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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치 미국 온듯…뭐든 ‘아메리칸’이 붙어야 힙해진다 [헤럴드 뷰]
고기·치즈 듬뿍…미국식 식문화 점령
매장입구 카트, 와인·시리얼 철제선반
연남동 카페메뉴로 美 인기 ‘르뱅쿠키’
최근 부활한 압구정 상권도 ‘미국풍’ 덕
햄버거·중식·디저트 등 카테고리도 다양
서울 종로구 사직동 홈보이서울.
서울 강남구 위트앤미트.
서울 마포구 연남동 피프티인더 카트.
서울 강남구 압구정 다운타우너.

# 매장 입구에 놓인 카트, 와인과 시리얼이 진열된 철제 선반이 마치 미국의 그로서리스토어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곳은 마트가 아닌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문을 연 한 카페다. 음료와 쿠키를 주문하면 미니 카트에 음료와 미국의 유명 베이커리에서 비롯된 ‘르뱅쿠키’가 담겨 나온다.

국내 외식업계에 ‘신(新)아메리칸’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의 유명 수제 햄버거 브랜드가 우후죽순 상륙하고, 미국풍 중식당이 20·30대 사이에서 한 번쯤 가봐야 할 인기 맛집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열량으로 외면받던 미국식 도넛, 쿠키마저 이제는 힙(hip)하다는 카페의 필수 디저트 메뉴로 자리 잡았다.

3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카페 ‘피프티인더카트’에 들어서자 힙합음악이 매장에서 흘러나왔다. 매장에는 테이블이 없다. 대신 파란색 리빙박스 또는 카트 위에 음료를 올려놓을 수 있다.

주영서(31) 피프티인더카트 대표는 “미국 그로서리로 느낌으로 카페를 꾸몄다”며 “매장 인테리어는 평소 즐겨 가는 코스트코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으며 카페 이름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미국 래퍼 피프티센트에서 따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외식업계에서 ‘아메리칸 웨이브’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에 대해 ‘압구정 상권의 부활’과 연관이 있다고 단언했다. 1990년대 이후 죽어가던 서울 강남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극적으로 부활했다. 같은 기간 홍대, 강남, 이태원 등 주요 상권들은 타격을 입었지만 압구정은 ‘미국 스타일’을 입고 꿋꿋이 살아남아 외식문화를 선도하기 시작했다는 것. 특히 노티드, 웍셔너리 등 미국식 외식문화를 표방하는 외식기업 GFFG 계열 브랜드들이 이곳에서 터를 잡으면서 MZ세대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그는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창업을 준비하면서 압구정 등 상권이 살아난 지역의 매장을 많이 참고했다”며 “최근에는 패스트푸드뿐만 아니라 디저트업계까지 미국 스타일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1세대 아메리칸 웨이브는 1990년대 미국의 맥도널드, 스타벅스, 패밀리레스토랑 등이 서울 주요 핫플레이스에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특히 강남의 압구정, 청담동 등은 1990년대부터 해외에서 유학한 오렌지족들의 성지로, 일찍이 이곳을 중심으로 미국 외식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외식업 붐이 시작됐다.

그러나 패스트푸드, 패밀리레스토랑 등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보편화되면서 소비자들이 프랜차이즈 매장을 식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특히 웰빙(Well-being) 열풍으로 고기와 치즈가 듬뿍 들어간 고열량의 아메리칸 스타일 음식들은 대중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이에 미국에서 온 글로벌 프랜차이즈들은 매장 수를 대폭 줄이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며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2010년대 중후반부터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소비자 사이에서는 프랜차이즈 대신 새로운 외식기업에 대한 니즈가 생긴 것이다. SPC그룹이 지난 2016년 강남에 처음 쉐이크쉑을 들여왔을 때, 블루보틀이 2019년 성수동에 첫 매장을 냈을 때 소비자들이 열광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두 브랜드 모두 미국에서 잘나가는 햄버거, 카페 브랜드다.

여기에 유례없는 팬데믹으로 발이 묶인 소비자들이 국내에서도 이국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시작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 공부하다 돌아온 젊은 유학생들이 학교 다닐 때 즐기던 미국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덕분에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는 미국 차이나타운의 느낌을 한껏 살린 ‘벽돌해피푸드’ ‘홈보이 서울’ ‘친’ 등 아메리칸 차이니즈레스토랑이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건강한 한 끼용으로 인식되던 샌드위치마저 고기가 듬뿍 올라간 미국식 샌드위치가 인기를 끌고 있다. ‘파스트라미(소의 양지 부위를 훈연해 조리) 샌드위치’가 대표적이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위트앤미트’에서는 따뜻하게 구운 빵과 두툼하게 올라간 고기, 진한 치즈를 더해 무겁고 짭짤한 맛을 강조한 파스트라미 덕에 인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맛집 유치경쟁을 하면서 지난 7월 지하 식품 코너에 ‘위트앤미트’를 들이기도 했다.

유통업계도 신아메리칸 웨이브에 동참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HMR(가정간편식) 브랜드 ‘요리하다’를 전면 리뉴얼하면서 중식 카테고리의 콘셉트를 아메리칸 차이니즈로 정했다. MZ(밀레니얼+Z)세대 직원들이 메뉴 선정을 주도하면서 아메리칸 차이니즈의 대표 메뉴인 ‘쿵파오 치킨’ ‘만다린 오렌지치킨’ ‘새콤바삭 유린기’ 등이 ‘요리하다’의 주력 상품이 됐다.

외식업계에서는 미국 인기 햄버거 브랜드 유치전이 뜨겁다. bhc는 최근 미국 서부지역의 인기 버거 브랜드 ‘슈퍼두퍼 버거’를 오픈했다. 미국 3대 버거 브랜드로 꼽히는 ‘파이브가이즈’도 내년 상반기 국내 상륙을 앞두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이 신규 사업의 일환으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의 주도로 국내에 발을 들이게 됐다.

해태제과는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르뱅쿠키’를 제품으로 선보였다. 르뱅쿠키는 미국 뉴욕의 유명 베이커리인 ‘르뱅베이커리’의 시그니처 쿠키로, 일반쿠키보다 두껍고 토핑이 듬뿍 올라가 있어 단맛을 자랑한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미국 뉴욕에서 인기 있는 ‘르뱅쿠키’를 한국인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제품”이라며 “미국 감성을 담았지만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과 모양으로 재해석해 지난 7월 출시 이후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신주희 기자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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