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지원법·칩4 등 中 사업 영향 우려
美 바이든 대통령, 펠로시 하원의장 연이어 방문, 동맹 강화
美 주도 전략 참여에 쏠린 무게감
산업硏 “미·중 신냉전 전략 마련해야”
반도체 장비가 설치된 삼성전자(왼쪽)·SK하이닉스 공장 내부. [삼성전자·SK하이닉스 제공] |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 미국과 중국의 경제안보를 둘러싼 ‘신냉전’이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벌어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4개국 연합 ‘칩(Chip)4’ 가입 압박과 ‘반도체 및 과학법(반도체 지원법)’의 투자제한 조항 등은 중국 시장이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 기업의 글로벌 경영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 이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까지 한국을 방문하며 미국의 ‘반도체 드라이브’가 한미 간 더욱 확고한 공조체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기업들은 하반기부터 미칠 경영 불확실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5일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지역별 매출을 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은 45조6000억원으로 전체 해외 매출의 19.4%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중국 매출은 15조7000억원으로 37.9%였다.
이미 중국의 코로나19 봉쇄조치와 공급망 교란, 전 세계적인 소비위축 등으로 하반기 예상된 위기상황에 더해 지정학적 리스크도 장기적으로 중국 사업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9일(현지시간) 반도체 지원법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이 시행되면 연방 지원금을 받은 업체들은 향후 10년 간 중국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확충하지 못한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부지 전경. [테일러시 홈페이지] |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2조원)를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며 주 정부 세제혜택 확대를 위해 텍사스주에 1921억달러(약 250조원)를 투입해 11개 공장을 추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하기도 했다.
연방법에 의해 지원 혜택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역으론 중국 시안, 쑤저우에 있는 낸드플래시, 테스트·패키징 후공정 공장에 신규 설비 투자를 하지 못한다.
SK하이닉스도 미국에 후공정 패키지 공장, 연구개발(R&D)센터 등을 설립하고 15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하며 미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신 우시, 다롄의 D램, 낸드 공장에 추가 투자가 어렵다. 이미 SK하이닉스는 최첨단 초미세공정을 위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중국에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화상으로 면담하고 있다. [AP] |
여기에 장기적으로 노후 장비가 도태되는 상황에서 신규 투자가 제한되면 생산이 줄고 수익에는 타격을 입는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수명이 다한 장비를 교체해야 하는데 투자를 못하면 순차적으로 가동을 정지하는 수밖에 없다”며 “투자 확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더이상 수익을 거둘 수도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본·대만이 참여하고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압박하고 있는 칩4도 중국의 무역 제한 조치 등 역공의 빌미가 되고 있다. 미국과 외교적 유대를 강화할수록 중국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대만으로부터 30여개 식품 수입을 막고 대만으로 모래 수출도 금지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동언론 발표를 통해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 |
국내에서는 칩4 참여에 대한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데,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차세대 반도체 공급망에 참여하고 표준과 기술자산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참여가 불가피하다”면서도 “중국 수출 감소로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김진표 국회의장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미동맹과 미 반도체 지원법 혜택을 당부하며 사실상 참여로 무게가 쏠린다. 영향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어 힘을 싣는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미국산 낸드 장비의 대 중국 수출금지가 확정되더라도 향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분쟁의 장기화를 고려할 때, 향후 추가적인 생산능력 확대는 한국 또는 중국 외 지역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장열 상상인증권 연구원도 “칩4 가입은 불가피 할 것”이라며 “한국 메모리 수출의 30%가 중국향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보복우려는 매우 부정적이지만 중국 수요의 70%가 한국에 의존하기에 중국입장에서도 한국의 반도체 업계로 직접적 보복 가능성은 실제 매우 낮아보인다”고 봤다.
변수는 남아있다. 상원에서 통과시킨 반도체 지원법이 이틀 만에 하원을 통과했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심사숙고하며 9일까지 서명을 미뤘다. 1년 간 쟁점이 된 투자제한 독소조항이 고민의 지점이라는 관측이다. 법이 시행되면 반도체 협회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의 비판도 이어질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도 아직 나오기 전이다.
산업연구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미중 경제전쟁에 대한 전략 마련을 주문했다. 경희권 부연구위원은 “세계 경제·산업 분야에서 미·중 간 신냉전 본격화에 대비해 한국 역시 국가적 차원의 종합 과학기술 및 첨단산업 전략의 입안이 시급하다”며 미국, 유럽과의 전략적 협력관계 강화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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