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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바꼭질처럼 꼬리에 꼬리를 문 그림들
학고재갤러리, 김은정 개인전 '매일매일( )'

김은정, 흰 눈 내린, 2022, 캔버스에 유채, 193.9x130.3cm [사진=학고재갤러리]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코로나19로 오랜기간 해외에 못나가다가 베니스비엔날레를 보러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는데, 하늘에서 내려다 본 구름이 꼭 지금 나의 작업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구름은 기체이기도 또 액체이기도하고, 어떤 형상으로 눈에 보이지만 시시각각 변하거든요.”

잡힐듯 잡히지 않는 나만의 예술, 그리고 작가로의 길. 그럼에도 김은정(36)은 소소한 매일매일을 쌓아나간다. 겹겹이 쌓인 하루는 단단한 일상을 이루고, 캔버스위 자유로운 드로잉을 이끌어낸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는 신진작가 김은정의 개인전 ‘매일매일 ( )’을 연다. 지난해 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선보인 ‘가장 희미한 해’전의 연장에서 열리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 김은정은 매일의 날씨와 일상의 경험을 소재로 작업했다. 일상의 사건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감정을 날씨로 빗대어본다. 너무나 화창한 봄날이 누군가에겐 가장 슬픈날일수도,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가 가장 행복한 날일 수도 있다. 전시의 제목 ‘매일매일 ( )’에 붙인 빈 괄호는 일상에 내재한 우연성을 상징한다. 자꾸만 어긋나는 기상예보처럼, 예측할 수 없는 매일의 의미를 비워 둔 공백이다.

김은정, 읽는 사람, 2022, 캔버스에 유채, 193.9x130.3cm[사진=학고재갤러리]

캔버스에서는 작가의 눈길이 닿는 일상이 읽힌다. 초록 나무 위 하얀 덩어리가 흩어져있는 작품은 ‘흰 눈 내린’(2022)다. 흰 눈이나 구름이 내려앉은 것 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나무 위에 앉은 백로다. “백로가 모여사는 백로나무가 전국에 꽤 많다. 도시 개발로 갈 곳을 잃어 도심에 자리잡기도 하는데 그러면 또 나무를 잘라 없애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인공 새집을 마련하기도 하고 이들이 살기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하는 등 공존하려는 노력도 동시에 하고 있다” 백로 무리 가운데는 산책하는 사람과 개도 함께 있다. 리서치에서 발견한 공존의 모습을 작가는 소망을 담아 캔버스에 옮겼다.

그런가 하면 ‘읽는 사람’(2022)은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 2020년 1월 튀니지 여행에서 본 책읽는 여인의 모습이다. 해변에 앉아 책을 읽던 히잡 쓴 여인, 그 앞으로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구름이 그 뒤에는 시간이 지나도 녹지 않던 골목길의 얼음이 거대한 빙산이 되어 자리잡았다. 목격한 이미지는 자유롭게 섞이고 배치돼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불확실한 변화들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읽어내는’ 사람이고 싶다”고 말한다.

전시를 감상하는 재미있는 방법은 그림 속 그림을 따라가는 것이다. 구름을 그린 대작이자 조지아 오키프의 ‘구름 위의 하늘 Ⅳ’을 오마주 한 ‘구름의 모서리’(2022)는 그 모서리만 다른 작품에 숨었다. 작가가 직접 제작한 도자기 오브제는 화실의 풍경속에 숨었고, 그 오브제는 전시장 다른 곳에 진열됐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품 찾기가 끝나면, 남다른 감성으로 살아가는 작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전시는 12월 10일까지.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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