내뿐만 아니라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역시 티켓 가격 상승세다. 원종원 교수는 “지금의 환경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외부적 요인이 있는 만큼 제작사에 모든 부담을 지게 할 순 없다”며 “세금 혜택이나 장기공연 정착을 통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객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해외 사례가 벤치마킹이 될 수 있다. 지혜원 교수는 “브로드웨이처럼 선착순 할인, 추첨 할인, 당일 할인 등 할인 티켓을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뮤지컬제작사협회 차원에서 N차 관람 마일리지 적립으로 혜택을 주는 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팬덤으로 자리잡은 관객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선택 폭을 넓힐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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