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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아씨들’ 정서경 작가 “부자와 싸우는 가난한 세자매…돈의 무게에 책임감 느꼈으면”
탄탄한 구성의 실력파 이야기꾼 정서경 작가
세 자매는 각각 ‘감성-이성-영혼’을 상징
돈은 포켓몬의 메타몽처럼 변신하는 것
OTT로 영화와 드라마 영역 희미해져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예전에 미국 소설 ‘작은 아씨들’을 읽었을 때에는 사회 진출 열망을 담은 도전적 얘기라고 놀라기도 했다. 요즘 읽어보니 착한 자매들 얘기였다. 돈이 생기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싶고, 남북전쟁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고 참전중인 아버지를 서포트하는 자매들이었다. 이걸 가지고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을 얼마나 살릴 수 있을지를 생각해봤다.“

지난 9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연출 김희원 제작 스튜디오드래곤)의 정서경 작가는 “돈이 시대정신이 된 세상에서 가난하게 태어난 세 자매가 돈이라는 보이지 않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서경 작가는 “원작은 네 자매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한 사람이 더 많았다. 세 자매는 감성(오인주)-이성(오인경)-영혼(오인혜)을 상징한다. 원작에서 세째인 베스가 유년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가난과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다. 이를 통해 세째(오인혜)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정서경 작가는 충무로 이야기꾼이다. 이렇게 힘차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가가 그리 흔치 않다. OTT가 생기면서 영화와 드라마의 영역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정서경 작가가 영화쪽에서 드라마로 넘어온듯해, 드라마 계에서는 기대가 커졌다.

정 작가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의 대본을 쓰고 박찬욱 감독과 콤비로 활동했다. 드라마는 ‘마더’에 이어 ‘작은 아씨들’은 두번째 작품이다.

정서경 작가는 “‘작은 아씨들’이 완벽한 구성은 아닌데, 내가 재료들을 얼키설키 엮어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겸손한 표현이다. 탄탄한 구성력에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폭풍 전개를 이어가는 그의 필체에 시청자들은 금세 몰입되고 만다. 세 자매의 이야기에 푸른 난초와 정란회의 미스터리까지 가미해 속도감 있게 전개해 나갔다.

“난초는 우연히 넣게됐다. 화영과 인주를 황당한 장소에서 만났으면 했다. 그러다 국제난초협회까지 가게됐다. 시청자들이 난초에 대한 기대감이 크더라. 난초는 연약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녔고,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판타지가 더 많아졌다. 여기에 등장하는 난초가 실재하는 것이냐는 의문도 가지더라.”

이런 다양한 해석과 추리, 상상은 작가가 원하는 바이다. 정서경 작가는 난초는 돈을 얘기하기 위한 상징이었다는 얘기를 했다. 마지막회에서는 700억원중 인주에게 300억원이 돌아가고, 도일(위하준), 효린(전채은), 인혜(박지후), 인경(남지현)에게 각각 100억원씩이 돌아갔다.

“돈은 포켓폰의 메타몽처럼 사람에게 가면서 튄다. 변신한다. 화영은 가장 큰 그릇이라 돈을 주지 않았다. 화영은 돈을 던진 사람이다. 물론 결말이 부당할 수도 있다. 자매가 의로운 목적을 향해 달려온 것 같은데, 뭔가 범죄에 휘말린 느낌이다. 주인공은 범죄에 휘말리면 안되지 않나. 세 자매가 700억의 무게와 역사를 느꼈다면, 그것을 나누고 미래를 생각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았다. 물론 아직 인혜는 그런 걸 잘 모르겠지만. 인주에게 가장 많은 300억원을 남겨준 것은 돈의 무게를 아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졌으면 했기 때문이다.”

정서경 작가의 돈 얘기는 흥미로웠다. 정 작가는 ‘작은 아씨들’을 3년전 집필하기 시작해 중간에 ‘헤어질 결심’을 쓰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햇수로는 2년 넘게 썼다. 초반에는 인주에게 20억원이 생긴다. 이 돈은 화영이 남기고 간 돈이다.

“처음에는 10억이었다. 인주가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사는 게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아파트 값이 너무 뛰어 눈물을 머금고 20억원으로 높였다. 등산 가방에 꽉차게 해서 인주 어깨에 아파트 하나를 짊어지게 해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 700억도 300억이었다가 늘어났다.”

정서경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하자 “보통사람은 한 작품속에 5개의 이야기까지 넣을 수 있는데, 세익스피어는 6개 이야기를 쓴다고 한다”면서 “저를 남편을 지키는 여자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작가, 여자 연쇄 살인마, 여자 사이코패스를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라 했다가, ‘헤어질 결심’과 ‘작은 아씨들’을 하면서 복합 플롯 전문 작가라고 하더라. 섞는 감각이 조금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정 작가는 “이제 드라마를 많이 쓸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영화만 할 수는 없고, OTT가 계속해서 수요가 생길 것이다. 드라마 작가는 양성기관도 있지만, 영화 시나리오 작가를 교육하는 기관도 드물다. 나는 ‘마더’를 쓸 때 드라마가 어려운 지 알았다. 영화하던 사람이 이렇게 긴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지금은 누구나 선택앞에 놓여있고, 각각의 문법을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는 작가가 권한도 많지만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작은 아씨들’ 제작진과 일해보니 성능 좋은 슈퍼카를 탄 느낌이었다. 같이 얘기하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꿔가는 느낌이어서 든든했다”고 했다.

정서경 작가는 서울대 철학과를 4년 다니다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가 졸업했다. 쉬운 결정은 아닐 것 같았다는 기자의 말에 이수한 학점이 부족해 1년을 더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 미련없이 학교를 바꿨다. 한예종을 갈 때도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보다는 “작가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갔다. 한때 영화전문잡지 기자를 할 생각도 했다고 했다.

정서경 작가는 박찬욱 감독과 독특한 콤비다. 초고를 정 작가가 먼저 쓰면 박 감독이 수정을 하는 식이다. “시나리오 쓰는 방법을 잘 모를 때다. 쓸 때마다 컨펌을 받았다. 수천번을 해봤다. 그래서 박 감독님이 원하는 모드로 쓴다. ‘마더’는 박 감독님과는 다르게 썼다. ‘작은 아씨들’도 완전히 내 스타일이다. 박 감독님이 안봤으면 했는데, 저랑 친해서 보는게 아니라 재밌어서 본다고 말해주더라.”

정서경 작가는 분절 있는 힘있는 명대사도 많이 만들어냈다.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아가씨),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이 있고, ‘너나 잘하세요’(친절한 금자씨)는 정 작가가 쓰고 박찬욱 감독이 고친 합작품이다.

정 작가는 “수입이 많이 늘었나”라는 질문에는 “아직은 무주택자다. 사는데 불편을 못느껴 현실감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 돈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인경이랑 비슷하다. 다음 작품은 한발 더 나아가고싶다. 잘되는 방향만은 아니고 새로운 도전이 되는 걸 해보고싶다”고 말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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