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중단으로 유럽산 부품수급 난항 우려
中, 고부가선 시장 속속 진출…“양 뿐 아니라 질로도 위협”
선박 건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한 국내 조선소 [게티이미지] |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최근 실적 개선 분위기가 감지됐던 조선사들이 후판(선박에 쓰이는 두께 6㎜ 이상의 철판) 가격 상승 우려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태풍 힌남노로 후판을 공급하는 포스코의 생산 차질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러시아의 대 유럽 가스공급 중단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유럽산 핵심 선박부품 수급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중국 조선소들의 고부가선 진출 소식은 기술 경쟁력 감소에 대한 위기감도 조성하고 있다.
20일 업계 및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2020년만 해도 t당 67만원(스틸데일리 공시기준) 수준이던 후판가격은 지난해 112만원으로 올랐고, 올 6월말 현재 127만원까지 상승했다. 후판은 선박 제조 원가의 20% 가량을 차지한다. 따라서 철강업체와의 후판 가격의 협상이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조선사들의 적자는 세계 철광석 가격 상승에 따른 후판값 급등에 기인한다. 조선사들은 올 하반기 들어 철광석 가격이 다소 안정세를 보이면서 후판값이 인하되거나 최소 동결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포스코의 침수 피해로 후판 생산이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후판을 만드는 압연라인의 배수작업이 진행 중이라 포스코의 연간 후판 제조량 감소가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수주 증가로 조선사들의 후판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철강사 공급은 위축, 가격의 상방 압력은 다시 커질 수 밖에 없다.
전쟁으로 국내 조선사들이 주요 부품을 조달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발표한 보고서(BOK 이슈노트)를 통해 “조선업에서는 독일,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의 선박엔진·부분품, 자동위치유지장치(DPS) 등이 타 국가 제품으로의 대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실제로 우리나라의 선박 생산은 독일산 선박엔진 수입과 비교적 밀접한 동행관계를 보이고 있어 선박 관련 유럽산 부품 수입에 차질이 발생한다면 국내 조선업황 회복에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조선소들의 추격세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우리나라는 중국에 세계 선박 발주 1위 자리를 내줬다. CGT(표준선 환산톤수) 기준으로 중국이 전세계 발주량(188만CGT)의 54%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41%에 그쳤다. 한국 조선소들은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줄곧 중국을 앞서 최고 수주량을 유지해왔지만 8월 들어 이 기세가 다소 주춤해진 것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인도 시기와 수익성을 고려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선을 선별 수주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조선소들도 고부가선 진출에 속속 성공하고 있어 한국의 기술 우위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된다는 보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최대 해운사인 코스코 그룹의 CSHI는 그룹으로부터 친환경 선박인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의 수주 상담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최대 민영조선사인 양쯔장 조선도 최근 LNG선 화물창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엔지니어링 업체 GTT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덴마크 선사 셀시우스 탱커는 양쯔장 조선, 중국상선중공업(CMHI)와 LNG선 신조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다례조선과 장난창싱조선은 올 들어 설립 후 처음으로 대형 LNG 운반선 수주에 성공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중국의 ‘조선 굴기’를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 조선사들의 고부가선 수주는 한국 업체들과의 경쟁을 통한 결과물이 아니라 한국 업체들의 수주잔고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최근 중국업체들의 고부가선 진출은 한국업체들의 시장 점유율 잠식보다 전체 선가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gi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