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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예산 60% 넘는 공간조성비용, 찬성하십니까?[이한빛의 현장에서]
"탈 화이트 큐브·관객에 입체적 경험 선사
전시기획 메시지 잘 드러나도록 공간 구성"

해외 유수 근현대미술관은 화이트 큐브 고집
전시 쓰레기 양산 등 탄소중립 정책 의문
미술관전시 본질 무엇인지 고민해 볼 때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가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원형전시실. [사진=MMCA 제공]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지난 19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가 시작됐다. 과천관 원형전시실에서 이뤄지는 이 전시는 참여 작가들 이름만 놓고 보면-모네, 샤갈, 피카소…-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나 막상 전시장에 도착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게 다 인가?’

800평 공간에 회화 7점과 도자 90점이 놓였다. 작품수로는 97점이지만 도자는 사이즈가 작기에 일반적인 설치물이나 조각을 생각해선 안된다. 전시장 조성이 심히 쾌적하다고 느끼면서 작품을 보다보면 원형전시실 중심에 조성된 ‘카페’가 눈에 띈다. 보도자료엔 “거장들이 활동했던 파리 분위기를 전시장에서 작품과 함께 만끽할 수 있도록, 가로등이 켜진 파리의 노천카페에 앉아 창 안의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을 자아내도록 전시공간을 구성했다”고 씌였다.

가로등과 아치형 구조물이 카페 공간을 감싸고, 테이블엔 루이스폴센 판텔라 램프와 비슷한 이케아 램프가 놓였다. 폭신한 스툴이 테이블마다 네 개씩 깔렸다. 전시관람 온 사람들끼리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도록 제안하는 공간이다. 원형전시실 중심엔 큰 기둥이 있다. 작품을 이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 공간을 총 12개의 거울로 막았다. 거울셀피를 부르는 장소다. 그런데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진다. 몇 분이 지나자 다시 밝아진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가로등(가스등)이 생겼을때, 조명이 일정치 못했던 것을 재현한듯 하다.

이쯤되면 작품을 보러 온 것인지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러 옷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근현대미술이라고 불리는 모던·컨템포러리 작품들의 전시문법인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긍정적으로 봐야하는 것인지 디자인이 과도하다고 봐야하는 것인지 어렵기만 하다.

김용주 국립현대미술관 디자인담당관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다른 시각적 요소를 배제하고 작품에 집중하게 하는 화이트 큐브가 표준화 됐지만, 이제는 전시장이 아니어도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늘어났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전시실과 전시의 기능이 작품과 작가의 소개를 넘어 관객들에게 작품과 장소적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좀 더 입체화 됐다”며 “공간적 체험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미술관에도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환경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경우는 이건희 소장품이라는 구슬을 19세기 파리라는 공간에서 작가들 사이 관계를 중심으로 꿰어가는 전시기획의 메시지를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자연스레 파리 공론장의 핵심이었던 카페가 등장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김 담당관은 “디자인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공허해보이는 공간의 밀도를 극복하는 것이 출발이었다. 주어진 조건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런데 해외 유수 근현대미술관들은 모두 화이트 큐브를 지향한다. 21세기 미술관이 닥친 최대 화두가 관객과 소통인데 이들은 왜 딱딱하기 그지없는 화이트 큐브를 고집하는 것일까. 작품 몰입 경험이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립미술관 중 최고로 꼽히는 글렌스톤 미술관은 완벽한 화이트 큐브의 전시장 안에 작품만 있다. 벽에 작품명을 알리는 스티커도 없다.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한다. 기록을 할 수 없으니 작품을 눈에 더 담게 되고 작품 정보가 없으니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물어야 한다. 신기하게도 사진을 찍으며 보았던 미술관보다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이 있었는지 더 확실하게 기억하게 된다.

임우근준 평론가는 “모던·컨템포러리 전시에서 다들 너무나 뻔하게 지키고 있는 묵계가 있다. 화이트 큐브는 작업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고안된 장치”라면서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전시쓰레기다. 3개월 전시 후 버려질 폐기물이 어마어마하다. 지속가능한 미술관을 위한 탄소중립을 한다고 발표만 하고 실제로 어느 만큼 썼는지 알 길이 없다”고 비판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늘 비교대상으로 언급되는 영국 테이트에는 전시디자이너가 없다. 담당 큐레이터가 동선을 짜고, 설비전문가와 논의를 거쳐 전시장을 구성하는 것이 전부다.

입체적 공간 경험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기관의 예산이기에 우선순위를 따져볼 수 밖에 없다. 이번 이건희 특별전의 전체 예산은 4억6000만원, 그 중 전시장 조성과 가구, 조명 등 전체적인 공간기획 및 조성에 들어간 비용은 60%가 넘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 작품구입예산은 48억원이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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