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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험하라’…공연계 ‘핫 트렌드’ 이머시브 시어터
‘다크필드’ 3부작·‘그랜드 엑스페디션’
오감 자극하는 ‘몰입형 공연’
다크필드 3부작 중 ‘코마’ [LG아트센터 서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붉은빛이 밝혀진 새하얀 병실로 입장한다. 천천히 신발을 벗고 철제 침대에 누운 뒤 헤드폰을 쓴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면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속삭인다. “약을 드셨습니까?” 약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알면서도 머리 맡으로 손을 더듬어 ‘정체 모를 알약’을 찾는다. “10, 9, 8, 7, 6… 숫자를 세기도 전에 의식은 흐려지고 꿈이 당신의 현실이 될 거예요.” 무엇이 실재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이 어둠과 함께 찾아온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모든 감각을 깨운다. 귓가를 속삭이는 목소리에 신경이 곤두선다. 관객의 상상력은 관객 스스로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영국 이머시브 시어터 그룹 다크필드의 3부작 중 ‘코마’(11월 18일까지·LG아트센터 서울). 이 무대의 주인공은 관객이다.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공연장의 ‘핫 트렌드’로 떠올랐다.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 몰입형 공연)는 지금 공연계를 이끄는 새로운 흐름이다.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냄새 맡고 만지는 모든 감각이 살아 움직이는 이 공연은 기존 관객의 역할을 바꾼다. ‘수동적인 감상자’의 위치에 있던 관객은 ‘이머시브 시어터’에서 ‘능동적 주체’로 옮겨온다.

‘이머시트 시어터’는 코로나19 직전 유행하다 팬데믹과 함께 사라졌다. 팬데믹 3년차에 접어들며 감염병에 대한 면역이 생기자, ‘이머시브 시어터’ 역시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체험형 공연 다크필드 3부작 중 ‘플라이트’[LG아트센터 서울]

다크필드 3부작은 컨테이너 박스를 각각 병원(‘코마’), 비행기(‘플라이트’), 회의실(‘고스트쉽’)로 꾸며놓고, 최대 30명의 관객만을 입장시켜 공연을 시작한다. 이 공연은 “시각이 사라지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모든 감각과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30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무대의 주인공이다. 완전히 새까만 어둠 안에서 헤드폰을 통해 360도 입체음향과 향기, 진동을 느끼며 지금 이곳이 아닌 세계를 경험한다. 나도 모르게 혼수상태에 빠져들고(‘코마’), 이승을 떠나간 영혼이 말을 걸고(‘고스트쉽’), 비행기가 추락하는 공포(‘플라이트’)이 찾아온다. 이 공연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열린 마음’이다. ‘다크필드’ 제작진은 “의심을 멈추고 빠져들라고 강요하지 않으려 하지만, 작품에 더 많이 몰입할수록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팁을 줬다. 너무 피곤하지 않을 때 관람하는 것도 방법이다. 온전한 어둠으로 인해 자칫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이머시브 다이닝 ‘그랜드 엑스페디션’ [아이엠컬처 제공]

오감을 깨우는 공연은 또 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파인 다이닝을 경험하는 전례 없는 시도다. 이른바 이머시브 다이닝 ‘그랜드 엑스페디션’(2023년 3월 1일까지·블루스퀘어)이다. 영국에서 12년간 이머시브 다이닝(이머시브+파인 다이닝) 공연을 만든 제작사 진저라인의 첫 한국 상륙이다. 작품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와 모리스 센닥의 소설에 영감을 받았다.

공연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대한 열기구에 탑승한다. 그곳에서 그리니치부터 홋카이도, 시베리아, 리우데자이네루까지 떠난다. 관객은 여행객, 혹은 탐험가가 돼 열기구를 타고 세계일주를 떠나고, 각 나라에 도착할 때마다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한다. 춤과 음악, 음식을 통해서다. 3년째 미슐랭 1스타를 유지하고 있는 레스토랑 ‘에빗(EVETT)’의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가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음식이 미각을 깨운다.

이머시브 다이닝 ‘그랜드 엑스페디션’ [아이엠컬처 제공]

진저라인의 프로듀서인 수즈 마운트포트는 “이야기와 음식이 합쳐진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며 “관객은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음식은 이들이 경험하는 이야기를 엮어가는 수단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음식을 직접 서빙하며 춤도 추고, 관객과 소통한다. 한국에서 직접 오디션을 보고 선발한 배우들이다. 배우들은 관객을 공연 안으로 끌어들여 함께 즐긴다. 기차놀이부터 림보까지, 배우들의 선택을 받으면 열기구에서 잠시 내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물론 거절해도 된다. 수즈 마운트포트는 “이 공연을 보러오기 위해선 약간의 도전정신이 필요하다”며 “한국 관객들이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단 보고 나면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오감 만족’의 최정점에 있는 독특하고 신기한 쇼다. 다만 경우에 따라 요리와 볼거리에 모두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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