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거짓없는 몸의 언어...비로소 ‘나’를 보다”
‘스트레인지 뷰티’ 美에 관한 낯선 실험
국립극단·벨기에 리에주극장 공동제작
연출가, 예술가들 놀 수 있게 ‘판’ 제공
나라·문화 다르지만 장르경계 없이 창작
낯설고 생생한 퍼포먼스 기묘한 매력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 중인 ‘스트레인지 뷰티(Strange Beauty)’는 한국,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다양한 대륙 출신의 창작자 7명이 참여, ‘아름다움’을 주제로 공동 작업을 진행한 작품이다. 사진은 배요섭 연출가(오른쪽)와 마리아 클라라 빌라 로보스(왼쪽), 에메 음파네(가운데). 임세준 기자

나뭇가지를 입에 문 여섯 명의 예술가들은 말을 할 수도,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무문관 제5칙 향엄상수’ 공안(불교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깨우침을 얻도록 인도하기 위해 제시하는 역설적 물음)에 대한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는 생생하고 실감났다. 목구멍에 걸린 소리가 신음만을 내뱉고, 소통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예술가들은 괴로운듯 뒤틀린다.

‘낯선 실험’이 이어진다. 최근 국립극단에서 만난 브라질 출신의 안무가 마리아 클라라 빌라 로보스는 “이 작품은 공안들만큼이나 수수께끼 같고, 제목처럼 스트레인지(Strange)하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막을 내린 ‘스트레인지 뷰티(Strange Beauty)’는 한국,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다양한 대륙 출신의 창작자 7명이 참여, ‘아름다움’을 주제로 공동 작업을 진행한 작품이다. 한국 관객과 만난 공연은 오는 12월 벨기에 리에주 극장에서 다시 막을 올린다.

작품엔 제목만큼 ‘기이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자가 정의하는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스트레인지 뷰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미(美)와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에요.” (마리아 클라라 빌라 로보스)

무대는 장르에서부터 ‘경계’를 허물었다. 연극, 무용, 비주얼 아트, 음악 등 어느 한 장르라고 규정할 수 없다. 도리어 이 모든 것을 망라한 실험극이자 종합예술이 ‘스트레인지 뷰티’다. 콩고·벨기에에서 활동하는 비주얼 아티스트 에메 음파네는 “경계 없이 여러 분야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며 “다양한 문화권, 서로 다른 배경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면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각자의 경험을 가져와 하나의 공연으로 창작을 하는 매순간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연출가의 역할도 보통의 공연과는 조금 달랐다. ‘판 디자인·연출’을 맡은 배요섭은 “기존의 연출가의 역할에서 벗어나 예술가들에게 콘셉트를 제안하고 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경험, 정신세계를 펼치고 놀 수 있는 ‘판’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스트레인지 뷰티’는 아름다움이라는 결과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라, 그것을 찾기 위해 던진 질문들이 육화돼 나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아름다움을 좇다 보니, 그것은 손에 잡히는 대상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름다움의 경험이 일어날 때 내가 어떤 상태에 있었고, 내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발견하는 것, 그것을 이야기할 때 아름다움의 개념이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배요섭)

작품의 시작은 2020년. 그 해 여름 예술가들은 전라도 해남의 미황사와 벨기에에 있는 티베트 템플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19로 공연이 1년 미뤄지며 생긴 ‘시간’에도 각자의 공간에서 명상을 이어갔다.

“아름다움의 경험이 일어나는 과정에서의 나를 보려면,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러다 보니 명상을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무경계’와 ‘도덕경’의 도움을 받았어요.” (배요섭)

6명의 예술가들은 ‘무경계’와 ‘도덕경’을 읽으며 얻은 생각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마리아 클라라 빌라 로보스는 “‘무경계는 동양과 서양의 사상을 함께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며 “이 책을 읽으면서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다음 단계는 무문관에서 선택한 12개의 공안과 그것에 대한 코멘터리를 읽고 저마다의 답을 찾아 ‘소울 퍼포먼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마리아 클라라 빌라 로보스는 “서양인은 이성에 입각해 보는 데카르트식 관점에 익숙한데, 공안은 그것과 반대되는 방식이라 처음엔 쉽지 않았다”며 “함께 작업하며 영감을 얻고 그 작업에 영향을 받으며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여름 동안 공안들을 주제로 고민하고, 각자가 느낀 점을 저마다의 퍼포먼스로 다듬어갔다. ‘스트레인지 뷰티’는 예술가들이 공안을 통해 얻은 영감이 발현된 퍼포먼스가 독자적인 다수의 에피소드를 만들고, 그것이 유기적으로 이어진 작품이다.

배 연출가는 “참여 예술가들의 제안들이 하나의 독립된 공연처럼 느껴졌다”며 “온전히 제안된 방향대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 각각이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살아있도록 연결했다”고 말했다.

몇 개의 정해진 약속을 제외하면, 창작자들이 만들어가는 무대는 매번 달라진다. 배 연출은 “지금 이 무대 역시 완성은 아니”라고 했다. 공연은 ‘즉흥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올 겨울 벨기에 공연에선 또 새로워질 수 있다. 매순간 무대에서 보여지는 이들의 ‘몸의 언어’는 거짓도 꾸밈도 없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답을 얻기 위해,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지는 과정은 ‘도덕경’이 말하는 ‘무위(無爲)’를 발견하는 과정이자, 가장 순수한 내면, ‘본래의 나’를 만나는 과정처럼 보인다. 비로소 ‘내가 되는 과정’이다.

‘스트레인지 뷰티’작업은 참여한 창작자들에게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고 있다. 에메 음파네는 “이 과정이 비주얼 아티스트로서 내가 해온 작업과도 연결돼 굉장히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며 “이 작업은 눈에 띄는 동시에 눈에 띄지 않는 섬세한 대형 천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마리아 클라라 빌라 로보스는 “이 작품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보다는 낯섦과 기묘함이 두드러지는 공연”이라며 “주제를 넘어 작업 방식에서도 창작자들은 각자 친숙하지 않은 도구나 요소를 사용해 퍼포먼스로 만들며 하나의 낯섦에 다가섰다. 기묘한 아름다움이었다”고 돌아봤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