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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느냐 먹히느냐…프리즈가 끝난 뒤 한국미술시장은
프리즈 서울 X 키아프 공동개최 결산
메가 갤러리, 시장성 있는 거장 작품 셀렉션
국내 콜렉터 마음 사로잡아

총없는 전쟁터 네트워킹 파티도 곳곳서 성료
전시장 휩쓴 MZ세대…존재감 과시
세계미술시장에 종속될까 아니면 영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지난 2일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프리즈(Frieze)가 첫 아시아 행사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했다. 이번 행사는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공동으로 동시개막했다. 사진은 하우저앤워스갤러리가 출품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그레이 파운틴'(아래), 조지 콘도의 '레드 포트레이트 컴포지션'(위). [사진=연합뉴스]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이곳이) 뉴욕인지 홍콩인지 서울인지 모르겠어요.”

지난 2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글로벌 양대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동시에 열린 코엑스 행사장은 이곳이 '국제'아트페어가 한창임을 실감케 했다.

전시장 문이 열리자 VIP를 맞이한 것은 우르스 피셔, 아모아코 보아포, 칼빈 마르쿠스, 스털링 루비, 니콜라스 파티 등 동시대 미술시장에서 각광받는 작가들의 신작부터 게르하르트 리히터, 장 미셸 바스키아, 우고 론디노네, 알렉스 카츠를 비롯 피카소, 모란디 등 서양미술 거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작품들이 한국을 대거 찾은 것이다.

수준급 작품들을 만나기 위해 홍콩으로 LA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콜렉터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누리는 사치라며 감탄을 쏟아냈다. 전세계 갤러리 중 톱으로 꼽히는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데이빗즈워너 등 아직 한국에 갤러리를 내지 않은 유명갤러리들도 프리즈에 부스를 마련했다. 그만큼 한국미술시장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라는 평이 뒤따랐다.

한화 600억원대에 출품된 피카소 '방울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1937) [사진=연합뉴스]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가져와 봤어…메가 갤러리들의 전략

최정상급 갤러리들이 프리즈 서울에서 보여준 전략은 '호텔 뷔페식'이었다. 거장이면서도 시장에서 판매가 잘 되는 작가들로 라인업한 것. 600억원에 달하는 피카소, 바스키아, 프란시스 베이컨을 내 건 애콰밸라 갤러리는 “이번이 첫 방문이라, 한국 콜렉터가 어떠한지 모른다. 모던부터 컨템포러리까지 다양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핵심은 한국 관객에게 어느정도 익숙한 거장 작품을 다양하게 가져오는 것이었다. 세일즈도 성공적이었다. 하우저앤워스는 VIP오픈 1시간만에 14점 판매에 성공했다. 조지 콘도(280만달러, 37억원), 마크 브레드포드(180만달러, 24억원), 귄터 프로그(38만 유로, 5억원), 니콜라스 파티(32만 5000달러, 4억4300만원) 등이 완판됐다. 가고시안도 무라카미 다카시, 백남준, 리처드 프린스, 스탠리 휘트니, 요나스 우드 등 10여점 넘는 작품을 판매하는데 성공했고, 마리아 이브하임 갤러리도 아모아코 보아포의 초상 3점을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작품 전체를 솔드아웃 시킨 갤러리는 LA 베이스의 데이비드 코단스키, 자비에 위프켄스 등이다. 닉 시무노비치 가고시안 갤러리 아시아 선임 이사는 “프리즈 서울에서의 결과에 놀라고 있다. 열정적인 신규고객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 내년 프리즈 서울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아모아코 보아포의 작업을 선보인 미국 마리아 이브하임 갤러리 [사진=연합뉴스]

모든 갤러리들이 높은 판매고를 올린 것은 아니었다. 한국 관객들이 잘 모르는 유명작가나 미주 유럽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업을 라인업한 갤러리들은 '신규 고객을 개발했다'는 선에서만 만족해야했다. 1달러당 1300원이 훌쩍 넘는 달러강세도 국내 콜렉터들이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한 이유다.

2003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시작한 프리즈는 2012년 뉴욕, 2019년 LA로 확장한다. 런던을 제외한 뉴욕과 LA에서는 도시를 대표하는 갤러리 및 작가에 대한 프로모션에 방점을 찍으며 양대 페어로 꼽히는 아트 바젤과 차별화를 꾀했다. 아트 바젤이 대놓고 상업성이 강한 페어라면 프리즈는 실험적 현대미술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번 프리즈 서울은 다른 어떤 프리즈 에디션보다 상업성이 강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첫 페어라 참여 갤러리들이 비교적 안전한 선택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2 키아프 전시전경 [사진=헤럴드DB]

안방 내준 키아프는 울상?…실속 챙긴 키아프

한국화랑협회가 2년 전 프리즈 공동개최를 선언했을 때부터 미술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안방시장을 다 내줘 국내 갤러리들이 결국 고사할 것이라는 암울한 진단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본 키아프의 성적은 준수했다. 프리즈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인 수천만원 혹은 수백만원 수준의 작품은 판매가 원활했다. 키아프에 참여한 한 갤러리 대표는 “아무래도 프리즈와 비교하며 구매를 하다보니 전년처럼 급하게 판매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예년보다는 좋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관객은 프리즈에 비해 적었지만, 외신의 집중은 더 강했다. 아트뉴스는 키아프 최고 부스 5선에 갤러리 조선, 페레즈 프로젝트, 갤러리 신라, 국제갤러리, 갤러리 서화를 꼽았다. 특히 갤러리 신라는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화제가 됐던 미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를 오마주한 엘 그루포 엑스(El Groupo X)의 '바나나는 바나나인가?'를 선보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35달러를 내면 포장용 테이프로 바나나를 고정시켜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진품증명서를 준다.

프리즈와 키아프를 관람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아트바젤 홍콩 관계자는 “아트바젤 홍콩과 아트센트럴처럼 프리즈와 키아프는 타깃 고객이 다르다. 분명한 것은 두 페어 모두 함께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평했다.

프리즈VIP 프로그램 일환으로 9월 2일 열린 삼청나이트 [사진=헤럴드DB]

아트피플과 아트러버들의 커뮤니티

프리즈 서울이 한국미술계에 가져온 물리적 변화는 바로 네트워킹 파티다. VIP프로그램으로 준비한 한남나이트(9월 1일), 삼청나이트(9월 2일)은 갤러리 오프닝 판도를 바꾸었다. '전시를 개막해도 8시면 문을 닫는' 오프닝 파티는 '나이트'라는 VIP프로그램으로 삼청동과 한남동을 새벽까지 들썩이게 했다.

삼청나이트에 공식 참여한 갤러리현대, 학고재갤러리, 국제갤러리, PKM갤러리 외에도 원앤제이갤러리, 갤러리조선, 갤러리애프터눈 등 다른 갤러리들도 이날 전시를 오픈하며 미술 애호가들과 콜렉터,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한 갤러리에서 다른 갤러리로 이동하며 네트워킹 파티를 즐기는 건 아트바젤이 열리는 홍콩, 비엔날레가 열리는 베니스 등 해외에서 보이던 현상이었다. 프리즈라는 국제 페어가 가져온 확실한 변화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CEO는 “서울이 런던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첫 발을 잘 뗀 것 같다”고 평했다.

아트페어나 비엔날레 등 국제적 행사의 성공을 놓고 평가하는 주요 항목 중 하나는 바로 이같은 무대의 뒤에서 이루어지는 프라이빗 이벤트다. 슈퍼 콜렉터, 큐레이터, 미술관 관장, 갤러리스트 등 미술계 관계자들이 모여 다음 스텝을 만들어가는 자리다. 국제아트페어라는 플랫폼에서 우리가 무조건 만들어내야하는 무형의 결실이다.

리만머핀 갤러리에 선보인 서도호 작품 'hub-1'[사진=헤럴드DB]

전시장을 휩쓰는 MZ세대

프리즈 서울이 다른 국제아트페어와 다른점은 압도적 관객수와 관객구성이다. LG전자와 콜라보레이션으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한국을 찾은 배리 엑스 볼(Barry X Ball)작가는 “수많은 페어를 다녔지만 여기처럼 관객들이 잘 참여하는 곳은 없었다”며 “한국은 아트에 굶주려 있는 것 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페어 첫 날엔 VIP만 동시에 2000명 넘게 모이며 입장에만 30분 넘게 걸렸고, 일반관람이 시작된 토요일과 일요일엔 입장대기시간만 1시간에 달했다. 마지막날인 월요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마감시간 때문에 입장하지 못한채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이른바 MZ로 불리는 젊은 세대가 많이 찾은 것도 특징이다. 최근 'MZ세대 미술품 구매자연구'를 발표한 주연화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부교수는 “MZ세대는 이전세대와 비교해 월등히 높은 외국어 능력과 정보 검색 능력을 가지고 딜러 및 갤러리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작가와 작품의 다양성을 급격히 확장하고 있다”고 평했다.

3년 미만의 짧은 구매 경력을 가진 이들이 미래 한국미술시장을 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선 커뮤니티문화의 정착이 꼽힌다. 취향에 대한 공유와 존중이 콜렉션의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콜렉터층이 다양해지고 두터워져야 한다는 것은 한국미술시장의 오랜 숙제였다. 미술시장은 콜렉터의 자본위에 그 화려한 꽃을 피운다.

/vicky@heraldcorp.com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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