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아메리카 퍼스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북미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바이오 산업에서 미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 행정명령’ 등을 도입한 미국 바이든 정부는 나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인 ‘칩4’ 동맹을 강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 연방준비제도가 ‘자이언트 스텝’을 지속하고 있고, 이로 인한 무역적자를 상쇄하기 위한 보호무역 장벽을 더 높게 쌓아올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11일 국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올해 9월까지 10년 간 국내 기업에 최대 4조5186억원의 반덤핑 관세 ‘폭탄’을 매긴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한국이 미국 기업에 부과한 반덤핑 관세는 최대 39억원에 그쳤다. 미국에서 보호무역주의 입김이 강해지자 그만큼 한국 수출 기업이 집중적으로 견제를 받는 비중이 커졌다는 얘기다. 이 탓에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전임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 강도가 세고 노골적인 차별적 조항으로 우리 기업들을 옭아매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역량을 강화하는 반도체산업 육성법을 제정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대만이 참여하는 ‘칩4’동맹을 추진해 국내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를 떠받드는 주력 수출품목이다. 1992년 이후 매년 수출품목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작년에도 우리 전체 수출 6445억달러 가운데 반도체는 1280억달러로 20%를 차지했다. 2위인 석유제품(466억달러)과 3위 자동차(409억달러)를 합친 금액보다 많다.

반도체 수출이 우리 경제성장률에 기여한 정도는 2021년 성장률 4.1% 중에서 약 1.1%포인트로 추정된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우리 수출은 1000억달러가 줄고, 성장률은 1%포인트가 낮아진다. 만약 중국 견제 성격의 ‘칩4’에 참여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기업에 전가된다. 반도체 주요 원재료의 중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1억3981만달러에 불과했던 원재료 5개 품목의 중국 수입액은 올 들어 7월까진 3억7797만달러로 170% 늘었다. 전체 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7.7%에서 2021년 9.5%, 올해 7월까지 24.4%로 5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내년부턴 반도체 과학법의 ‘가드레인 조항’ 우리 기업을 어렵게 만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조항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시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경우 향후 10년간 중국 공장에 첨단 시설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 정부는 지난 8월 자국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와 AMD에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중국 수출 금지령을 내렸다. 앞으로 미국 내 공장 증설에 나서는 우리 기업은 중국 투자 금지 조항과 미 정부 보조금을 두고 선택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가 심화할 것이라고 봤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국은 8%대의 인플레이션을 2%대로 낮추기 위해 연말까지 금리를 계속 높일 것”이라며 “문제는 내년 상반기 이후”라고 말했다. 금리인상으로 급등한 물가를 잡은 이후 미국 정부는 무역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보호무역 고삐를 더 죌 것이란 설명이다. 김 교수는 특히 “환율을 잡기 위해 환율조작국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