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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四色] 다시 일어나라 이봉주

지난달 대한체육회는 제8차 스포츠영웅 선정위원회를 열었다. 최종 후보자는 마라토너 이봉주, 양궁 김수녕, 축구감독 박항서, 프로야구 투수 고(故) 최동원 등 4명이었다. 누가 수상해도 이견이 없을 만큼 훌륭한 스포츠인들이다.

선정위원회의 최종 결정은 이봉주였다. 동갑내기 황영조(현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와 함께 한국 마라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봉주는 ‘96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과 ‘2002 아시안게임’ 금메달, 그리고 22년째 깨어지지 않고 있는 2시간7분20초의 한국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선정위원회는 이런 이봉주가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알리고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전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봉주는 지금 투병 중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42.195㎞를 수없이 완주해온 ‘국민 마라토너’였고, 한 번의 대회를 위해 수백㎞, 수천㎞를 달리며 연습해온 철각이었지만 지금은 등산스틱에 의지해 걸음을 옮기며 재활 중이다. ‘근육긴장 이상증’이라는 원인도 알기 힘든 병마는 국민 마라토너를 주저앉혔다. 이런 이봉주가 ‘스포츠영웅’ 선정이라는 소식에 힘을 내 우리 앞에 다시 설 수 있었으면 한다.

필자가 육상을 담당하던 시절, 이봉주를 여러 차례 취재한 적이 있다. ‘96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을 따낸 이봉주는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한국 최고 기록을 세우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당연히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대단했다. 현장의 취재진 상당수가 마라톤 출발지점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봉주는 당시 레이스 초반에 넘어지는 불운을 겪었지만 끝까지 달려 17위를 했다. 기권할 줄 알았다가 완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봉주는 주저앉지 않았다. 올림픽의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한 그는 불과 두 달 뒤에 열린 ‘후쿠오카마라톤’ 출전을 강행했고 2위로 골인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봉주의 투혼은 이듬해 빛을 발한다. ‘마라토너들이 꿈꾸는 대회’ 중 하나인 2001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월계관을 썼다. 당시 귀국한 이봉주를 공항에서 만난 뒤 함께 천안 본가까지 동행해 하루 묵으며 긴 시간 그의 마라톤인생 얘기를 들었다. 많은 국내 마라토너가 그랬듯이 이봉주도 어려운 가정형편에 운동을 하고 싶었고 돈이 적게 드는 육상을 시작하게 됐고, 짝발이라는 크나큰 핸디캡을 극복하며 마침내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성장한 선수였다.

이봉주의 수많은 업적은 눈부시지만 필자가 가장 높이 사는 것은 최다 완주 기록이다. 이봉주는 20년간의 현역 생활 동안 41회의 풀코스를 완주했다. 중도 기권한 대회까지 포함하면 연 2회 이상의 대회를 완주한 것으로, 이는 통상 20회 이내에 완주하고 은퇴하는 보통의 마라톤선수와 비교하면 독보적이다.

이런 어려움을 번번이 이겨내고 최고의 선수가 됐던 이봉주이기에 지금의 투병생활은 툭툭 털어내고 일어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 앞에 다시 설 것이라 믿는다. 이봉주에게 수상 소감을 물어봤다. “생각지도 못했다. 마라톤 선배(손기정 서윤복)들이 받았기에 어려울 줄 알았는데 뜻밖에 선정이 돼서 개인적으로 가문의 영광이다(웃음). 아프니까 힘내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고 하는 이봉주에게 ‘병마를 이겨내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뛰고 싶다”고 했다.

스포츠 영웅 헌액식은 오는 29일 열린다. 그의 쾌유를 빈다.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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