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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위기 지나온 지금...‘푸에르자 부르타’가 필요할때”
감독 까르핀테로ㆍ배우 켠, 로페즈 인터뷰
3년만에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
붉은색 문 열리면 압도되는 ‘강렬한 힘’
무대·객석 경계 사라진 인터랙티브 쇼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
“언어 없이 감정 주고받으며 마음 교감...
관객들이 받는 메시지가 작품의 메시지”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2022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의 배우 로페즈 아라곤 브루노, 루시아 켠, 무대감독 까르핀테로 파블로 엔리케(왼쪽부터). 이상섭 기자

트레드밀 위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선다. 갑갑한 듯 넥타이를 조금 풀어내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서서히 빨라지는 속도에 맞춰 걸음은 분주해진다. 무언가에 쫓기듯 떠밀리는 남자는 이내 종이 벽을 뚫고 전력을 다해 내달린다. 빽빽한 도심 숲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모티브 삼아 태어난 장면(‘꼬레도르·CORREDOR’)이다. 처절한 질주엔 누군가의 슬픔과 절망이, 긴 하루의 고단함이, 일상을 벗어던진 찬란한 해방감이 담긴다.

“세계는 지금까지 마주한 적 없던 큰 위기를 지나왔어요. 그 어느 때보다 ‘푸에르자부르타’의 강렬한 힘이 필요합니다.” (까르핀테로 파블로 엔리케(Carpintero Pablo Enrique) 무대 감독)

붉은색 극장의 문을 열면 축제는 시작된다. 스페인어로 ‘강렬한 힘’이라는 뜻의 ‘푸에르자 부르타’. 아르헨티나의 ‘천재 연출가’ 디키 제임스(Diqui James)가 연출, 2005년 태어난 이 쇼는 지난 20년간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2022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12월 26까지·잠실종합운동장 FB씨어터)의 무대감독 까르핀테로 파블로 엔리케, 배우 루시아 켠(Lucia Kern), 로페즈 아라곤 브루노 (Lopez Aragon Bruno)를 만났다.

‘푸에르자 부르타’엔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다. 공연장 안으로 관객들이 입장해 멀뚱히 서면, 부지불식간에 쇼는 시작된다. 네모난 공연장은 모든 위치에서 무대로 변신한다.

2014년부터 ‘푸에르자 부르타’를 함께 하고 있는 루시아 켠은 “이 공연은 영화 촬영 현장 같다”며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이라고 말했다. 공중, 기둥, 벽, 바닥에서 무대가 이어질 때마다 관객은 적극적으로 이동해 장면을 만나고, 배우들은 관객을 데리고 무대로 올라가거나 스티로폼 조각을 주고 받으며 장난도 친다.

“공연을 보러 온 모든 사람들의 눈이 영화를 촬영하는 카메라예요. 관객들은 어느 자리에 있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요. 360도에서 모든 장면이 등장하니 사람들은 저마다의 영화를 만드는 기분이 들 거예요.” (루시아 켠)

‘푸에르자 부르타’에는 오프닝을 포함해 9개의 퍼포먼스가 등장한다. 배우들은 이 공연은 “쇼에 필요한 춤, 음악, 연기 등 모든 요소를 녹인 종합 예술”(루시아 켠)이라고 강조한다.

공을 들이지 않은 장면은 없다. 아르헨티나의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EDM, 팝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한 음악이 매장면에 독특한 색을 입힌다. 그 위로 배우들의 오차없는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와이어를 타고 공연장을 비행( ‘보요, BOLLO’)하면, 관객들의 시선은 하늘에서 멈춘다. 공연장의 천장에서 내려온 투명한 에어 터널 안에선 무중력 상태의 진기명기( ‘글로바, GLOBA’)가 등장하고, 거대한 수조 안에선 신비롭게 유영( ‘마일라, MYLAR’)한다. 초능력자처럼 바닥도 없는 공중 위를 걷고,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달려나가는 퍼포먼스( ‘라 그루아, LA GRUA’)도 기본이다. 공중에서 내달리는 ‘라 그루아’는 아르헨티나의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며 만들어진 장면이다. 까르핀테로는 “이 장면은 원래 아르헨티나의 자유를 상징했는데, 이젠 행복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2009년 열여섯 살의 나이에 ‘푸에르자 부르타’에 합류한 로페즈 아라곤은 “배우들은 모든 신을 돌아가며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각각의 장면에 대한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어가 결정되면 4개월 내내 모든 장면을 연습해요. 이 쇼는 매번 진화하고 있어 늘 새로 배워야 하거든요. 연습엔 쉼이 없고,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지도 알 수 없어요.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기분이에요.” (로페즈 아라곤)

‘푸에르자 부르타’의 배우, 스태프가 강조하는 중요한 가치는 ‘평등’과 ‘협업’이다.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도 없지만, 배우와 제작진의 구분도 없다. 배우들은 자신의 역할을 마치면 무대 아래로 내려와 스태프로 변신한다. “정교하게 수동으로 움직이는”(까르핀테로) 무대 연출은 서로 간의 호흡이 필수다. 특히 공중에서의 퍼포먼스는 하늘의 배우와 땅의 스태프 사이의 믿음이 담보해야 완성된다. 로페즈 아라곤은 “배우와 스태프가 100% 서로를 의지하며 소통한다”며 “테크니션 없이 배우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동등한 관계로 서로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세계 투어를 갈 때마다 ‘로컬 스태프’와 ‘로컬 배우’를 영입한다.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까르핀테로) 방법이다. 현재 국내에선 슈퍼주니어 은혁과 배우 최여진이 함께 하고 있다. 한국인 스태프도 14명이나 참여 중이다.

구구절절 쏟아내는 백 마디 말보다 말없이 선보이는 퍼포먼스의 힘은 더 강력하다. “오감을 자극하는”(루시아 켠) 이 공연은 “잊지 못할 축제의 순간”(로페즈 아라곤)이다. 까르핀테로는 “‘푸에르자 부르타’는 그 어떤 언어 없이 감정을 보여주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교감하는 공연”이라고 했다.

“‘푸에르자 부르타’엔 대본도 없고, 특별한 메시지도 없어요. 말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연이죠. 공연을 보면 관객들은 어떤 장면에선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라고 하고, 어떤 장면에선 현대인의 비애를 느낀다고 해요. 메시지는 관객들이 만들어가는 거예요. 각자의 상황마다 다른 감정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보는 사람들이 받는 메시지가 바로 이 작품의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우린 서로 연결돼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어요.” (까르핀테로, 로페즈 아라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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