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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은 전세가율이 ‘깡통전세’ 주범이라고?
정부, 실거래 동향 발표하며 경고
“전셋값 하락하는데 웬 뜬금포”
시장에선 ‘타이밍’ 두고 설왕설래
매매가 급격한 하락에 따른 현상
“실수요 시장에선 상승하기 마련”
집값상승 기대감 사라지면 올라
빌라 경우 수십년간 70%대 유지
전세가율 79.2% 경북 ‘집값 안정’
집값상승 동력 판단도 무리 있어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

‘전세가율(집값에서 전셋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갑자기 ‘깡통전세’의 표식이 됐다. 정부가 지난 14일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으로 실거래가를 분석한 전세가율 자료를 공개한다며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매매가가 하락하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우려가 크다”고 못박으면서다. 전세가율 높은 집은 위험하니 계약할 때 신중하라는 조언이다.

높은 전세가율이 위험한 이유는 집주인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혹시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보증금은 돌려줘야 할 빚이다. 만약 집값이 전세보증금 밑으로 떨어지거나, 경매에 넘어가 처분할 경우 낙찰가가 보증금보다 낮으면 세입자는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기 힘들어진다. 이런 주택을 깡통전세라고 한다.

정부의 발표 이후 깡통전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언론에선 전세가율이 80% 이상이면 위험하다며 해당 지역 리스트를 시리즈로 공개하거나, 평균적으로 전세가율이 높은 노후 아파트나 빌라(연립·다세대)가 위험하다는 기획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현재 전세가율 상황이 정말 정부가 경고음을 울릴 정도로 심각한 걸까? 전세가율이 높은 주택은 정말 깡통주택 위험이 큰 걸까? 전세가율 관련 논란을 정리했다.

▶시장에선 안정적인 전세가율...뜬금없는 깡통전세 논란?=기본적으로 정부가 전세보증금 피해 대책을 마련한 건 의미가 있다. 전세보증금 사기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으며 언제라도 대책을 만들어 서민피해를 줄이는 건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다.

다만 타이밍에 대해선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주택시장은 역대급 ‘거래절벽’을 겪고 있다. 매매가는 물론 전세가도 떨어지고 있다. 전세가율은 별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내리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1~8월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은 61.7~62% 사이를 유지할 정도로 안정적이다. 2017년 5월 76.7%를 최고점으로 꾸준히 하락한 결과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전세가율은 이보다 더 높아 눈길을 끈다. 최근 3개월간 수도권 아파트 매매와 전세 실거래가를 조사하니, 평균 전세가율이 69.4%라고 한다. 수도권 빌라 전세가율은 83.7%나 된다.

먼저 이 지표가 얼마나 현실을 담았는 지에 대해선 논란이 불가피하다. 최근 주택시장은 거래량이 월간 기준 5분의1토막이 난 지역이 있을 정도로 비정상적이다. 급매물만 거래된다는 곳이 많다. 서울 인기지역에선 시세보다 20~30% 싼 가족이나 지인간의 증여성 직거래가 전체 거래의 10%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이렇게 전세가율을 계산하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설령 전세가율이 갑자기 급등했다고 이게 바로 깡통전세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전세사기가 갑자기 심각해진 상황도 아니다. 경찰청이 윤석열 정부에서 전세사기 단속을 강조하자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사기 단속건수는 2019년 107건(95명)에서 2020년 97건(157명), 2021년 187건(243명)으로 조금 늘어나긴 했다. 다만 전세사기는 단속활동을 강화하면 늘어나는 것처럼 통계에 잡힌다. 박근혜 정부에서 ‘4대악 근절’이라며 ‘불량식품’ 단속을 강화했을 때, 적발 건수가 대폭 늘어난 것과 비슷하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깡통전세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상황 처럼 매매가는 떨어지고 전세가가 올라가던 시기엔 늘 등장하는 이슈”라며 “정부가 시장에서 원하는 재건축 및 대출규제 완화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시장과 별 상관없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높은 전세가율 위험할까=전문가들은 사실 높은 전세가율이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전세가율이 오랜기간 70% 이상 유지돼 온 광주, 대구, 울산 등 지방에서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수도권보다 더 많이 떼였다는 증거는 없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이 75% 이상이었던 2015년 7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서울 아파트 전세가 위험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다.

아파트에 비해 전세가율이 높은 빌라는 과거부터 수십년간 70% 수준을 유지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수도권 빌라 전세가율은 올 8월 68.4%를 기록했는데, 올 1월부터 8월까지 68.2~68.4%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수도권 빌라 전세가율이 가장 높았던 2019년 3월에도 69.1%였을 정도로 변화가 없는 시장이다.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은 일반적으로 집값 상승 기대감이 없다. 세입자는 굳이 집을 사려하지 않고, 집주인은 전셋값이라도 많이 받아 다른 방식으로 수익창출을 도모하려고 한다. 집주인이 무리하게 전셋값을 올린 게 아니라 시장에 전셋값이 그렇게 형성돼 있을 뿐이란 이야기다.

시기적으로 전세가율이 높아지는 건 집값 상승 기대감이 없을 때다. 높은 전세가율이 꼭 불안한 임대차시장과 연관됐다고 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주택시장이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되면 전세가율 상승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전세가율이 60%를 넘으면 집값이 오른다?=사실 높은 전세가율은 주택시장에서 집값 상승의 ‘선행지표’로 여겨진다. 수많은 재테크 교과서엔 ‘전세가율이 60% 이상이면 집값이 오른다’는 가설이 실려 있을 정도다. 전셋값에 돈을 조금 더 보태면 집을 살 수 있으니, 매매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가설은 최근에도 증명됐다. 2010년대 초반 침체됐던 서울 아파트값이 다시 뛰기 시작한 건 전세가율이 60%를 넘었던 2013년 10월(60.1%) 직후부터였다. 그때부터 서울 월간 아파트값 변동률이 플러스로 돌아서 최근까지 상승세를 이어왔다.

물론 이 가설도 지역이나 상품에 따라선 틀릴 수 있다. 서울 등 주택수요가 많은 지역에서야 전세가율이 상승하면 투자수요가 몰리니 집값 상승을 견인하겠지만 지방은 아니다. 예컨대 현재 지방에서 전세가율이 가장 높은 경북(79.2%)은 지난해 내내 월간 기준 80% 이상을 기록했지만, 집값 변동률은 전국 평균의 절반 수준도 안됐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소장은 “높은 전세가율을 깡통전세의 상징처럼 여겨선 안되는 것처럼, 무조건 집값 상승의 원동력이라고 판단해서도 안된다”며 “지역 상황, 주택 종류, 주택수급동향 등 다른 조건들을 두루 고려해야 전세가율의 시장 효과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일한 기자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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