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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철우 박사의 호르몬 미술관] 수면과 면역호르몬 멜라토닌이 있는 ‘미인도’

앞의 그림은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입니다. 화려한 색감과 드라마틱한 연출이 특징인 그림으로, 여인의 꿈과 고독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선명한 이목구비에 푸른빛이 감돕니다. 눈두덩은 푹 꺼져 있고, 뺨은 홀쭉하죠. 의사 소견을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멜라토닌 부족 증세입니다.

멜라토닌은 흔히 ‘수면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혈압과 혈당의 조절, 심지어 피부색에 영향을 미치는 멜라닌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실제 멜라토닌이 처음 발견된 것도 색깔을 바꾸는 동물, 즉 파충류와 양서류를 연구하던 도중이었습니다.

멜라토닌이라는 이름도 ‘멜라닌 세포에 무엇인지 모르지만 작용하는 호르몬’이라는 의미입니다. 멜라토닌이 부족하면,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혈당 부족으로 기운이 없고 낯빛이 어두워지게 됩니다. ‘미인도’의 주인공 미인이 그러하듯 말이죠.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은 의학적으로 일리가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겠죠. 피부 미인이 되려면 멜라토닌 보충을 위해 잘 자야겠죠.

천경자의 그림에서 미인은 피곤과 우울에 푹 젖어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무려 네 마리의 뱀을 머리에 인 채로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습니다. 눈빛은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앙다문 입술에선 힘이 느껴집니다. 미인도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멜라토닌 부족으로 몹시 힘겨울 텐데도 세상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미인의 강인함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바로 이 미인도의 ‘미인’처럼 보인다면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보다는 하루빨리 병원에 들르시는 게 좋습니다.

우리 몸의 멜라토닌은 뇌 중앙에 위치한 송파선에서 생성·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밤과 낮의 길이나 계절에 따른 일조시간의 변화 등과 같은 광주기를 감지, 생식활동을 비롯해 신진대사의 생체리듬을 조절합니다.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이 주원료인데 낮에 햇빛을 받아 세로토닌을 생성하고 이 세로토닌은 다시 멜라토닌으로 전환돼 송파선에 저장됩니다. 멜라토닌 장애는 생성을 잘 못하거나 생성된 멜라토닌을 잘 분비하지 못해 발생합니다. 분비되는 양이 아주 조금만 변화해도 우리 몸에 큰 영향을 끼치는 호르몬이 바로 멜라토닌입니다.

멜라토닌이 부족하면 제일 먼저 수면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피부색을 결정하는 멜라닌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멜라토닌과 멜라닌은 이름은 비슷하지만 원료와 구조가 다른 물질입니다. 우리 몸 안에서 멜라토닌은 트립토판에서 합성되고 멜라닌은 티로신에서 합성되는데, 재미있게도 멜라토닌의 기능 중에서 멜라토닌은 수면과 체내 생물학적 리듬 조절 외에도 멜라닌의 합성 조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멜라토닌이 부족해서 멜라닌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햇빛에 노출되는 피부 부위에 검버섯·기미가 피어날 수 있습니다. 봄철 많은 직장인과 학생들을 괴롭히는 춘곤증, 자도 자도 피곤한 만성피로, 낮에 자꾸 졸음이 쏟아지는 기면증도 멜라토닌과 연관이 있습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경우 낮과 밤이 바뀌면 멜라토닌이 성장호르몬에도 영향을 줘 성장장애를 가져옵니다. 성장호르몬은 멜라토닌이 분비되고 2시간 정도 이후 최대로 나옵니다. 그래서 잠을 잘못 자면 아이들이 키가 잘 못 커질 수도 있게 됩니다. 이런 멜리토닌과 성장호르몬의 균형이 깨지면 성장장애와 대사과정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극단적인 경우, 혈당과 혈압이 불안정해져 당뇨병과 고혈압 같은 기저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천경자 그림 속 미인처럼 강인한 아름다움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피곤한 얼굴의 미인보다는 밝은 얼굴이 더 좋겠지요. 건강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어야 하는 아름다움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무쪼록 아침이 되면 숙면을 못 취하고 몸이 천근만근해지지 않고, 힘을 주어 눈을 뜨지 않아도 되는 나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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