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신규건설 2045년까지·폐기물 처리계획 수립 등 조건 부과
고준위 방폐장 '확보시한'은 빠져...EU는 2050년까지 방폐장 확보 조건
찬반 논란 계속…환경부 "여론 듣겠지만 포함하는 것은 이미 확정"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이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원자력 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 체계에 포함하기 위해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 원전 신규 건설, 원전 계속 운전 등 3가지로 구성된 원전 경제활동 부분에 대한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부가 원자력발전을 포함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개정안을 공개했다. 그러나 원전을 녹색산업으로 규정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는 구체화됐지만, 정작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언제까지' 지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외한 탓에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반대로 현 정부 들어 공사 재개를 결정한 신한울 3·4호기가 녹색투자로 인정돼 낮은 이율의 녹색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K택소노미에 ‘원전’ 포함=환경부는 20일 친환경 에너지 산업 등을 규정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킨 초안을 공개했다. K택소노미는 특정 기술이나 산업활동이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다. 금융권이나 연기금들은 택소노미를 ‘녹색금융’의 기준으로 삼는다.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면 자금 유치나 금리 조건 등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기존 안은 태양광·풍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가 녹색부문에 포함돼 있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은 과도기적 필요에 따라 전환부문에 들어있다.
이날 공개된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에는 원전도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SMR, 방사성폐기물을 최소화하면서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차세대 원전, ATF, 방사성폐기물 관리, 우주·해양용 초소형 원전, 내진성능 향상 등 원전 안전성·설비신뢰도 향상 등을 위한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과 관련된 제반 활동’은 ‘녹색부문’에 포함됐다. 국내 녹색분류체계는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으로 나뉜다. 녹색부문은 ‘탄소중립과 환경개선에 기여하는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이다.
또, ‘전력이나 열을 생산·공급하고자 원자력을 이용하는 설비를 구축·운영하는 활동(원전 신규건설)’과 ‘설계수명이 만료된 원전 계속운전을 목적으로 설비를 개조하는 활동(원전 계속운전)’은 전환부문에 들어갔다. 전환부문 규정은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은 아니지만,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서 중간과정으로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활동’이다. 원전 신규건설과 계속운전의 경우 ‘2045년까지 건설·계속운전을 허가받은 설비’에 대해서만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는 활동으로 인정한다.
신월성원전 2호기. [헤럴드경제 DB] |
▶‘방폐장 확보시한’ 빠졌다=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전환부문으로 추가된 원전 신규건설, 원전 계속운전 사업이다. 원전 건설·운영 사업은 2045년까지 한시적으로 녹색분류에 포함되는데, 환경피해 방지와 안전성 확보라는 전제조건을 갖춰야만 한다.
신규건설의 경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 계획 존재와 계획 실행을 담보할 법률 제정’, ‘중·저준위 방사서폐기물 처분시설 보유’, ‘최신기술기준 적용과 ATF 사용’, ‘에너지 1kWh(킬로와트시) 생산 시 온실가스 배출량 이산화탄소 환산량 기준 100g 이하’,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과 원전 해체 비용 보유’ 등을 충족해야 한다. 계속운영 조건도 신규건설과 같지만 ATF와 관련 ‘2031년 1월 1일부터 ATF 사용’으로 규정됐다.
그러나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에 대해선 확보시한을 제시하지 않았다. 단지 ‘문서화 된 세부계획’만 요구됐다. 대신 사업자들이 고준위 핵폐기장 확보를 담보할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우리보다 앞서 제도를 갖춘 EU는 2050년까지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를 조건으로 달았다. EU택소노미는 ATF 사용을 2025년부터로 규정했다. 우리보다 6년 이르다. 또, 원전산업을 녹색으로 인정하는 시한 자체는 신규 원전의 경우 2045년으로 우리와 같지만, 기존 원전은 2040년이어서 우리보다 5년 일찍 녹색산업에서 퇴출시킨다는 계획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 시점을 명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환경부는 “정부가 작년 12월 확정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면서 “세부 계획 이행을 위한 법률 제정을 조건에 포함해 처분시설을 적기에 확보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엔 ‘부지 선정 절차에 착수하고 20년 안에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고 37년 이내에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한다’라는 방침이 담겼다. 계획대로면 올해 부지 선정에 착수해도 2060년에 운영이 시작된다. ATF와 관련해선 “국내에서 가장 이르게 상용화될 수 있는 때가 2031년”이라고 설명했다. ATF는 세계적으로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는데 가장 앞섰다고 평가받는 미국도 2026년에야 상용화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 포함 방침은 못 바꿔”…논쟁 불가피=정부가 원전을 포함하는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논쟁이 다시 커질 전망이다. 환경단체는 방사성폐기물이라는 위험하고 완전한 처리법을 못 찾은 폐기물이 나오는 원전을 포함하면 ‘그린워싱(친환경적이지 않으면서 친환경으로 위장하는 행위)’을 막겠다는 녹색분류체계 의미가 완전히 상실된다고 주장한다. 벌써부터 새 정부가 별다른 공론화 과정 없이 개정안을 내놨다는 비판도 나온다.
환경부는 이번에 발표한 개정안은 ‘초안’으로 이후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환경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한다‘라는 방침은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작년 12월 환경부가 스스로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해 만들었다’고 밝힌 녹색분류체계를 9개월 만에 바뀐 정권 눈치를 보며 개정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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