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대통령실] |
[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 8월 반도체 수출이 26개월 만에 역성장(-7.8%)을 기록한 가운데, 한국 반도체 산업이 최근 10년 중 가장 심각한 수준에 빠졌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반도체를 핵심 성장 동력으로 한 윤석열 정부의 초강대국 수립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반도체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국내 반도체산업 경기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반도체산업이 처한 상황이 최근 10년 내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10년 내 있었던 국내 반도체산업의 부진 시기, 즉 ‘2016년(중국의 메모리시장 진입)’, ‘2019년(미중 무역분쟁)’ 당시와 비교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의 43.4%는 ‘그 때보다 심각한 수준’(‘매우 심각’ 16.7%, ‘심각’ 26.7%)이라고 응답했다. ‘유사하다’는 답변은 36.6%, ‘양호하다’는 답변은 20%로 집계됐다.
2016년은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진출과 사드 사태 여파로 4년 간의 수출 증가세가 꺾인 해이다. 2019년에는 미중 무역분쟁과 글로벌 반도체 다운사이클 여파로 반도체 수출이 전년대비 약 26%가량 감소했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과거 반도체산업의 출렁임이 주로 일시적 대외환경 악화와 반도체 사이클에 기인했다면, 이번 국면은 언제 끝날지 모를 강대국 간 공급망 경쟁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기술추격 우려까지 더해진 양상”이라며 “업계의 위기감과 불안감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애플이 메모리 반도체의 신규 공급처로 중국 YMTC를 낙점하면서 국내 반도체산업에 위기감을 안겨줬다. YMTC가 애플에 공급하게 될 낸드플래시 부문은 한·중간 기술 격차가 1~2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전문가 10명 중 7명(76.7%)은 현재 반도체산업이 처한 상황을 ‘위기’로 진단했다. ‘위기상황 직전’이라는 응답은 20%, ‘위기상황이 아니다’라는 답변은 3.3%에 그쳤다.
현재 상황을 ‘위기’ 혹은 ‘위기 직전’으로 진단한 전문가들에게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는지’를 물은 결과, 가장 많은 전문가들이 ‘내후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58.6%)으로 전망했다. 이어 ‘내년까지’(24.1%), ‘내년 상반기까지’(13.9%), ‘올해 말까지’(3.4%) 순으로 내다본 전문가가 많았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공급 과잉, 글로벌 수요 감소 및 재고 증가에 따른 가격하락, 중국의 빠른 기술추격,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심화 등의 리스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반도체산업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대외현안으로 급부상한 ‘칩4 논의’ 관련 국내 반도체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36.6%를 차지한 반면, ‘부정적’이라고 답한 전문가 비중도 46.7%에 달해 논의에 보다 신중하게 임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했다. 박진섭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산업은 엄청난 국제 분업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칩4 대화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의 R&D․공급망 협력 등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한편, 미․중 경쟁 심화 및 중국의 반발에 따른 부작용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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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반도체와 과학법’의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적’ 전망이 50%, ‘부정적’ 전망은 40%로 집계됐다. ‘큰 영향 없을 것’이라는 답변은 10%에 그쳤다. 정의영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와 과학법으로 인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미국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가드레일 조항 때문에 중국 투자가 제한받는 등의 부정적 요인도 있지만, 반도체 개발·설계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에 있는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도 또한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단기적 위협요인으로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 감소’가 가장 많이 꼽혔고,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로는 ‘칩4 대응 등 정부의 원활한 외교적 노력’에 전문가 의견이 주로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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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해외기술기업 투자‧인수를 위한 특단의 제도 개선과 반도체 경쟁국 사이에서의 적극적이고 세련된 외교 등 반도체분야 초격차 유지를 위한 보다 근원적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 발표를 통해 반도체업계가 2026년까지 5년간 340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정부는 이 같은 민간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액공제 확대·노동 및 환경 규제 개선·인프라 등을 패키지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기존 3%에서 10%로, 소부장 자립화율을 30%에서 50%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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