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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 끌어내는 공간창출...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게 디벨로퍼” [人터뷰-박진순 한림건축그룹 회장]
부동산 시장의 지휘자 덕목은
과거 시공사와의 파워게임서 ‘을’의 입장
이제는 동등한 파트너로 사업진행 ‘보람’
입지 무시하고 ‘감’만 믿는 경우 오래못가
수익률 계산·과학적 예측 리스크 줄여야
‘청개구리 집값’ 규제 할수록 인상 악순환
내년 하반기까지 ‘어두운 터널’ 이어질 것
70년대 시작된 도시정비사업 현실과 괴리
관련 정책 일관성·규제의 유연화 아쉬워
산업파이 키우는 사람되는 게 내 최종 꿈
박진순 한림건축 회장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사옥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디벨로퍼는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고 수익을 내는 데서 끝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곳에 사는 아이의 얼굴에 어떤 미소가 담길지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을 끌어내는 공간을 창출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고민합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서소문로 한림건축그룹 본사에서 만난 박진순 회장은 디벨로퍼가 가져야할 철학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디벨로퍼는 부동산 시장을 이끌어가는 지휘자라고 했다. 토지를 매입하고, 아파트를 지어, 수요자에게 파는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변화된 삶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여의 소임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지방의 한 작은 시공사 출신이었던 박 회장은 2002년 한림건축을 설립해 건축설계는 물론 감리, 부동산개발, CM(건설 관리자), 분양대행 등 건설산업 전 분야를 아우르는 부동산 종합 그룹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서울 동부화물터미널, 스카이베이 경포호텔, 스테이트타워 남산 등을 설계·관리했고, 현재 직원만 200여명에 달한다. 동남아시아 등에 지사까지 설립하며 K-건축을 해외시장으로 전파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오늘의 한림건축의 출발은 과거 박 회장이 시공사에서 일한 경험이 토대가 됐다. 건설회사에서 현장소장으로 일할 당시, 시공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도 탓에 애로를 겪던 그는 지금도 현장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설계를 추구한다.

설계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는 개발업의 꿈을 잃지 않았다. 2005년 중구 쇼핑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좌절감은 결국 디벨로퍼의 길로 그를 이끌었다. 박 대표는 “당시 설계와 감리를 같이 맡기로 했었는데 건설사와 금융사들의 입김이 작용해 중간에 교체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설계만 가지고서는 힘든 만큼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시행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찌 보면 생존본능으로 택한 선택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회장은 “과거만 해도 시공사들과의 파워게임에서 ‘을’ 입장이던 디벨로퍼들이 최근에는 동등한 입장에서 사업을 진행해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라며 “대한민국 부동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곳을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적잖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디벨로퍼인 그에게 땅을 보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박 회장은 땅을 볼 때 자신의 ‘감’을 절대 믿지 않는다고 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의 디벨로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박 회장은 단언했다. “수익률과 리스크 등은 사전에 철저히 계산되고, 그 결과는 과학적으로 예측가능해야 사업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박 회장은 현재 디벨로퍼는 둘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택지개발예정지구에서 입찰을 통해 땅을 매입하는 쪽과 구도심 또는 일반 토지를 개별 매입하는 두 그룹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그룹 모두에게 공통점은 있습니다. 단연 입지입니다. 일명 ‘OO권’이라고 하는 학세권, 숲세권, 몰(Mall)세권 등이죠. 이같은 지역의 특성을 분석하고 계산하는데 회사 내의 모든 역량이 투입됩니다. 이를 무시하고 나만의 감을 믿어서는 디벨로퍼로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고 박 회장은 강조했다.

인터뷰는 최근 불어닥친 건설과 부동산업계의 불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위기는 한림건축에도 예외가 아니다. 설계를 맡은 14개의 사업지들 가운데 10개의 PF가 무산된 상태라고 급박한 현 상황을 전했다. 박회장은 최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민간 사업은 물론 공모사업들도 PF들이 곳곳에서 무산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들이 많다”며 “그나마 우리 회사는 설계에서 마이너스가 나는 부분을 감리에서 채워주니 다행”이라고 했다.

20년이 넘게 부동산 관련 사업을 영위하였음에도, 최근 위기는 다르다고 진단했다. “과거 IMF 외환위기나 미국 금융위기 등에서 파생된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금융 위기에서 파생이 됐지만, 현 상황은 우크라이나 전쟁, 인건비와 자재비 등의 광범위한 인플레이션 등에서 너무 복합적입니다. 그래서 찝찝합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그는 디벨로퍼에게 가장 중요한 3요소인 토지비, 공사비, 분양가가 모두 비우호적인 환경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래서 적어도 내년 하반기까지 당분간 침체기는 불가피하다고 예측했다. 박 회장은 “한번 올라버린 토지비, 공사비는 내려오지 않는 반면 시장 상황에 따라 분양가는 급격한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라며 “현 상황은 오른 토지비와 공사비는 개발자가 부담하고, 가격은 싸게 분양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당분간 ‘어두운 터널’이 예상된다고 진단한 박 회장은 조만간 NPL(부실자산)의 ‘큰 장’이 설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이 때가 현금을 보유한 이들이 토지를 매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 직전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리가 6%대를 유지하다 문 정부에서 3%까지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다시 10% 대에 육박하죠. 내년 하반기 쯤에는 돈을 갚지 못해 부도 위기에 처한 회사가 헐값에 내놓는 사업장들이 새로운 주인을 맞는 시장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더 이상 부동산 시장의 하락을 방관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박 회장은 “지금은 규제를 푼다 해도 곧바로 가격이 오르지 않는 시장입니다. 지금 이 시기에 분양가를 올려받으려 하는 시도가 있을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한 뒤 “돈이 돌 수 있어야 합니다. 부동산 시장정책은 시행 후 시차를 두고 효과를 발휘하는 데 자칫 타이밍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그는 “집이 없는 사람, 집을 늘려가는 사람들이 대출 규제를 받아 집을 못사게 해선 안된다” 라며 “실수요자에게는 과감하게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속히 ‘산소호흡기’가 지원하지 않으면 현 정부가 공약한 270만호 주택공급을 수행할 건설사, 시행사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 그는 우려했다.

인터뷰는 지난 5년 간 겹겹이 쌓인 부동산과 건설 관련 규제로 넘어갔다. 일선 현장에서 사업을 벌여온 터라 규제에 대해 박 회장은 많은 아쉬움을 쏟아냈다. 글로벌 거대도시 서울과 맞지 않은 여러 건설관련 규제들이 사라져야 한다는 점도 짚고 넘어갔다. 부동산 시장은 ‘청개구리’ 같아서 집값을 잡으려는 갖가지 규제가 곧 집값을 올려놓는다고도 했다.

박 회장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도시환경 정비사업은 1960~1970년대에 시작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서울 인구를 500만명으로 예상하고 건축물의 높이, 건폐율, 용적률 등을 설정한 것이지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00만 인구가 서울에 살게 됐습니다. 현실과 맞지 않은 과거 기준에 따라 획일적으로 도시를 조성하려는 지구단위 계획 등에는 문제점이 많습니다. 뉴욕을 가면 꼬마빌딩 바로 옆에 100층이 넘는 빌딩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토지주들끼리 용적률을 서로 사고팔 수도 있게 해놨죠. 이같은 사고의 유연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책당국을 향해 부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말고 정책이 일관성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새정부 출범과 함께 화두가 된 1기신도시 재건축을 묻자,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했다. 원만하게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부터가 관건이라고 평가한 그는 “결국 재건축이라는 사업은 집값이 오를 때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인데, 조정이 시작된 현 시점에서 어려운 측면이 많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원스톱 기업을 구축한 박 회장의 시선은 이제 해외로 향한다. 한림건축그룹은 이미 베트남·캄보디아·미얀마 등 해외법인을 두고 있다. 6년 전부터는 정기적으로 직접 비행기를 타고 각국에 나가 네트워크도 쌓고 해당 국가의 인허가 절차 등을 별도로 알아보는 작업들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엔데믹에 맞춰 해외에 진출하려는 국내 회사들을 위해 맞춤형 매니지먼트를 하는 것이 목표다.

인터뷰를 마치며 한림건축의 미래를 물었다. 박 회장은 결론은 결국 사람이라고 했다. 200여명의 직원 이름을 전부 기억하고 사내에서 만나면 각자의 이름을 불러준다고 한 그는 “업계 동료들과 동반 성장해 산업의 파이 자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최종 꿈”이라고 했다.

정리=서영상 기자

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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