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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고랜드에 돈줄이 막혔다…“돈 더 풀어달라” 빗발치는 요청에 한은, 기준금리 속도 조절하나
금융권 “돈 더 풀어달라 요청”
물가 잡기 위한 한은 긴축과 배치
11월 한미 금리차 확대 전망

[헤럴드경제=성연진·박자연 기자] 레고랜드에서 시작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으로 채권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회사채 및 단기금융시장에 돈줄이 막혔다. 정부가 뒤늦게 비상 회의를 열어 자금 공급 계획을 내놨고 통화정책을 이끄는 한국은행도 일부 힘을 보태기로 했지만, 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에 나섰던 한은으로선 정책 상충을 맞닥뜨리게 됐다.

한은은 시장의 자금경색 완화를 위해 2년여 만에 적격담보증권에 공공채와 은행채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인상이란 통화정책 기조에 변화를 줄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에선 당장 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부터 긴축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신뢰잃은 韓 시장’…채권 시장 혼란 키우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디폴트 여파로 국내 신용시장 유동성 여건은 급격히 냉각됐다. 레고랜드 개발을 맡은 중도개발공사(GJC)의 보증을 섰던 강원도가 빚을 갚아주는 대신 법원에 회생신청을 할 것이라 밝히면서, ‘채권=안전자산’ 공식이 뒤엎어졌다. 투자자들의 손절 매도세는 국고채 시장까지 확대됐다. 정부가 주말 사이 부랴부랴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았지만, 긴축 기조가 예고됐던 상황에서 자금시장 변동성에 제 때 대응하지 못한 경제당국들의 ‘뒷북 대처’에 대한 비판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24일 오전 개장과 동시에 한국 국고채는 4~6% 급등세를 보이다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한국 10년 국채 금리는 지난주 44bp(1bp=0.01%포인트) 급등한 4.62%에 마감했는데, 이날 5% 이상 급등하며 4.65%를 넘긴 뒤 다시 하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는 감세안을 추진하다 철회한 영국과 닮은 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정부는 9월 말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 국채 가격이 폭락했고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약 105조원 규모로 긴급 국채 매입에 나섰다.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긴축 정책을 펴던 영란은행이 채권 시장 안정을 위해 급히 돈을 푸는 상충된 정책을 펼친 것이다.

한은도 이번 채권 시장 마비와 관련해 돈을 더 풀어달라는 요구에 직면했다.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 18일 이창용 한은 총재를 만나 ‘금융안정특별대출’을 재가동해달라고 요청했다. 금융안정특별대출은 증권사·은행·보험사 등으로부터 한은이 회사채를 담보로 받고 대출해주는 제도로서 비상시 유동성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한은은 코로나19 대유행 위기였던 2020년 당시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금융안정특별대출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대출 등 위기 대책을 가동한 바 있다.

그러나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와 SPV 대출 모두 비은행 여신을 규정한 한은법 80조를 다시 발동해야 하는 데다가, 현재 통화정책 기조와 맞지 않아 재가동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채권 시장 경색에 유동성 공급을 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인플레이션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정책 상충 문제가 있다. 경색이 풀릴 시 빠르게 회수에 나서야 한다”며 이번 유동성 확대 조치가 일시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 11월은 베이비스텝?…한미 금리차 더 커질 수= 정부가 다시 시장에 돈을 풀기로 결정하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조절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금통위는 10월 두번째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결정하며, 미국의 강도높은 긴축 시그널과 외환시장 변동성 등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이 총재도 수차례 “우리나라 통화정책이 미 중앙은행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금융 리스크 확산에 한은도 대응을 늦출 수 없게 되면서, 11월 기준금리 인상은 폭을 좁힐 것으로 보인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사태 후 신용 시장 내 자금 경색 우려가 확대되며 A1 등급 CP 3개월물 금리와 기준금리 간 격차는 코로나19 수준까지 급등했다. 한은으로선 최종대부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요구가 크게 확대되고 있는 만큼 11월에는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11월 한은이 베이비스텝을 밟으면 채권시장에서는 안정화 신호로 볼 수 있어 보탬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지난해부터 0.5%에서 3%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담도 통화정책 속도조절론에 힘을 더하고 있다. 가계대출이 1900조원을 기록한 상황에서 변동금리 비중이(8월 기준 75.5%) 높은 우리나라 가계대출 구조상 긴축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올 8월까지 5대 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의 신용대출 중도상환 건수는 33만7408건으로 2021년 연간 건수와 비슷한 수준이다. 기준금리 인상이 2021년 9월부터 시작됐지만, 대출 조기 상황 속도가 가팔라졌다는 것은 금리 수준이 가계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이 긴축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한은의 이 같은 긴축 속도 조절은, 한미 금리차 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 및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우려를 키울 수 있다. 때문에 여전히 기준금리 인상 폭 확대는 열려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금 시장 경색 완화를 위한 유동성 확대 정책은 필요한 조치”라며 “이번 조치가 적절한 효과를 내는 것을 전제로, 미국이 다음달 또다시 0.75%포인트 정책금리 인상에 나서면 한은은 여전히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yjsung@heraldcorp.com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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