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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세상에 눈을 뜨다

정말 일어나기 싫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요 며칠 무리해서인지 통풍이 찾아왔지만 시험을 목전에 둔 수험생처럼 단 1분이라도 더 누워 있고 싶은 간절함을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통풍에 마라톤이라니, 제정신이 아닌 듯하지만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로펌에서는 내부에 공익위원회도 있지만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사단법인 온율’을 후원하면서 다양한 공익활동을 하고 있다. 두 달 전쯤 회의에서 시각장애인과 함께 달리는 마라톤대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신청하였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그 당시에는 대회 전날 통풍이 발병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마라톤 출발지점이 집 앞에서 한강 다리 하나 건너면 되는 뚝섬공원 수변무대였고, 평소의 저질 체력 덕분에 참가 종목을 신청하면서 걸어도 되고 뛰어도 되는 5km 코스를 선택한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진통제를 먹고 절뚝이며 집결장소에 가보니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개최되어서인지 참가자들의 얼굴에 오랜 기다림과 설렘이 묻어 있었다.

지난 9월 17일 개최된 행사의 공식 명칭은 ‘제8회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어울림 마라톤대회’다. 인상 깊었던 것은 동반 주자들의 봉사였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출발 총성과 함께 해결되었다. 혼자서는 제대로 달릴 수 없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가이드러너가 서로의 손목을 끈으로 연결한 상태에서 호흡을 맞추며 뛰는 것이다.

절뚝이며 반환점에 도달한 후 눈을 감고 한 번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눈을 다 감으면 한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할 테니 오른쪽 눈은 꾹 감고, 왼쪽 눈은 한두 걸음 앞만 내다보이게 실눈을 뜨고 걷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동안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면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하고 좌절하였다. 두 눈이 제대로 보이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임을 깨달으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살면서 남들 하는 정도의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였고, 대한변협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는 각종 입법활동과 지원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말만 앞세웠던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에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 어울림마라톤대회가 선물한 것은 완주 메달이 아니라 이처럼 세상에 눈을 뜨는 경험을 하게 한 것이었다.

우리 헌법은 제34조 제5항에서 ‘신체장애자인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에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장애인복지법, 장애인활동지원법, 장애인고용촉진법 등 장애인 보호와 관련된 수많은 법률이 나온다.

실효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북한도 헌법 제72조에서 ‘병 또는 신체적 장애로 노동능력을 잃은 사람은 물질적 방조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을 정도이니, 장애인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dingd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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